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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집 영성 3) 우리

작성일 : 2016-06-25       클릭 : 209     추천 : 0

작성자 원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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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집 영성 3)

우리


나눔의집의 영성은 우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문제를 개별로 보아 조각나고 파편화시키는 것 대신에 우리 안에 존재하는 사람이란 접근으로 읽고자 합니다. 이것은 홀로 서는 것의 중요성을 관가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관계)’ 안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아주 깊숙히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이 기쁨이 나에게도 기쁨으로 번집니다. 성숙한 사람들일수록 다른 이의 아픔에 크게 공감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고위 공직자의 덕목은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해서 정책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반영하는 일은 무척이나 많은 것들을 달라지게 합니다. 나눔의집은 그것을 주요과제로 다룹니다. “우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 과부의 아들의 장례식에 뒤따르는 이들의 곡소리에 깊이 울림을 받아 그를 치유하십니다. (7:11-17) 내 일이 아닌데 우리는 서로의 경험을 통해 같이 아프하고 같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이어가는 사연들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릅니다.

공동체가 서로를 바라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때는 손을 맞잡고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누구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면 눈높이를 맞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경쟁을 기본으로 배경삼고 있는 공동체는 서로의 눈을 피하고 삽니다. 서로가 나와 같다고 생각하다 보면 그 생각이 우리라는 것으로 묶이면 이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자본가들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도태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위험은 다른 곳에 있는데 말입니다.

세상 곳곳이 위험천만의 현장입니다. 여기 저기가 모두 구의역입니다. 안전하지 않고 시간에 쫓겨서 많은 바 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보장된 보수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공동의 업무는 뒷전에 밀리기 마련입니다. ‘다같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노력이란 슬로건을 내걸면 혀를 차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나눔의집은 다릅니다. 모두 이들의 행복이 있어야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겨울 걷는 기도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갈대를 들고 놀다가 행군 온 군인 아저씨들과 마주했다.


나눔의집이 세상을 경쟁으로 부추기는 것들에 반대합니다. 비정규직은 점 점 사람을 바쁘게 하고 위험하게 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게 합니다. 돈을 아끼기 위한 방책의 일환으로 사람의 삶을 다루지 않습니다. 점점 세상은 우리를 다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눔의집은 이에 반대합니다.

나눔의집은 소외된 이웃들이 대상화 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우리들의 이웃은 우리일뿐 서열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빛이 대상화되거나 소비될 수 없습니다. 그 이웃이 노인이든 아이이든 남자든 여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묶여있는데 다 다릅니다. 서로 다른 빛깔안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같은 우리가 아니라 다 다른 우리입니다. 서로는 서로에게 그렇게 도움을 받고 완전해집니다.

10년을 맞이하는 나눔의집 늘봄학교는 어르신들의 홀로 살이를 반대하기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점점 우리 마을을 잃어버리는 어르신들에게 마을 삶을 찾아드리고자 시작했습니다. 차가 없는 어르신들은 이 마을 저 마을의 소식을 듣지 못합니다. 버스는 시내와 농촌만을 이어줄 뿐 마을과 마을간의 다리는 되지 않습니다. 노인 복지가 간혹 이루어지지만 의식주에만 근거합니다. 사실은 어르신들의 아픔은 고립(외로움)’에서 옵니다.

함께 모여 웃고 떠들다 보면 함께 사는 행복을 알게 되고 건강하게 일주일을 살게 됩니다. 하루 4시간이지만 일주일의 원동력입니다. ‘공동체는 아픈 이들을 일으켜 세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의 어려움은 고립 때문에 일어납니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 때문에 많은 아픔을 겪습니다. 왕따의 문제는 결국 고립을 드러내는 현상입니다. 고립되는 일은 사실 구체적인 폭력을 행하는 것도 아닌데 가장 큰 아픔을 줍니다. ‘우리안에 잊혀지는 것이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나눔의집은 우리를 주제로 삼고 이야기합니다. 그 관계는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수평의 관계이며 손을 이어잡아 누구도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데 관심을 둡니다. ‘자주 모이고 진실하게 손을 맞잡습니다.’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강한 우리의 해결책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결될수록 더 넓어지고 연결될수록 더 강해져 결국은 우리라는 이름 안에 누구도 무엇도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들어감으로써 풍성해지는 경험을 한다면 민들레 홀씨가 왜 그렇게 거리를 두고 솜털로 연결된채 가장 낮은 곳까지 날아가는 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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