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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자연 시리즈 6) 태양

작성일 : 2017-02-18       클릭 : 203     추천 : 0

작성자 원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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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자연 시리즈 6) 태양

아이들이 잘 자라려면 햇볕이 잘 드는 곳이어야 해요.” 공동육아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진 노루샘의 말을 듣고 나는 흠칫 놀랬다. 아이들이 잘 자랄 조건으로 햇볕이 잘 드는 땅을 고르다니. 대부분 내 아이는 잘 기르고 싶다. 발달 단계에 맞는 장난감을 사고 유명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등록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잘 자라는 지 키와 몸무게를 재어본다. 좋다는 것을 먼저 배우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아이들이 잘 자라는 조건으로 볕쬐기 좋은 곳을 꼽는 것을 들으니 통쾌하면서도 신선했다. 자본이나 물질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느낌이랄까. 언제든지 쬘 수 있을 것 같은 햇볕의 역할을 안 것은 더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았다. 태양에 완전히 익어 바로 따먹는 채소며 과일들의 맛이 최고라는 것을 안지는. 몇 해 전 남의 집 밭에서 잘 익은 토마토를 갓 따 한 입 베어 물어보고 달다라는 말을 절로 외쳤다. 그렇게 알고 나서 잘 익은 토마토를 가지고 해마다 토마토 철이 되면 나는 토마토 스프를 끓이곤 했다. 그 따듯함을 마음속에 가득 채워 수고하는 삶의 발걸음에 축복해주고 싶어서였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만물의 최고 상태는 거저 받는 듯 보이는 태양을 충분히 누릴 때다. 큰 울림으로 이어진다. 내 노력보다 나의 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머리를 치우고 저기 저 하늘을 올려보아야 넘치는 풍성함의 때를 만나는 일이다. ! 내 열심을 내려놓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내 의를 내 뜻을 내려놓고 섭리에 맡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다. 나만 그런 것일까. 성경 속에서 위로를 찾아본다. 가장 의로운 이로 꼽히는 욥은 온갖 고난 끝에 드디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린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42:3) 머리로 가렸다는 고백을 바치니 야훼는 드디어 답변을 해준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42:4) 

태양 아래 익은 토마토
강한 태양만 먹을 것을 익히지 않는다. 그늘 속에도 태양이 속속히 아래 익은 표고버섯


알지 못하는 이는 입을 다물고 머리를 치우고 야훼께 배우라는 말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들은 답변이지만 새삼 하느님의 뜻이란 내 세계에 갇혀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머리는 하늘을 가장 가깝게 두어야 하며 언제든지 태양을 쬐고 그 아래에서 그 뜻을 헤아려야 하는데, 가리기만 한 내 머리 때문에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대목이다. 

이런 고백 없이는 아무도 그 분 가까이 가지 못한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 태양을 찾자. 눈부심에 마주볼 수도 없다. 짐짓 태양은 늘 그 자리에서 있지만 나는 늘 움직이며 하루를 보낸다. 시간은 정지했으며 움직이는 이는 일 뿐이다. 하루의 변화는 낮과 밤의 구분과 경계는 나의 움직일 뿐이다. 모든 경계는 나의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언제나 같은 빛을 내고 있는 태양을 누리거나 누리지 못하거나 모두 나의 방향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하루를 산다. 하루는 만물의 평등함의 상징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하루가 주어진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잘 난이나 못난 이나 높으나 낮으나 우리를 하루를 산다. 하루를 벗어나는 누구는 아무도 없다. 그 시간의 한계는 모두를 겸손하게 하는 유일하면서도 귀중한 기회다. 그러나 자신의 상태에 따라 하루 종일 어둠 속에 사는 이도 있으며 하루 종일 빛 속에 있는 이도 있다. 그 깨달음은 주님의 동행과 연관이 있다. 빛과 함께 걸어있는 동안은 낮이다. 어둠은 어둠이 아니다. 

우리를 보게 하는 태양


성전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주님을 만난 즈가리야는 그래서 노래한다. “하늘 높은 곳에 구원의 태양을 뜨게 하시어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즈가리야성가 )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는 태양에 대한 나의 방향과 깊은 연결 고리를 맺는다. 나는 어디 있는가. 

십자가의 최고의 순간이 태양이 우리 머리 꼭대기에 머물던 시간이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오후 세시까지 계속 되었다. 태양마저 빛을 잃었던 것이다.”(23:44-45) 태양을 어디에서 잃어버렸던 것일까. 사순절이 다가온다. 십자가의 최고의 순간을 향해 달려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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