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 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 그 이후
[미국성공회 소식 – 정재욱(요한) 신부]
지난 6월 25일부터 7월3일까지, 모든 미국성공회 교인들의 눈과 귀는 미서부에 위치한 유타주의 솔트 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를 향해 있었습니다. 제 78회 전국총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국총회 기간 동안에는 크게 두 가지 안건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이후 제기된, 동성간의 혼배예식을 위한 교회법의 개정문제였습니다. 이전의 교회법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 Man and Woman간의 연합으로 혼배예식을 규정했는데, 이번 개정에선 “두 사람”간의 연합이라는 의미로 “Couples” 로 대체함으로써 동성간의 혼배예식을 위한 교회법의 정비를 마친 것이지요. 그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미국성공회 뉴스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결혼에 관한 특별 입법위원회의 의장이었던 브라이언 베이커는, “이번 교회법 개정은 1979년의 전국총회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평등권을 거론하기 시작한 이후 36년간의 긴 대화의 결과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고 회고합니다. 그러나 교회법이 개정되었다고 동성혼배예식이 모든 지역에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개정이 발효되는 올해 2015년 11월 1일부터 대부분의 진보적인 지역들에서는 성공회 교회에서 동성혼배예식이 거행되겠지만, 달라스Dallas나 알바니Albany, 그리고 올란도Orlando 같은 보수성향의 지역에선 동성결혼에 대한 축복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많은 유력 신문들이 추측하고 있습니다. 교회법 용어개정으로 동성간 혼배성사의 길은 열렸지만, 동시에 어떠한 혼배예식이든 거절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성직자들의 권한 역시 교회법에 그대로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개정은 특별히 현재 의장주교를 맡고 있는 캐서린 쇼리 주교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의장주교 취임 이후, 성적소수자들의 성직서품에 반대하는 미국성공회 내의 보수적인 교회들과 계속해서 법적 시비에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미국성공회를 떠나 새롭게 형성된 ACNAAnglican Church of North America라는 곳에 소속되길 희망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해당 교회에 소속된 건물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으나, 교회법상 미국성공회의 모든 건물들은 미국성공회의 소유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성공회가 모든 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자는 미국성공회도 ACNA도 아닌 변호사들이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법정 다툼에 소요된 비용으로 인해 현재 미국성공회 센터는 재정긴축을 해야 할 정도로 큰 출혈이 있었습니다.
성적소수자들의 문제로 이렇게 힘든 9년을 보내고, 의장주교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성공회 성직자와 교인들이 믿고 있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세례언약의 가치가 교회법 개정에 적용된 순간은 특별히 이번 전국총회가 의장주교로서는 마지막인 그녀에게 깊은 감회를 남겼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전국총회에서 두 번째로 큰 이슈는 차기 의장주교의 선출이었습니다. 4명의 후보가 나왔으나, 유독 한 명의 후보가 두드러졌습니다. 바로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의 교구장인 마이클 커리 주교였습니다. 마이클 커리는 유일한 흑인 후보였지만, 그의 명성은 이미 다른 세 사람을 크게 앞지르고 있었습니다. 마이클 커리는 전세계성공회 안에서도 이름난 설교가였고, 미국성공회 안에서도 대단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난 의장주교는 세계성공회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주교로 선출되었으니, 이번엔 미국성공회 역사상 최초의 흑인 의장주교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또 한번의 역사적 순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들이 이미 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의장주교 선출은 한 번의 투표로 끝났습니다. 투표가 한 번으로 끝난 것도 미국성공회 역사상 최초의 일입니다. 주교원House of Bishops의 투표권한이 있는 주교 174명중 121명의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표차이로 최초의 흑인 의장주교로 마이클 커리가 선출된 것이지요. 