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리는 가난하게 살고자 한다.
방정선(아동청소년국)
나눔의집 영성의 마지막은 “우리는 가난하게 살고자한다”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가난이란 돈이 없고 집이 없고 집에 먹을 것이 없어 잘 먹지 못하고 옷이 헤어진,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일 것입니다. 가난이란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닌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가난만 가난이라 여깁니다. 그렇다면 나눔의집에서 말하는 가난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저러한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요.
몇 년 이상의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지난 2년여 동안 여기서 함께 지내며 보고 듣고 느낀 나눔의집이 말하는 가난이란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인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내 손에 있는 것들을 넘치도록 가지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타인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 말입니다. 나 혼자만 가득찬 그릇을 품에 안고 흘러넘치지 않게 조바심 내는 것이 아닌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의 한 켠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 나눔이며 가난하게 살고자 하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욕심 많은 사람들은 나눔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 이미 공허하여 계속 채우고자 하니 어떻게 타인에게 나눔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사람들에게는 나눔을, 자발적 가난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함께 품어가야 할 사람들, 그 공허함을 함께 나누며 채워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할 것입니다.
나눔의집에서 마주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가난은 현실의 가난한 삶보다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과 현실의 그 가운데 어딘가 쯤 있을 나눔의집의 위치와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함께 나누고 마음을 준다면 분명 사람들의 마음속에 천국을 가져다 줄 수 있겠지요. 아직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천국을 인도하는 길이 나눔의집 안에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길을 함께 찾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 저희의 할 일 중 하나이겠지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다 (마태복음 5:8)” 라는 성경 말씀처럼 현실의 가난이 우리에게 고난이 될 지라도 그 또한 또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내고 이루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믿는다면 가난은 슬픔이 아니라 희망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나눔의집이 희망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가난과 환경에 대한 재인식과 체화”입니다. 가난의 또 다른 이름을 나눔의 삶이라고 한다면 변해가는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몸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자체 인 것 같습니다. 머리와 말로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보다는, 그러한 생각들을 몸소 실천으로 옮기는“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나눔의집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고자 하는 진정한 가난의 의미이자 추구하는 방향이며 제가 여기서 깨달은 부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