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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영성 7) 설거지 영성

작성일 : 2016-05-29       클릭 : 219     추천 : 0

작성자 원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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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영성 7)* 설거지 영성

이 에스더 사제

 

 

설거지는 배우고 볼 일이다. 어설픈 살림살이를 하면서 나는 인생은 설거지를 할 줄 모르던 때와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이후로 나뉜다고 주장하고 싶어졌다. 설거지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철 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 이유는 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먹고 즐기는 것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리는 일까지도 생각하는 온전한 일처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거지를 하는 폼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아 맞출 수도 있다. 서스럼없이 그릇을 닦는 사람들은 대부분 철 든 어른의 모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남녀를 떠나서 말이다.

그런 어른이어도 교회에서 설거지 봉사는 벅찬 일이 분명하다. 남이 먹은 그릇통을 씻다니 청결하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번뜩 들기 마련이다. 녹색교회를 표방한 우리 교회의 경우 설거지 문제가 회의 주제로 올라와 주방 안의 평화가 교회 안의 평화라는 합의 하에 자기 그릇 닦기나 세 번만에 설거지를 완료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설거지를 했다는 고백은 듣지 못했다.

설거지가 무엇이길래 이리도 힘들까. 일상영성 적으로 접근해보자.(그를 통해 이왕하는 공동의 일이 더욱 기쁘고 의미 깊다면 오히려 쉽지 않을까 하는 바램 때문이다.) 사실 설거지는 성찬례 안에도 있다. 현 기도서에는 빠져있지만 옛 공도문(1994)에 따르면 23번 성체를 영하면서의 마지막은 영성체가 끝나면 사제와 부제들은 남은 성체와 보혈을 영한다. 성작은 물로만 씻되, 미사 후 예복실에서도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설거지의 방법을 루브릭으로 자세히 설명한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의 발우공양과 같은 일이다. 실제로 발우공양이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주듯 많은 신자들이 사제가 마지막에 설거지해 한 조각 한 방울도 남김없이 먹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고백을 자주 들었다.

성체의 축성은 성체를 나누는 일에 이어 설거지로 마무리 된다. 감사성찬례를 참석한 우리들은 각자의 일상에서 영성체를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가야한다. 곳곳에서 감사성찬례가 끝없이 이어지게 하는 집전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성찬례가 끝나면 보통 애찬이나 다과를 나눈다. 우리는 영의 양식을 베푼 자리에서 나눈 기쁨을 영의 잔치에서도 나눈다. 그리고 모두 식사가 끝나면 사제가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설거지를 한다.

그 때 설거지를 하는 당사자는 루브릭에서처럼 사제나 부제들은의 자리에 서게 된다. 만지는 것은 그릇이다. 그 곳은 생명을 담은 흔적이 남겨져 있으며 때로는 치열하게 다양한 자국을 남겨놓는다. 그릇 안에 밥은 제 역할을 다하고 사라졌다. 사람을 살렸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듯이 밥을 담았기에 그 그릇을 씻는 일은 그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일 것이다.

밥은 양식이다. 영의 양식은 기도다. 그리스도인으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 매 순간의 끼니를 챙겨야 한다. 그 일은 밥을 먹는 것과 매일 기도로 완성된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만족스러운 상태는 필요한 양식을 얻을 때 일어나는 상태를 말한다.

설거지가 귀한 두 번째 이유는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예언자 즈가리야의 대언 중에 제자리를 유의미하게 언급한 대목이 있다. “그 날이 오면, 나는 유다 부족들을 장작더미 가운데 있는 가마같이, 짚단들 사이에서 타오르는 횃불같이 만들어, 오른쪽 왼쪽 할 것 없이 그 주위에 있는 백성은 모두 태워버리리라. 그 뒤에 예루살렘은 다시 제자리에 남아, 사람들이 그 안에서 마음 놓고 살게 되리라.”(12:6) 구절에서와 같이 제자리는 사람의 마음을 평화로 이끈다. 결국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예루살렘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는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마태24:2, 마르13:20, 루가19:44)에서도 결국은 제자리에 있지 못하게 되는 날은 무너지는 날이라는 예수의 예언을 우리는 듣게 된다. 설거지라는 작업이 없으면 제자리는 일어나지 않으면 일상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거지는 물로 씻기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서에서 물로 씻음은 사실 저주의 벗어나는 행위와 연관이 있다. 유명한 엘리사가 요르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해 병이 나은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물로 씻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모래 사막을 맨발로 걷는 일이 잦았던 고대 중동 지방에서는 발 씻는 물을 가져다 주는 것이 귀한 일중에 하나였다. 그리스도도 엎드려 우리들의 발을 씻어주었다. 먼지를 남겨두지 않는 일이며 죄를 벗겨내는 일이다.

예수가 제자들을 훈련시킬 때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나 너희의 말을 듣지 않는 고장이 있거든 그 곳을 떠나면서 그들에게 경고하는 표시로 너희의 발에서 먼지를 털어버려라”(마르 6:11)하시고 마지막 날에 제자들에게 함께 걷느라 수고한 제자들의 한 발 한 발을 차례대로 씻어주신다. 그것은 마치 그가 지난 날과 오버랩된다.

너희 안에 있는 티끌만큼의 미움이나 두려움이 있다면 씻어버리고 서로 사랑’(13:34)하며 나아가라는 것이다. 죄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다. 천지창조의 역사가 물의 흐름으로 시작된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세례를 물에 씻기어짐으로 받아들였다. 이뿐 아니다. 인간은 본래 창조부터 엄마 뱃속에서 물과 함께 했기에 대부분 물을 만지는 일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좋아한다.

그러니 이런 사유들로 설거지는 영성적인 일이 분명하다. 그 의미와 행위 모두가 기도 전반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쁘게 기꺼이 설거지를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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