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에서 생활하던 인도 어린이는 차디찬 주검이 돼 어머니 앞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죽음이라는 가난보다 더 쓰라린 고통을 맞이해야 했다. 네덜란드 작가 베라수 새태가 제작한 피난 구조물인 ‘제3 자연’은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들어진 3m 높이의 구조물이다. 페트병 사이로 햇빛이 들어올 수 있게 해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문뜩문뜩 드러나는 모자(母子)의 소망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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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주임사제 주낙현 신부)에서는 7일부터 22일까지 ‘쉘터 포 소울(Shelter for Soul·영혼의 안식처)’ 전시전을 열고 있다. 전세계 59개국 500여팀이 공모해 선정된 16점 피난 구조물이 성당 곳곳과 성당 옆 위치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서울마루’ 야외 공간에서 전시중이다. 한국건축가협회, 국제전문인도시건축봉사단(BaMI) 등이 서울시와 함께 연 전시전에 성당은 공간을 선뜻 내어주었다.
16일 찾아갔을 때 해외 작가들은 작품을 설치한 뒤 본국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위안부와 전쟁 등 문제에 예술로 목소리를 내는 단체 ‘아트제안’ 심정아 대표가 기자를 맞이해 전시품을 설명해 주었다. 심씨가 특별 출품한 ‘달팽이증언자를 위한 영혼의 안식처’ 작품은 흰색 텐트 안에 시편 구절을 담은 담요가 놓여있다. 등에 집을 이고 살아가는 달팽이처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상처와 삶을 따스하게 치유하는 쉼터의 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했다. 담요에는 시편 구절이 쓰여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담았다. 심 대표는 “교회에서 흔쾌히 장소를 제공해 주어 감사하다”며 “교회와 예술품이 자연스럽게 조화될 수 있는 첫 모델을 이번 전시전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당 예배당 안에는 깔때기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긴 천 구조물 하나가 보였다. 바닥에는 편안한 쿠션이 놓여 아이들이 누워서 쉬기에 좋아보였다. 성당 투어를 하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춰 쿠션을 손으로 만져보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인도네시아 예술가들이 제작한 이 작품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자폐아동에게 엄마의 품처럼 따뜻함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교회 안 쉼터에는 국내 작가들의 미술전시가 함께 열렸다. 신영성씨는 회화 작품인 만인사유상 일부를 전시에 선뜻 사용토록 했다. 작품은 아담과 하와를 그린 작품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다양한 얼굴 표정을 담은 55편 작품으로 표현했다. 신씨는 “고등학교 동기가 제 작품을 봤다고 연락이 와 신기했다”며 “기독교인으로서 제 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민수씨는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제봉으로 회화화한 작품 ‘긍휼’과 모진 비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서 있는 ‘홀로서다’ 작품을 전시했다. 하씨는 “현대 미술이라고 하면 기독교 미술을 생각하는 이가 없는 현 상황에 대해 기독 예술인들이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며 “이번 전시전을 계기로 교회 공간 내에 기독교 미술이 많이 전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개관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서울마루’의 야외 옥상은 교회 앞마당과 이어져 있다. 전시관은 지하에, 옥상을 성당 앞마당과 연결되도록 1층에 설계한 덕분이다. 교회가 전시를 위한 공간을 내어주자 국내 최초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과 전시관 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공간으로 보였다. 시민들은 성당 안으로 들어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예술품을 구경했다.
전시전은 매주 토요일 다양한 행사를 함께 열고 있다. 황태주 서원대 건축학과 교수가 성당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자세히 설명하는 건축투어를 연다. 색채심리전문가 백낙선씨가 시민을 대상으로 색채심리상담을 하며 교회 본당에선 예술가들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이어진다. 이경석 BaMI 사무총장은 “시편 57편 1절 내용의 한 영혼 치유를 위해 오신 예수님이 전시전의 큰 모티브가 됐다”며 “전시를 접한 많은 시민들이 영혼의 치유를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