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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세계성공회의 한 세기 (1914-2014)” 2

작성일 : 2014-05-03       클릭 : 319     추천 : 0

작성자 약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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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성공회와 이데올로기 (1914-2014)

 

영국 성공회의 사회 학자들은 1914년과 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기독교 사회주의에서 강한 관심을 갖었다. 19세기 중엽 Charles Kingsley, F.D. Maurice, Stewart Headlam, Scott Holland and Charles Gore 같은 인물들은 성마태 길드(1877) 조직과 기독교사회노조(1889)과 같은 조직에서 기독교 사회주의의 다양한 신학들을 내세웠다. 이들 기독교 사회주의 옹호자들은 성서와 초기 기독교 (사도 244절이 핵심 본문인데, 첫 기독교인들은 모든 것을 나누었다”)에서 사회적 교리들을 발견하려고 했고, 영국 자본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삶의 심각한 불평등을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운동과 페이비어니즘 (Fabianism)과 같은 세속 이론들과 사회주의의 실천들을 출현시키면서 대화를 하였다. 영국에서 앵글로-가톨릭 성직자들은 도시들 중에 가장 가난하고 가장 착취받는 지역에 뛰어들어가는 빈민 성직전통이 이러한 기독교 사회주의 전통의 한 부분이다. Frank Weston 주교는 필자가 키쿠유 논쟁과 연결시켜 말한 분으로, 기독교 사회주의를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러시아 혁명과 맑스 이론의 등장 또는 가톨릭 십자군 (Catholic Crusade) 창설자인 Conrad Noel (1869-1942)과 같은 극단적인 기독교 사회주의자의 이념은 기독교 맑스주의자가 되었고, 197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가톨릭 해방신학의 선두주자들이 되었다. 필자가 연구했던 미국의 앵글로-가톨릭 맑스주의자인 F. Hastings Smyth (1888-1960)도 그중 한 인물이었다. SCC (?)의 한 멤버이었던 Archer Torrey 수도사는 1950년대 서울 성미카엘신학원의 교수 요원이었다. 한국에서 펼쳐진 1980년대 중반 이후의 나눔의 집운동과 사회선교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정의, 경제적 분석과 혁명과 같은 세속 운동과 이념에 대한 이러한 강한 상호영향은 최소 19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세계성공회의 앵글로-가톨릭 전통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식민지의 합병에 반대하여 토착 문화와 언어를 지키려했던 성공회의 이러한 확신과 더불어, 이것의 신학적인 뿌리들은 성육신 (Incarnation)에 있다. 곧 하나님이 직접, 그리고 인간의 생명과 문화를 확신하고, 우리의 세상에서 예언하다 죽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 신의 자기 비움’ (the divine self-emptying, 희랍어로 kenosis) 속에서 정의를 위한 변화를 취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모든 중요한 이념들이 진리 (모든 진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를 구분하려는 시도가 있으면서, 이념과 함께하는 성공회의 상호영향은 성공회의 성서, 이성, 전통이라는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성이라는 성공회 정신에 반영되고 있다. (덜 지성적이고 경건주의에 영향을 받은 성공회의 복음 전통에서는 기독교가 세속 이념들로 대치하고, 이 이념들을 세례” (baptize) (역주: 정화) 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 신학적인 견해를 반영하면서, 이념들과 대화를 하는데 더욱 크게 조심해왔다. 가톨릭 성공회는 가령, 보편적인 인권 (개인과 사회 모두)의 이론과 실천, 가부장주의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적 분석 (많은 공동체에서 여성 부제, 사제 주교 서품에 대한 결과를 보이고 있음), 그리고 동종이형적인 성 (dimorphic sexuality)에 대한 비판, 그래서 성적 소수자들 (게이, 레스비언과 성전환자)을 하느님 창조의 합법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는 한국전쟁 이후 대한성공회가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사회적 정치 이념들과 더불어 이러한 글로벌한 세계성공회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의 한 일원이 되고자 성공회대학교에서 사회과학 교수들의 강한 비판한다는 것을 읽었었다. 민중신학은 반식민주의에 대한 소신이었으며, 전체주의의 정치 질서에 대한 반대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제가 1988년에 캐나다 에큐메니칼 지도자들과 함께 북한에 방문했을 때, 우리는 주체 이념에 대한 북한의 연속되는 홍보를 들어야만했다. 우리는 비록 주체사상이 실천적으로는 그렇게 잘 움직이지는 않는다 하더라고, 기독교인들에게 이념적인 대화를 하는데에는 한 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극을 받았다. 물론 이데올로기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에서 국가적 사회주의라든가 일본의 천황제 (Tenno System) 같은 경우는 악마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심지어 종교적인 것 (가령, 미국에서 창조과학회)과 같은 이념들에 대한 비판 역시도 이러한 성공회 전통의 한 부분이다. 현재에도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 경제 또는 소유욕이 강한 개인주의와 같은 것을 비판할만한 가치가 있는 글로벌 이념들이 분명히 있다. 저는 성공회대학교가 이러한 비판에 관여한다고 확신한다.

