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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자연 7) 새싹

작성일 : 2017-02-24       클릭 : 231     추천 : 0

작성자 원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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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자연 7) 새싹

‘느림의 승리’ 새싹을 난 이렇게 부르고 싶다. 새싹은 우리들에게 봄을 알린다. 이른 봄 우리는 새싹으로 봄을 맞이한다. 땅을 뚫고 나오는 그 힘은 그 여린 잎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비로소 여린 잎이 땅을 헤치고 나오는 순간 아! 태양은 만물을 비춘다. 천천히 언제부터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 왔는지 그 순간은 구분하기 어렵다. 뿌리에서 물을 빨아드리고 힘을 내어 하늘로 하늘로 솟아오른다. 땅에서 하늘로 향하는 구체적인 실천은 한 순간이 아니라 천천히 변화하는 행동으로 가능한 것임을 깨닫는다. 

새싹은 우리들에게 아기 예수다. 구원자이신 예수는 헐벗은 몸으로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아기로 오셨다. 그 용감함, 그 열림, 그 민낯에 우리는 무릎을 꿇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나를 구원하신 그분은 연약한 살결을 가졌으며 진실하게 만물 앞에 서셨다. 무기도 장기도 지니지 않은 그 상태. 태초의 모습 그 자체로 아기는 오셨다. 그 아기를 키워내는 여정으로 우리는 오주봉헌까지의 성탄 여정을 걷는다.

자칫 구원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은 폭군이 된다. 예수를 깨닫지 못하는 왕, 어리석은 자의 대명사 헤로데는 아기를 두려워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렸다. 생명을 짓밟는 일이 서슴없는 것은 자기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우리는 헤로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아기 예수를 가슴에 품고 기도해보아야 할 일이다. 

오랜 시간 기다린 구원자가 아기의 모습인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새 얼굴을 가진다. 닮고 싶은 그 열림과 그 민낯은 보드랍지만 진실하며 의존적이지만 나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적극성을 담고 있다. 아무 것도 없음, ‘무(無)’의 아기는 나를 꿰뚫고 드러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새싹을 아기 예수에 빗대본다. 봄이 오면 우리는 들로 나가게 된다. ‘봄 나들이’란 말은 봄에 잘 어울린다. 들녘의 기운이 ‘새 삶’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많은 이들이 싹을 뜯는다. 봄나물의 여린 잎을 캐기 위해 흙을 만진다. 그 흙을 헤짚고서야 봄 기운을 가득히 받고 비로소 삶을 살아갈 힘을 낸다. 해마다 새싹이다. 새로운 잎, 묵은 해의 묵은 잎은 소멸되어 없어지고 온전히 부활한 새 잎은 우리들의 봄 축제에 절묘하게 잘 맞는다. 때로는 그 색이 연한 녹색을 띠기도 하고 때로는 꽃물 들은 잎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향연을 구약 성경에서 축복이라고 부른다. 해마다 새로운 모습이란 기도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시편 65편에서 하느님은 농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 땅을 찾아오시어 비를 내리시고 풍년을 주셨습니다. 손수 파놓으신 물길에서 물이 넘치게 하시어 이렇게 오곡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밭이랑에 물 대시고 흙덩이를 주무르시고 비를 쏟아 땅을 흠뻑 적신 다음 움트는 새싹에 복을 내리십니다.”(시편 65:9-10) 라고 했다. 

상상이 되는 구절이다. 나의 농사의 주관자가 그 분이시니 나는 그저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농사의 열매를 얻을 수 있게 되는 일이다. 농부 하느님은 힘차며 직접적으로 관여하시니 걱정을 몰아낸다. ‘내 농사는 그 분 뜻이리라’고 고백하게 된다. 

이사야에서도 장차올 평화로운 왕국의 징조를 말하며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이11:1)고 했다. 이제는 잘린 나무 그루터기만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햇순이 돋아나오고 뿌리에서 돋아나오는 새싹은 새 희망이며 다시 살아갈 날개이며 이정표가 된다. 하느님만이 죽은 듯 보이는 그루터기와 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뿌리에서 햇순을 끌어내실 수 있다. 나는 그 힘으로 ‘느린 걸음’을 걸어가면 된다. 느린 걸음은 한 걸음이며 같이 걸어가는 동행자의 걸음이기에 가볍다. 

‘싹을 통한 비유’는 공관 복음서에 곳곳에 나와 있다. 씨앗마다 담긴 길이 다 달라 어떤 모양을 이룰지는 사람의 뜻으로는 헤아리기 어려다. 언어의 전공자는 아니지만 ‘씨앗’과 ‘싹’은 글자의 모양도 발음도 닮아 있다. 씨앗의 결과처럼, ‘싹’을 부르게 된다. 연유가 있을까. 

각자는 마음의 씨앗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 씨앗이 싹 틔우는 과정을 갈망하며 기도하게 된다. ‘하루 하루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 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마르4:27-48) 

마음 안에 봄의 새싹을 기다리기를, 나를 주관하시고 구원하시는 여린 새싹을 온몸으로 기뻐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려본다. 주님만이 가능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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