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토마스 크랜머 (캔터베리대주교, 전례개혁자, 순교자, 1556년)
토마스 크랜머는 1489년 노팅햄에서 태어났습니다. 캠브리지대학의 학감으로 있던 그는 1529년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 혼인무효를 원하자 그런 왕의 입장을 신학적으로 옹호해 주면서 신임을 얻게 되어 1532년 켄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크랜머는 영국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또한 그는 영어 성경의 출판에 힘을 썼으며,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오르자 그의 개혁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켐브리지 대학교 학생 때부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크랜머 대주교는 1549년 영문 성공회 기도서(영어: 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작성하고 출판하였습니다. 이러한 크랜머의 업적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 당시 라틴어로 드리는 미사를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 라틴어 미사를 과감히 버리고 모국어(영어)로 예배를 드리게 하였다.
둘째, 그는 예배에 평신도가 구경꾼이 아닌 진정한 예배자로 참여할 수 있길 원했다. 이전까지 일반신자들은 사제가 저 앞의 제대에서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라틴어)로 뭔가 비밀스럽고 신비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을 먼 치에서 구경만 할 따름이었다. 크랜머가 당시 여덟 번 드리던 베네딕트 수도원의 기도를 축약해서 아침과 저녁기도 두 번으로 한 것은 신자들이 사제가 없어도 자신들끼리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셋째, 크랜머는 예배를 단순화했다. 로마교회의 중세기적 예배양식과 기도서들은 너무 복잡 하고 많아서 언제 어느 예배양식을 쓰고, 무슨 동작을 어떻게 하고 하는 소소한 일에 신경쓰느라 정작 예배의 심장은 놓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랜머의 기도서는 그 모든 것을 단순화해서 한 권에 집약해 놓은 것이다.
넷째, 신자들이 좋은 설교를 듣고 성서를 체계적으로 읽음으로써 신앙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성공회 신자들이 기도서 정과표대로 성서를 읽어나갈 때 일 년이면 대략 신약을 세 번, 구약의 주요내용을 한번 읽고 묵상할 수 있게끔 배열하였다.
다섯째,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번번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번 온전히 드려진”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 변화한다고 하는 화체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드리는 감사와 찬미가 더 중요한 것으로 강조했다.
에드워드가 1553년에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열렬한 로마 카톨릭 신봉자인 메리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메리는 에드워드의 개신교적 제도를 벗겨내기 시작했습니다. 1555년에는 수많은 주교가 화형을 당했는데, 라티머(Latimer)와 리들리(Lidley)에 이어 공격의 화살은 크랜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는 공격의 화살 앞에서 잠시 개혁적 신앙을 철회하는데 서명 하였으나 이내 그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확고히 선언하고 마침내 화형장에 끌려가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신앙을 철회하는데 서명했던 오른손이 불에 다 타 재가 될 때까지 무서운 인내를 가지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크랜머는 오른손을 뻗어 불길에 집어넣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이 손이 죄를 지었소!” 크랜머의 몸이 불붙어 다 타버릴 때까지도 그는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가 될 때까지 뻗은 손을 불길에서 빼지 않았던 크랜머의 최후 장면은 당대 영국 그리스도인들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고 그때까지 영국 땅에 남아있던 로마교회에 대한 심정적 지지는 그날 1556년 3월 21일자로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후대의 사가들은 전해줍니다. 크랜머는 당시 대륙의 종교개혁에 깊이 영향을 받았고 교회의 모든 진리는 오직 성서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토마스 크랜머의 기도 (Thomas Cranmer 1489-1556)
오 하늘에 계신 아버님,
세상을 구원하신 아드님,
오 두 분께로부터 오신 성령님,
성삼위일체이신 하나님,
비겁한 겁쟁이요 가련한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악한 죄를 하늘과 땅에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어디로 갈 것이며 어디로 도망하여 구원을 얻겠습니까?
하늘에서는 눈을 들지도 못 할 만큼 부끄러울 것이요,
땅에서는 그 어디에도 피난처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제 어찌해야 하옵니까?
이대로 절망에 빠져야 합니까?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오.
오, 좋으신 하나님, 당신은 자비로운 분이시오,
살려달라고 오는 자들을 내치지 않으시는 분인 줄 압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께로 달려가오니,
당신 앞에 무릎을 꿇사오니,
비록 저의 지은 죄가 무겁더라도
오 주 하나님 저에게 크신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오 아들이신 하나님,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사랑으로 오신 이 큰 신비는 몇 사람의 사소한 범죄로 인하여 가려지지 않습니다.
오 아버지이신 하나님,
당신은 우리의 사소한 죄 때문만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빚어지는 온갖 큰 죄악들을 없애고자 아드님을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죄인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에서 제가 그러듯이, 당신께로 돌아갑니다.
오 주님,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당신의 일인지라 저 또한 당신의 자비를 피할 수 없습니다.
비록 저의 죄가 크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욱 당신의 자비가 크시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 저의 공로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요 저는 그것들을 조금도 붙잡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입니다.
<토마스 크랜머- 핸리 8세와 에드워드 6세가 영국을 다스리던 때 켄터베리 대주교로서 영국 종교개혁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러나 천주교인 매리 여왕이 집권하자 이단으로 지목되어 화형당했다. 처형장에서 큰소리로 드린 그의 마지막 기도는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