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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자연 2) 밤하늘

작성일 : 2017-01-15       클릭 : 245     추천 : 0

작성자 원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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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자연 시리즈 
2) 밤하늘


편집자 주: 새로운 주보 글 시리즈를 고민하다 주님과 자연 시리즈를 연재하기로 결정했다. 하느님을 보다 쉽게 느끼기 위해서 자연으로 나가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것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요한 복음의 말씀처럼 자연은 하느님을 다가가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늘 변화한다. 멈춰있지만 멈춰있지 않은 신비를 담고 있고 생명 그자체이다. 그래서 자연스럽다는 말보다 더한 칭찬은 없는 것이다. 자연을 들여다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서 기도로 입문하는 과정이 열리기를 바란다. 오늘부터 사순절까지 하느님과 자연 시리즈를 연재한다. 
  
하느님과 자연 시리즈 
1)  2) 밤하늘 3)  4)  5) 산과 강 6) 태양 7) 새싹 8) 공기 
  
다들 그렇지만, 내게도 밤하늘에 대한 기억이 있다. 바티칸의 박물관을 다녀온 적이 있다. 많은 작품들 중에 판타코나실에서 만난 보름달 그림을 본 순간, 전율을 느꼈다. 한참을 작품 아래에서 머물다보니, 보름달의 밤의 여정을 따라 나도 거기 서있었다. 작가 도나토 크래티(Donato Creti)는 하룻 밤 보름달과 그 아래 사로잡힌 행인들을 그림에 담았다. 보름달을 보고 어찌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그림 속 행인처럼 멈추었다. 내 안에 이탈리아에서 만난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다. 바라봄만으로도 가득 차는 보름달이 마음속에 뜬 것이다. 
밤하늘은 모두에게 각각 기억을 준다. 그러기에 다른 모습을 가졌다. 밤이 주는 한 면은 두려움이다. 성경의 많은 곳곳도 두려움을 밤하늘, 어둠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때 두려워한다. 내 발걸음에 확신이 없을 때, 그래서 뗀 발을 디딜 수 없을 때 두렵다고 한다. 그 옛날에도 그랬나보다. 이사야는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이사9:1)라고 위로했다.

1월 6일은 공현절입니다. 동방박사

예수님 시대에도 믿음 좋은 제자, 베드로도 물 위를 걸어가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바람 속을 보다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물에 빠져들었다. 새벽 첫 닭이 울 때 까지 스승이 잡혀간 밤을 지세다 이내 그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한 베드로는 자신의 두려움과 직면해, 슬피 울었을 것이다. 
그래서 밤하늘은 기도의 시작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나의 두려움과 직면하는 일이 밤하늘을 마주보는 누군가에게는 허락되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영역을 보게 되면 이제 나는 낮아지고 그분이 나를 돌보게 된다. 관상기도의 시작인 것이다. 

밤하늘의 다른 면은 고요함이다. 바삐 돌아가던 일상들이 쉰다. 동물도 움직이지 않고 풀꽃마저 호흡을 멈추고 쉬는 시간. 그래서 온 세상이 고요하다. 피정이 이루어지면 종종 밤 시간에 집중하게 된다. 밤은 우리에게 침묵이며 없음이다. 색이 드러나지 않고 판단이 없어 내가 무색 무취가 된다. 나 아닌 것들은 사라지고 참 나를 마주보게 되는 시간인 것이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 진정한 쉼이 시작된다. 

엘리야가 죽게 되어 도망가던 그 날, 하룻길을 도망가 싸리나무 밑에서 쉰다. 그리고 동굴로 들어 밤이 되자 야훼의 소리를 듣게 된다. “엘리야야, 네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열왕기상19:9) 전쟁 같은 삶을 피해 이제는 비로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 ‘은 그에게 부르심의 시간을 열어준다. 부르심의 문은 침묵의 열쇠, 수동성의 결정으로만 열리기 때문이다. 

밤의 다른 모습은 없음이다. 높낮이를 확인할 수 없는 시간.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길을 걸어갈 때는 오로지 방향만이 존재할 뿐이다. 동방정교회에서 기리는 공현절(1 6)은 판단 대신 방향만을 쫓는 동방박사(동방의 예언자)들을 기리는 시간이다. 그들의 여정의 끝은 성탄이다. 그들은 예수를 만났다. 그들은 거룩한 탄생을 방향만 보고 어두운 길을 갔기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판단은 없었다. 그저 계시만 보고 방향을 따랐을 뿐이다. ‘거룩함을 경배하기 전까지 멈추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보는 삶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동방박사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매일 찾아오는 밤하늘은 우리의 가장 큰 축복이다. 우리를 땅이 아니라 하늘에 집중하게 한다. 내 발아래는 보이지 않으니, 판단 할 수 없기에 나는 올려다본다. 그렇게 방향은 잡는 것이다. 판단 없이 방향을 가지고 묵묵히 먼 길을 달려가는 일 이외에는 구도의 길에 해답은 없다. 

이제 다시, 보름달이 가까워온다. 점점 채워지다 정점 한 가운데, 둥실 떠올라 밤을 지배하고 그렇게 점점 내어주는 삶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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