대의원House of Deputies도 일사천리로 이 투표결과를 인준했습니다. 수치상으로만 보자면, 사실상 “사건”입니다. Pew Research Center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미국성공회의 인종구성은 백인이 90%를 차지하고 흑인은 4%, 그리고 나머지 인종들이 6%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장주교 선출 직후, 특유의 유머감각과 거침없는 연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마이클 커리 신임 의장주교는 각종 미디어의 동성결혼에 관한 공격적인 질문에 대해 지혜로운 답변으로 대처하고 총기규제를 위한 가두행진을 지휘하는 등 준비된 의장주교라는 리더쉽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국총회로부터 위 두 가지의 큰 이슈들이 휘몰아치고 나서, 미국성공회 안에서는 조용히 그러나 너무나 중요한 한 가지 이슈가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미국성공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 안건이야 말로 가장 중요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는 셈입니다. 바로 공동기도서와 성가의 개정입니다. 이번 미국성공회 총회에서는 공동기도서와 성가의 개정을 시작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간의 성적소수자들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1979년 공동기도서의 개정이 미국성공회에 미쳤던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성공회를 떠나는 계기도 되었고, 성직자들과 신자들 사이에 예배양식 논쟁이 거듭되면서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든 교회 공동체에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나마 “임시”로 쓰자고 하고 미봉한 것이 오늘 날까지 이른 셈입니다. 미국성공회 교회법상, 공동기도서의 개정은 미국성공회 전국총회에 세 번 제시되어 인준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총 9년이 걸리는 작업인 셈이지요. 따라서 공동기도서의 개정은 재임기간이 겹치는 마이클 커리 신임 의장주교의 일생일대의 과업이 된 셈입니다. 이미 이번 솔트 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의 전국총회에서 각종 새로운 양식의 예문들이 소개되었고, 교구장들의 감독 하에 앞으로 3년간 새로운 예문들을 시범적으로 운용하게 됩니다. 소개된 양식들은 캐나다와 영국의 예배양식들입니다. 특별히 1962년 캐나다 공동기도서와 1985년에 캐나다에서 나온 대안 예식서들을 주목하는 중입니다. 또한 새로운 공동기도서는 포용적인 언어Inclusive Language로 작성될 전망입니다. 예를 들면, 현재의 공동기도서는 하느님에 해당하는 대명사를 그He라고 지칭합니다. 그러나 개정될 공동기도서에는 남성 대명사인 “그”라는 표현대신 성적 중립성을 위해서 하느님God을 그대로 쓰게 되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들 예식서 중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일부 예문들이 2018년에 열릴 차기 전국총회에서 공동기도서 개정에 활용하기 위해 제시가 되고, 6년 후에 있을 2021년 전국총회에서 공동기도서의 부분적인 개정을, 9년 후에 있을 2024년 총회에서 총체적인 개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해에 9년의 임기를 마칠 마이클 커리를 대신해서 새로운 의장주교가 선출됩니다. 마치 캐서린 쇼리 의장주교가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인권문제로 시작해서 동성혼배예식을 위한 교회법 개정으로 9년간의 여정을 마무리 했듯이, 마이클 커리 신임 의장주교 역시 공동기도서 개정 시작과 함께 임기를 시작해 개정이 마무리 되는 9년 후에 의장주교로서의 여정을 마무리 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미국성공회 전국총회는 다음과 같은 마이클 커리 신임 의장주교의 재치있는 위임 선언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담한 발자취를 따르러 갑시다. Go!”
이제 새로운 의장주교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힘차게 출발하는 미국성공회를 기도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소식 제공 정재욱(요한) 신부 소개]
뉴욕 롱아일랜드 교구 소속으로 세이빌에 위치한 St. Ann’s 에서 보좌사제로 시무중이며, 교구성소위원회 위원 및 교구내 아시안 성직자 모임 리더로 사역중입니다. 디자이너인 아내와 함께 쌍둥이를 포함한 네명의 자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생활과 사목활동을 하는 중이며, [개독해독]이라는 한인청년 대상의 팟케스트를 팟빵과 아이튠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다른 두 명의 젊은 사제후보 및 신학생과 함께 격주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 번역 편집 : 관구(교무원) 홍보협력팀
원고 제공 : 정재욱(요한) 신부
대한성공회 홈페이지 www.skh.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