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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자연 시리즈 8) 공기

작성일 : 2017-03-04       클릭 : 235     추천 : 0

작성자 원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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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자연 시리즈 8) 공기


최근에 공기청정기를 집에 들였다. 동산 옆에 사는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피부가 갑자기 너무 예민해져 이상하게 여긴 옆지기가 나 모르게 저지른 일이었다. 동의할 수 없어 박스 채 일주일을 보냈지만 그 녀석을 사용하고 있다. 상태가 나아졌다. 신기한 피부를 지닌 나! 내 피부는 아주 예민한 상태여서 공기나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조금만 달라지면 금방 느낄 수 있다. 가려움증을 가지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서점에 발길을 끊게 된 것도 공기 때문이었다. 소소한 빈티지 옷들을 하루 종일 구경하면서 기웃거리던 내 삶의 패턴은 가려움증을 더욱 나쁘게 했다. 내 도시 생활의 일상은 나쁜 공기를 가까이 하는 삶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먼지 쌓인 곳에서 세월을 만질 수 있는 곳을 좋아했다. 그런 내가 공기를 바꾸기로 결심한 것은 참을 수 없는 내 존재 때문이었다.

 

‘가려움’은 나를 머무를 수도 안정적으로 이끌지도 않았다.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처음 찾아 밤을 보내던 날, 나는 비로소 가렵지 않게 되었다. 공기가 달라진 것이다. ‘선한 공기’(내가 이렇게 부르는 연유는 분명 나에 대한 자극 때문이다.) 빈 공간에서 받는 기운으로 나는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매번 나의 상태에 대해 예민하게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대답해주는 내 괴로움은 제껴 두더라도 나의 상태는 나를 가만히 있지 않게 하는 것은 분명했다. 예민함을 지닌 나란 존재는 특별한 초대를 받아드려야 했었던 것일까. 나는 오늘 여기에 살고 있다. 비어 있는 그것이 내게 무엇을 한다는 것이다. 내게 분명히 신호를 보냈다.

 

‘공기’가 내게만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 얼마 전 귀농을 하고 화초 모종을 키우는 시누이와 이야기 나눌 일이 있었다. “흙이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그 중에 추천할 만한 흙은 지렁이 흙이에요. 다른 흙보다 더 보송보송해요” 나는 흙이 보송보송하다는 말 속에서 지렁이가 흙 사이를 헤 짚고 다니는 상상을 했다. “여유로와지고 숨 구멍이 많아졌군요.” 신기했다. 식물도 여유로운 공간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빈 공간이 주는 선한 기운으로 우리는 분명 완성된다. 완성은 공기로 이루어진다. 만물의 생명들은 공기 없이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공기는 분명히 다른 역할을 한다.

 

‘여백(餘白)의 미.’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예술 완성시키지 않는가. 음악도 미술도 여백과 생략과 내용을 담지 않기에 완성미를 보여준다고 믿는다. 침묵 없는 기도가 얼마나 허무한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나의 요구만을 늘어놓는 기도들은 응답받을 여백이 없다. 잃어버린 은전 두 닢을 찾아 온 방을 찾아 헤매는 과부의 모습 속에 에덴동산을 찾아 헤매는 창조주의 모습은 오버랩 된다. 죄지은 아담을 부른다. 그 소리로 우리는 되돌아서게 한다.

 

어지러운 물건들과 일정들 속에서 중요한 열쇠나 지갑 속 카드는 결정적인 순간에 사라진다. 뭐가 많으면 찾기 힘들다. 우리의 영성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바쁘고 내 안에 가득하면 나는 주님 앞으로 가지 못한다.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는 외침에 몸을 숨기기만 할 뿐 응답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돌아갈 기회를 놓치게 된다.

 

공기(空氣)란 단어는 ‘비어있는 곳의 서려있는 기운’을 말한다. 그 옛 사람들은 빈 공간에 서린 특별한 기운을 알고 있었다. 무(無)가 창조의 영역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텅 빈 것은 충만이다. 성서 속에 수 많은 곳에서 비움과 채움으로 진리를 말씀하신다. 비우는 순간 채우는 길이 수난과 부활의 여정 아니겠는가. 알고 있는 예수를 못 박아야 그 다음에 오는 순전한 부활한 예수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비우지 않는다면 채울 것도 없는 것이다.

 

“정결 예식에 쓰이는 두세동이들이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다.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그 항아리마다 모두 물을 가득히 부어라.’하고 이르셨다.(요한2:6-7)" 

먼저 비우자, 그러면 채워지리라. 공기를 맞이하자. 그 공기가 움직이는 일에 나를 맡겨보자. 힘을 빼고 그 공기 속에서 나의 성장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 성장은 빈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쉬고 비워서 충만해지는 여정이 이 사순절의 여정일 것이다. 용기내어서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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