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집 영성 4)
동행
이 시리즈의 마지막까지 잘 오셨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동행’, ‘함께 걸음’입니다. 함께 걷는 이들은 성경 곳곳에 나옵니다. 예수의 일행은 길 걷는 이들입니다. 그 분은 늘 길 위에서 사셨습니다.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셨고 그들을 고치고 말씀을 선포하고 길 위에서 수난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모든 수난과 부활의 여정을 마치고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옆에서 함께 걷기만 하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나눔의집의 궁극적 목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일행보다 먼저 있었던 이들도 늘 길 위에서 진리를 만났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 12:1)는 말씀으로 야훼를 만났습니다.모세도 길을 떠났고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왕들을 기름 붇기 위해서 늘 그들을 찾아 떠났습니다. 길을 걷는 것은 진리와 가까워지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입니다. 길 끝에는 늘 깨달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행(同行)’은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병원 동행 서비스, 나들이 동행 서비스 등과 함께 최근에는 면접 동행 서비스까지 등장했습니다. 동행은 이웃들에게 ‘같이 걷는다’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같이 가주는 일인데도 전문적이면서도 직접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로 꼽힙니다. 실제로 이를 제공해주는 기관은 많지 않습니다. 이 즈음되니 같이 걷는 일이 무엇이길래 도움을 줄까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은 원래 함께 걸어야 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생겨 먹었습니다. 사람 인(人)자를 살펴보면 원래가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걸음을 걷는 일이 그 사람의 ‘사람됨’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걸음은 두 다리를 기본으로 합니다. 물론 보행의 장애 가 있는 분들이 있기도 하지만 다리를 대체할 수 있는 균형점 두 개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걷는 일 자체는 두 균형이 다른 방향에 정확히 서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것이 끝없이 이어질 때 걸을 수 있습니다.
이는 서로의 다른 방향이 연속적으로 균형을 이룰 때 영성적으로 바꿔 말하면 ‘너와 나’ ‘안과 밖’ 또는 ‘어둠과 빛’의 균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균형으로 이루는 일은 신비로운 길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요15:17)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다르게 말해 ‘함께 걸어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함께 걸음’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의 관계가 둘이상이면 면 어진 사람의 관계(仁)로 이어집니다. 같이 걷는 것은 균형을 맞춰주는 일이며 용기를 줍니다. 원주나눔의집은 아주 정감어린 동행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동행은 나눔의집으로 데려오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판단이 없는 길, 너를 너답게 하는 공간으로 데려오는 일입니다. 나눔의집 예를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한 아이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늘 방해하기 때문에 ‘자는 게 돕는거야. 자라’는 말을 항상 듣습니다.도저히 수업이 안 되니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교무실 구석에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의뢰 전화를 받고 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나눔의집에 처음 오는 길입니다. 근심어린 그 아이에게 말을 겁니다. ‘안녕. 이름이 뭐니’.
또 한 아이가 있습니다. 아무도 같이 살지 않지 않는 그 아이. 어깨가 축져진 그 아이를 작은 짐과 함께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아이를 데려오며 말해줍니다. ‘같이 가 살자.’
호저인근 어르신들은 금요일마다 늘봄학교에 오십니다.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웃음치료도 재밌지만 동무끼리 이웃끼리 안부도 물으며 따듯한 밥한끼를 합니다. 점심 시간을 아껴 잠시 면내 농협과 면사무소도 다녀옵니다. 어르신들은 사료도 사고 비료도 사고 세금도 내고 돈도 찾고 두부 한모도 삽니다. 농촌 어르신들에게 아주 중요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시간입니다.
나눔의집 밖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함께 걸음’으로 아픔을 알립니다. 세월호 사건을 알리는 부모들의 행진도 그랬고 최근에 억울한 한 노동자의 장례행렬도 우리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함께 걸음으로 정의를 외칠 수 있습니다.
동행은 나눔의집의 최종 지점이며 우리들의 실천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연약한 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일은 존재를 알리고 위로하며 균형을 맞추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눔의집은 하느님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편이심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동행합니다. 길에 함께 서 있는 모든 분들이 귀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