 

세계 성공회와 평화와 화해 (1914-2014)

 

1914년은 세계1차대전이 시작한 해이다. 191482, Randall Davidson 캔터베리 대주교는 런던 Westminster Abbey에서 설교 중에, “현재 유럽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활동이 아니라 악마의 활동이라는 것임을 선포했다. 전쟁 중에 캔터베리 대주교와 주교회의 (영국 성공회를 치리하는 중요 기관)는 영국이 독일 시민들에 대해서 독가스와 보복 공습하는 것을 반대했다. 대주교는 성직자에게 남자들에게 징집을 촉구하는 설교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행동은 정부와 일반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쟁, 그리고 국가주의와 종교의 과도한 흡수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발을 표현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가면서 영국교회는 회개와 희망의 국가적 선교’ (a National Mission of Repentance and Hope)를 펼쳐나갔다. 1920년 람베스 회의(Lambeth Conference, 역주: 전세계 주교가 10년마다 모이는 주교회의)에서 나온 첫 여덟 개 항목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한 인식과 선한 국제 관계의 회복을 촉구하고, 국가 연합과 독일에 대한 승인,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를 종결하고, 계속되는 이러한 고통들을 구제하는 전쟁을 촉구하는 전후의 상황을 다루었다. 십년 후, 1930년의 람베스 회의에서 나온 25개의 결의문은 이번 회의는 국제 분쟁들을 수습시킨다는 방법으로서 전쟁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례와는 함께할 수 없음을 선포했다.

 

이와 유사하게 성공회 지도자들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사려깊은 제재를 표현했는데, 그것은 치체스터 교구의 George Bell 주교가 독일의 드레스덴 (Dresden)과 다른 도시들을 폭격하는 영국 항공부대를 의회가 승인하게끔 한 처칠 수상에게 매우 분노했다. 1948년의 람베스 회의는 1930년에 나온 9번 항목인 전쟁 반대를 재추인했다. 그리고 15번은 UN의 활동을 결정했다. 더욱 최근에는 Robert Runcie 캔터베리 대주교는 1982년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설교 중에, 포크랜드 전쟁(Falkland War)을 일으킨 마가렛 대처 수상에게 분노를 표시했다. 세계 성공회는 평화와 화해의 깊은 전통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남아프리카, 캐나다와 솔로몬 아일랜드와 같은 다양한 장소에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에서 후기-갈등(post-conflict)에 성공회가 강하게 참여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이고 있다. 성공회의 평화와 정의 네트워크가 현재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 이 전통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미카엘신학원과 그의 후계가 되는 성공회대학교는 일본 식민주의,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으로 분단을 경험하였기에,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활동을 포함하여, 평화만들기와 화해의 이러한 전통에 자금심을 갖는 모든 이유를 갖고 있다. 평화와 화해와 통일에 대한 이러한 소임은 공식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불인정도 성공회 전통의 한 부분이라는 것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붙들어야 한다.

 

결론

 

과거 한세기 동안 세계 성공회에는 이밖에도 많은 주제들이 있다. 네 가지 영역에 조금 더 추가해 본다면, 성서 해석의 변화하는 방법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성장에 반대하는 앵글로-미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숫적 감소, 분열과 갈등과 분파라는 그릇된 흐름들을 변화시키는 것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제가 주장한 네 영역들은 중요한 것이라고 믿으며, 지난 한 세기 동안 해방과 자치와 자유를 위해서 성공회로서는 적극적인 개입을 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여 성공회에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내면 보기와 자기 상태 보호 등을 보여주는 대조적인 형태들도 있다. 하지만 성미카엘신학원과 성공회대학교에 대한 저의 인상은 제가 기술한 네가지 영역들을 갖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관련짓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이러한 방향으로 잘 지속시킬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번역 : 김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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