일상영성 6)* 차량봉사 영성
이 에스더 사제
처음 운전을 배운 것은 원주에서였다. 면허만 따고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도 없는 풋내기 전도사가 수동기어로 푸드뱅크차를 운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연수를 받던 날 알게 되었다. 늘 자랑하던 내 몸이었건만 ‘다리는 짧구나’ 탄성이 나왔다. 깊이 들어간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떼는 일은 쉽지 않았다. 풋내기지만 운전을 하고부터는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았다. 누군가를 태우고 어디를 가야했고 물건을 실어오고 나눠주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좌충우돌의 첫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원주의 사역은 차 운전의 역사와 같이 한다. 트럭에서 LPG 승합차, 폐차위기에 놓은 수동 기어 차량 모두 나는 운전을 했다. 나뿐 아니라 공동체 활동을 하는데 차량 봉사는 아주 중요한 종류의 ‘일’ 중에 하나다. 차량 봉사를 한다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 사람이나 물건을 옮기기 위한 수단이었다.
차량 봉사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발이 되어 주는 일이다. 차량봉사를 필요로 하는 분들은 대개 노약자이거나 소외된 분들이 많다. 혹은 지역적으로 대중교통의 접근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개는 차량을 소유할 수 없거나 운전을 할 수 없는 이유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차량 봉사자는 소중하다.
“나의 발을 암사슴처럼 빠르게 하시어 산등성이 위에 서게 해주셨다”(시 18:33) 차량 봉사를 받는 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가끔 살면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 문제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은 성경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종종 산위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다. 못 알아듣는 제자들을 놓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며 다시 공생애를 이어가실 힘을 받곤 하셨다.
예수님의 감명 깊은 설교는 산상수훈(마5장)일 것이다. 관점을 멀리 높이 바꾸면 진리에 가는 길이 더욱 쉽게 갈 수 있다. 산 위에 다함께 오르니 제자들도 예수님의 진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분의 가르침이 시작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마 5:1) 자기 근거지에서 자리를 옮겨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예수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세도 하느님을 만난 것은 자기 고향을 떠나 죄를 짓고 산에 올라가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어서다.
“모세는 미디안 사제인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떼를 이끌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렘으로 갔더니 야훼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출 3:1) 모세가 존재를 밝히는 야훼를 만난 자리도 자기 자리를 떠나서였다. 자신의 경험이 있었으니 자기 민족을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이동을 돕는 봉사자의 선구자다. 광야에서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며 앞장 서서 불기둥, 물기둥으로 길을 알려주며 그 길 끝에 해방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근거지를 떠나는 일을 깨달음의 참된 자세라고 여겼다. 출애굽의 역사를 간직한 민족이다. 사도바울도 전도여행을 떠나서 곳곳에서 사람을 만났던 것을 보면 깨달은 자들은 ‘떠나는 자’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거창하게 진행됐지만 이런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차량 이동 봉사자’이다.
그런 점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늘봄학교의 차량은 우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금요일은 지역의 어르신들에게는 한마당 하늘나라가 벌어지는 현장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사는 이야기를 하고 농사이야기를 하며 누구 누구네 소식을 듣는다. 살 맛 나는 거리들이 가득하다. 오기가 어려운 어르신들을 한 차 가득 우리 집에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뿐 아니다. 교회에 오고 싶은 이들은 마음의 허기짐을 가지고 있다.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 위치의 특성상 차량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분들은 버스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오고 가는 길이 기도의 길이라 여긴다면 기도 시간이 길수록 좋은 건 맞지만 그래도 도와주는 차량봉사가 있으면 참 편안하게 교회로 올 수 있다. 교회 차량 봉사는 사람들의 발이 되어서 갈 곳을 도와주는 일이다. 교회에 함께 가주는 일이다. 구원받는 일이다.
함께 가는 일은 엠마오의 영성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엠마오라는 동네에서 제자들이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과 함께 걷고 대화를 나누고 묵으면서 그들과 식사를 나누고 나서야 제자들은 눈이 열린다. “길에서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루24:32) 아름다움을 경험한 사람의 탄성이다. 함께 걸어가주는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보는 일은 차량 봉사의 영성이다.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시간을 선물해주는 나눔의 대표적인 일이다.
그리하여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될 순간을 허락받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누군가를 다른 여정으로 초대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다른 관점을 선물해주는 일이다. 우리가 교회에 오는 이유도 사실은 이러한 까닭과 같다. 쉴 공간을 마련하고 내가 매몰된 관점에서 벗어나 오직 그분의 시각으로 세상을 다시 사는 일이다. 기도와도 같은 봉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