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솟는 땅
일상영성 8) 건물수리 영성
이 에스더 사제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들이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고3:9) 일상영성 마지막 글을 남겨두고 하고 싶은 말은 이 구절에 다 담겨져 있다. 교회 건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건물이다. 교회를 찾아온다는 것은 나를 찾아오는 것이며 교회를 가꾼다는 것은 나를 가꾸는 것이다. 교회를 수리하는 것은 나를 만지는 시간이다. 건물이 한 조각도 온전하지 않으면 사실 교회는 제 구실을 못한다. 다 만들어졌는데 창문이 하나 없다고 해자. 건물의 역할을 못할뿐더러 모양도 좋지 않다. 더 작게는 문들에 문고리가 고장 났어도 건물은 여러 가지로 완전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기에 주인은 마땅히 건물의 구석 구석을 살펴야 목적에 맞는 쓰임을 완성할 수 있다. 교회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이루는 각각의 지체들이기에 한 마음으로 교회를 돌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분의 몸을 돌아본다’ 각 공간은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창구이며 각 공간마다 다른 기도의 세계의 문이 열린다. 되도록 여러 차례 여러 공간에 머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건물은 우리들이 머무는 공간이며 구체적인 벽체와 지붕을 둘러싸고 공간을 완성한다. 그곳은 사실 공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곳에는 필요에 따라 가구와 사람들과 물품들이 차지 하지만 실상 가장 크게는 사람들의 들숨과 날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숨은 성령이다. 머무는 이들의 깨달음이 깊을수록 숨은 달라진다. 공간은 각각이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이유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만나려면 각각의 지방말이 다 필요하다. 한 가지 색은 완성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교회는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올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 배려는 공간을 좌우하는 중심 생각에 담겨지게 마련이다. 성공회원주교회는 참 많은 성격과 특징의 공동체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가장 크게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예배가 함께 한다.
그리고 주중에는 늘 나눔의집, 햇살도서관, 초록햇살 카페들의 소소(疎疎)한 모임들이 있다. 그 모임들에 따라 공간은 사용되어진다. 그 쓰임이 공간을 결정한다. 예배터과 삶과 되고 놀이터가 되는 각 순간을 늘 지켜보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기억은 교회의 참 모습이라고 믿는다.
교회에 다니면 그 공간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내가 예배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교회 공간에 머물면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분명하다. 교회에는 모든 이가 주인이며 모든 이가 손님이다. 누구든지 그 무대에 등장하며 누구든지 기도의 대상이 된다. 가졌든 못가졌든 잘생겼든 못생겼든 나이가 적든 많든 그 가짐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 그리스도의 축복이 머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따랐기 때문이다. 교회는 지역에 공간을 열고 사람들을 초대해야 한다.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다보면 방향을 조금 다르게 하다보면 외부인들을 통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나그네와 떠돌이를 그리스도는 언제나 초대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은 더욱 확장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는 은총의 기회를 선물 받았으며 따라서 누구든지 그곳을 가꿀 책임을 가지게 됩니다. 건물을 수리하는 일은 공동체에 아주 적합한 노동의 영성을 키우는 일이다. 공동의 일은 우리를 더욱 하나되게 하고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사실은 교회 공간을 꾸미고 있지만 서로는 마음과 몸을 만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주 많은 교회에서 교회를 건축하거나 수리할 때 다툼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철저하게 건물 수리의 여정이 자기 의견을 내려놓는 과정임을 잊어서 그렇다. 내 옳음을 내려놓고 각 순간 침묵하며 서로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서는 건물 수리는 완성될 수 없다. 그 참여의 손길 모두는 보배이며 귀하다. 손이 많을수록 더욱 수월하며 하느님께서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하신 이유를 알 듯하다. 손과 손이 만나서 하는 대화는 접촉없는 말보다 훨씬 진실하다. 말은 많을수록 상처를 주고 나의 공허를 드러내는데 손은 빌려주면 빌려줄수록 도움을 준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의 핵심은 ‘맞들면’이다. 서로 우리는 맞들어주어야 한다. 그것은 일을 배워가는 사람에게도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아주 중요한 것들이 오고 간다. 그러기에 겸손하게 서로를 대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하는 건물수리의 영성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는 함께 ‘수리(修理)’하며, 함께 ‘수리(手理)’한다. 그렇게 되면 정말 그 옛날 ‘수리수리마술이~’ 하던 마법 주문처럼 기적이 일어난다. 공간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쓸모를 갖추며 각각 아름다움을 갖추어 오고 가는 이들을 편안하게 한다. 우리 손이 만들어낸 평화 속에 사람들은 사연을 풀어내고 평화를 얻어갈 수 있는 것이다. 신비가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저 손만 내어주고 이끄시는 데로 움직였을 뿐인데 내 행동이 남에게 큰 평화를 준다고 하니 오늘도 우리는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연장을 들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온 건물은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에2:20-2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