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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자연 1) 새

작성일 : 2017-01-15       클릭 : 217     추천 : 0

작성자 원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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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새로운 주보 글 시리즈를 고민하다 주님과 자연 시리즈를 연재하기로 결정했다. 하느님을 보다 쉽게 느끼기 위해서 자연으로 나가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것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요한 복음의 말씀처럼 자연은 하느님을 다가가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늘 변화한다. 멈춰있지만 멈춰있지 않은 신비를 담고 있고 생명 그자체이다. 그래서 ‘자연스럽다’는 말보다 더한 칭찬은 없는 것이다. 자연을 들여다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서 기도로 입문하는 과정이 열리기를 바란다. 오늘부터 사순절까지 하느님과 자연 시리즈를 연재한다.


지난 가을 강독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녁 8시가 넘어서 해는 넘어갈 데로 넘어갔는데 한 무리의 새떼가 창공을 감싸고 있었다. 새떼는 바삐 어디론가 가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그 위험한 여정을 감행하고 있었다. 새떼의 대오는 한 치의 흩어짐도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그 새들의 신비한 여정에 홀릴 수밖에 없었다. 

이 어두운 날 뭐가 급해 그리 날아갈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들은 날아갈 방향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망설임도 흩어짐도 없는 날개짓이 부러웠다. 분명한 방향을 알고 있어 보이는 이들의 몸짓의 소리가 땅 아래까지도 들리는 듯 했다. 겨울이 다가오니, 쉴 곳을 찾아 서슴없이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확신이, 그들의 대오가 부러웠다. 내 삶의 여정에 나는 얼마나 확신하는 지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의 여정도 저처럼 이정표가 있다면 좋으련만. 

교회 주변에는 유달리 신비한 새들이 많다. 인적이 드문 날이면 특히 새들이 교회 주변에 가득하다. 알록달록하며 작고 크고 많은 새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햇빛이라도 따듯하면 새들은 향연을 펼친다. 각 새들은 다른 소리를 가졌고 나는 기술을 연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건물과 곳곳에 나무와 전신주를 경계삼아 신나게 날아다닌다. 

그들에게는 경계가 놀이감이었다. 경계가 다가오면 몸을 낮추고 날개짓을 잠시 멈춘다. 다만 방향을 바꿀 뿐이다.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을 계속 연습한다. 잘 될 때까지. 그리고 서로 응원의 소리를 내어준다. 자신을 가로막는 그 벽을 자기의 나는 연습의 도구로 삼으니 새들에게는 원망도 걱정도 없어 보인다. 그들이 좋아 몇 해 동안 묵혀놓은 우리 집 곡식을 꺼내서 잔디밭에 휘휘 뿌려보았다. 장애를 놀이감으로 삼는 그들의 자태에 경의를 표하며 새들에게 잔치상을 바치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새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유일 무일한 존재다. 허공을 양 날개로 날면 거침이 없다. 빈 공간을 날아가는 새의 날개 짓은 힘차다. 마치 그것이 운명인 것처럼 우리들을 올려다보게 한다. 날개짓을 보고 있으면 땅 위에까지 그 울림이 전해진다. 양 날개, 한 쪽이 아닌 양쪽 날개를 활짝 펴서 세상을 나는 그 모습. 우리의 기도가 생각난다. 

우리는 그토록 서로 다른 방향, 다른 것을 아울러서 완성된다. 다름을 만나면 이절적이고 문을 꼭꼭 걸어 잠그기 일수라면 저 하늘의 새를 봐야 한다. 성경 속에 나와 있는 서로 다른 듯 보이는 언어들은 사실 우리를 통합으로 이끌기 위한 것들이었다. 빛과 어둠, 비움과 채움, 수난과 부활, 두 아들 그 두 비유가 새롭게 느껴진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 지키기 어려운 까닭은 서로가 무엇인지 몰라서 아닐까, 그 본질을 아는 즉시 우리는 자유해서 서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리라. 동전의 두 닢을 통해서 우리는 본질을 알게 된다. 

통합은 마치 반대되는 두 가지를 내 안에서 발견하는 일이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많다’( 5:20)는 말씀을 내 안에서 이루는 일이다. 내 안을 들여다볼수록 나는 잃어버린 양날개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잃었던 아들’( 15:11-32)을 맞이하고 비로소 아버지의 집에서 쉼을 얻고 양식을 먹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방향인 듯 보이는 다름을 회복하면 양 날개를 달고 내 마음의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날다가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신나게 놀이삼아 몸을 움추렸다 펴면 그 뿐 일뿐 망설일 까닭이 없지 않을까.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은 새가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일이다. 양 날개를 펼치고 빈 공간(虛空)을 막힘없이 나는 일이다. 창세기의 한 처음으로 돌아가 창공에 달과 별을 달으시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그 분의 말씀을 따르는 과정이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고 그렇게 첫 날 하느님은 밤, 낮 하루를 만드셨다.’( 1:5) 서로 다름이 어우러져 나는 하루를 산다. 하루의 창공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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