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이들이 행복한 교회
올 해 아이들이 행복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원주교회는 교회학교를 다채롭게 변화시켰다. 개척 초기부터 언제나 작은 교회에 아이들이 끝이지 않았지만 올해는 특별히 교회위원회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교회’를 주요 과제로 꼽고 노력을 했다. 그 이름을 카라(기쁨)학교라고 붙인 것은 이런 의미의 일환이다. ‘기쁨’이야말로 아이들이 하느님께 가는 길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하느님을 서슴없이 만나며 하느님을 충분히 누린다.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으며 보호받는 존재이고 축복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년 계획을 세우고 분반을 결정해 꽃반과 예수반 이름으로 미취학 아동과 취학 아동을 나눴다. 꽃반과 예수반은 소속 아동들이 정한 이름이다. 그리고 변화를 맞추기 위해 카라학교는 일년 계획 안에 ‘숲학교’ 프로그램을 넣었다. 이런 변화는 우리 식의 주일학교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주 우연히 언젠가 아이들이 통성기도하면서 우는 이미지를 웹에서 본적이 있었다. 돌아가신 예수님을 만나서였을까. 겁주어서 그 분을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교회와는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새롭게 변화를 주기 위해 먼저 경험 많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반을 편성했다. 교사들은 임기는 1년으로 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하게 될 경우는 개인의 결단에 맡기기로 했다. 주일학교를 맡아서 소진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단을 모집하고 ‘아이들에게 하느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토론했다. 우리의 결론은 ‘이야기’고 ‘놀이’였다. 그리고 ‘정해진 예배’를 드리고 ‘교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익숙함이 아이들에게 주는 안정감도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 안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스스럼없이 하느님과 만난다. 모든 아이들은 하느님과 다르게 만나는 중이었다. 금방 음성을 듣고 성경 이야기 속의 인물의 마음을 공감했다. 성경 이야기 속에 누군가 되는 일은 어른보다도 빨랐다. 아이들 안의 하느님과의 역사는 무궁 무진했고 때로는 전해 듣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많은 교회학교의 고민일수도 있으나 우리교회에서도 키워낸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경우를 종종 겪는다. 어느 정도가 되면 아이들이 교회를 찾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으나 쉽지 않았다. 1년동안 아이들이 행복한 교회를 진행하면서 여전히 교회에 남아있는 고민이지만 ‘우리가 아이들을 만나는 이유’가 ‘앞으로 교회를 지켜줄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니다.
아이들의 하느님 이야기는 솔직하고 거침이 없으며 재미있고 풍부하다. 그 이야기가 어른에게 비한다고 한들 부족하지 않았다. 자기 식의 하느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족하지 않을까. 충분히 함께 사랑하면서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기를 바라기보다는 오늘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교회를 교회 답게 만들어갈 것이다.
지난 20주년 기념행사의 작은 강연에서 양권석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교회를 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살다보니 교회가 되었다’는 말씀을 우리는 새기고 새겨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충분히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는 돌봐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마 19:14)고 했던 그분의 가르침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