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고백”
장동윤 미카엘 신부 / 유성교회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물어보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제자들은 사람들이 나누던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는 사람, 엘리야라는 사람, 예언자 중에 한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주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대답에 다시 물어보십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주님의 이 질문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질문입니다. 나자렛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저마다가 주님을 만난 상황, 주님에 관해 들은 이야기, 저마다가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에 우리들도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 고백하듯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고백하는 나자렛 예수입니다. 누군가의 신앙고백이나, 누군가가 전해준 나자렛 예수가 아닌 내가 만나고 경험한 예수, 그리고 나자렛 예수로 인한 구원과 그에 따른 고백이 신앙의 삶에는 중요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신앙의 삶에도 베드로와 같은 고백이 올려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양한 모습중의 일부분을 고백하는 것이 아닌 구원, 메시아, 그리스도에 관한 자신의 고백이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더해져서 교회는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도 당신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백들이 지금 우리의 교회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기초이고 힘이고 본질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외형적인 모습으로 대체할 수 없고, 바람이나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삶을 만들고 공동체를 형성하게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녀들과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사도 바우로의 고백처럼 부족한 우리에게 믿음과 사랑, 한량없는 관용을 베풀어 주시길(1디모1:15-18) 바랍니다.
주님은 올바른 믿음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녀들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머님들이 곳간의 열쇠를 넘길 때는 자녀가 잘 할 것이라는 믿음과 책임을 동시에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쇠를 넘겨받은 자녀는 그 뜻을 잘 이어갔습니다. 한 집안의 열쇠는 신임을 얻고 그 책임을 다 할 수 있을 때 주어집니다. 구약에서 보면 요셉은 이집트의 노예에서 이집트의 통치를 맡는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방인이자 노예인 요셉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능력에 힘입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고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믿음을 고백하면서 얻게 되는 하늘나라의 열쇠는 하느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는 은총이자 기쁨인 동시에 맡겨진 책임을 잘 완수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특권이 아닌 이 땅의 매인 것을 풀어야 하는 사명이고 책임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마음과 입술을 통해 계속해서 올려지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