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 드보라 신부/ 전주교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이 지난 주일입니다. 많은 사람의 열망과 기대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해 온 100일입니다.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현 정부에 새로운 대한민국의 도약을 바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기대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짓누르던 부정부패, 그리고 힘 있는 이들에게만 예외 없이 특권이 적용되던 불공정함, 이 모든 적폐를 청산하는 일에 대한 기대이기도 합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부모의 학력과 재력에 따라 흙수저, 금수저, 무수저로 계층이 나뉘며 청년들이 출발도 전에 좌절을 먼저 경험해야하는 우리 사회! 힘 있는 이들의 갑질 논란, 불안정한 고용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차별을 참아내고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 사회! 무한경쟁속에 내몰려 그 어떤 삶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만이 비대하게 중시되는 우리 사회! 이 모든 것은 경제성장이라는 허울에 감춰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며 그 감춰진 모습속에서 우리의 내면은 또 얼마나 신음해 왔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신음은 항상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약자들의 몫이 되어야 했습니다.
가정이 해체되고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만날 때 그 신음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음 이전에 부부로서 관계함에 어려움을 겪고 신음하는 부모가 있음을 또한 보게 됩니다. 부부로 살아감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한결같이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았고 피해를 입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불공정한 사회속에서 묵인해온 차별들이 우리 안에 이러한 집단적인 억울함을 심어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입니다. 그 억울함은 억울함에서 그치지 않고 그 상처와 수치심을 되갚아주려 합니다. 내가 상처 입은 만큼 타인도 상처 입도록 하거나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넌 그런 사람이야!” 하며 상대를 비난하고 비하하며 자신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지키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나를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야, 혹은 상대의 이런 마음 때문이야’ 라며 타인의 태도와 생각을 속단합니다.
이렇게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꽉 짜여진 생각은 타인을 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그 생각의 감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합니다. 아담이 홀로 있음이 안쓰러워 서로의 편이 되어 줄 하와를 짝지어주신 하느님의 뜻과는 다르게 이제 서로가 서로의 지옥이 되어가는 지경이지요.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속에서 일어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대인들의 차별과 불공정함속에 살아가는 이방인, 그것도 여인으로 예수님에게 자비를 간구하는 가나안 여자를 우리는 만납니다. 기득권의 세계속에서 밀려날 대로 밀려난 이 여인에게서 우리와는 다르게 차별속에 찌든 피해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되묻는 이 여인의 당당함은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차별을 묵인해 온 이들의 생각을 깨부수는 저항으로까지 여겨집니다. 여인의 이 겸손어린 저항은 바로 믿음에 기인합니다. 세상은 이방인을 하느님에게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여겼지만 이 여인은 자신과 딸을 여전히 하느님의 보호속에 있는 존재라고 믿는 것이지요. 우리 교우님들은 스스로를 어떤 존재라고 믿습니까? 그리고 자신과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 사람은 또 어떤 존재라고 믿습니까? 우리는 그 믿음대로 세상에서 관계하고 세상에서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바꾸어 그 사람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하는지, 세상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지요.
그 동안 우리는 차별을 참아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해진다고 믿어왔습니다. 타인의 잘못된 태도로 인해 내가 불행하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사회도 그리고 나 자신도 그 믿음을 바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우리 신앙인이 해 가면 어떨까요. 자신의 생각에서 한 걸음 걸어 나와 믿음으로 이 땅에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인을 더욱 신앙인답게 빛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역사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세상이 어둡고 길을 잃는 순간에 그 빛을 더욱 빛내왔습니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은 불평등의 세계가 변할 수 있다는 믿음, 나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던 관계가 서로의 자숙과 이해속에 협의점을 찾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갇혀있던 자기생각에서 걸어나와 너의 생각으로, 우리의 생각, 그리고 예수님의 생각으로, 사랑의 확장을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