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차 교구의회에 즈음한 교구장 사목서신
“하느님을 뜻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면 이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가르침인지 또는 내 생각에서 나온 가르침인지를 알 것이다. 제 생각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위해서 힘쓰는 사람은 정직하며 그 속에 거짓이 없다.” (요한 7:17-18)
주님의 평화!
어느덧 교회력으로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코로나19 감염증이라는 낯선 사목환경에서 아쉬움과 아픔을 감내한 한해였습니다. 주님의 은총에 의지하여 교회와 신자의 사명을 다하려 애쓰신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11월 21일(토) 교구의회를 열어서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의 사목계획을 점검합니다. 교구장 주교와 일치하는 교구의 구성원은 그 누구도 소외됨 없이 함께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실천합니다. 교회를 이룬 모든 이들이 함께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교구의회는 성공회의 자랑 스런 전통입니다. 교구의회 개최를 앞두고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교구의회의 성격]
성공회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주교직의 권위를 모든 평신도와 성직자 들이 위임받아서 교회의 사명을 공동 사목의 형태로 함께 수행하는 교회입니다. 성공회의 의회제도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인 사도들의 회의에 기원을 둡니다. 성공회의 교구의회는 개신교(장로회)의 대의제와는 성격이 다르고 세속 사회의 삼권분립이나 정당 기반 대의민 주제와는 더더욱 목적이 다릅니다. 성공회는 주교제교회이지 회중교회가 아닙니다. 교구의회가 주교를 통하여 교구를 치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교가 교구의회를 통하여 치리합니다. 사목의 권위가 아래로부터 회중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자체로 부터 나와 모든 교회구성원에게 위임됩니다.
우리의 교구의회는 주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교회가 성령 안에서 더 깊은 일치를 이루기 위한 신앙대회입니다. 둘씩 짝지어 파송되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선교의 기쁨을 보고했듯이 우리의 결실을 모으고 나누는 자리이고, 우리에게 맡기신 주님의 사명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결단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격려하는 은총의 자리입니다. 법규상으로는 의결정족수와 다수결이라는 기준이 있지만 신앙적으로는 지역교회를 대표하는 모든 대의원을 존중하며 만장일치의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 성공회 의회제도의 전통입니다.
2. [교구의회의 방식]
올해 교구의회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 반(半)대면 방식으로 열립니다. 이제는 형식과 절차와 방식의 중요함에 더하여, 우리 교회공동체가 일치를 이루는 목적과 가치와 의미를 중요하게 살필 때입니다. 교회공동체가 주님의 사명을 다하는 일에 꼭 필요 하고 중요한 점들을 식별하는 일에만 한마음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기술적으로 최선의 준비를 하지만, 아직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제한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합의를 마쳐야 합니다. 대의원 여러분께서 이 점을 헤아리셔서 넓은 이해와 적극적 참여로 보완해주시기 바랍니다.
3. [지역교회의 어려움]
지역교회가 겪는 어려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구의회에서 이를 드러내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자칫 상황과 서로를 탓하는 분위기로 흐르기 쉽습니다. 지역교회의 선교적 어려움은 그 이유를 따지고 밝히는 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역교회와 기관, 교무구와 총사제, 상설위원회, 상임 위원회 등을 통해 교구 전체가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교구장으로서 저도 정성을 다해 살피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4. [주교좌교회의 위상과 역할]
성직자원 회의 중 ‘주교좌교회의 교무구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제기와 논의가 있어서 교구장 주교의 설명과 지침을 요청한다는 보고를 성직자원 의장을 통해서 보고받았습니다. 현재 주교좌교회가 한 ‘교무구’로 표현되고 총사제와 상임위원을 파송하는 일이 법규상 근거가 없으므로 주교좌교회의 위상과 역할에 관하여 정리가 필요 하다는 요청입니다. ‘주교좌교무구’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므로 바로잡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표현을 근거로 그동안의 교구사목이 법을 어긴 것이고 따라서 주교좌교회를 다시 중앙교무구 소속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은 그간의 교구의회 회의록과 교구법규가 개정 되어온 역사와 맥락을 살피면 금세 바로잡힐 일입니다.
○ 2009년 1월 15일 승좌한 제5대 서울교구장은 교구조직개편과 교무구 활성화를 제안하며 2009년 2월 22일자 인사발령을 통해서 총사제를 새로 임명했습니다. 주교좌교회 주임사제가 중앙교무구 총사제를 겸했던 것을 면하고, 대학로교회 관할사제를 중앙교무구 총사제로 명했습니다. 서울주교좌교회는 지역의 신자사목을 중심으로 하는 본교회의 성격과 교구와 교단을 위해 역할을 하는 교구의 중심교회로서의 성격을 겸하고 있는데, 이러한 성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교무국과 관구에 파송된 성직자들, 그리고 대학에서 시무하는 성직자들이 주교좌교회 성직자와 함께 ‘주교좌교무구’를 이루도록 한 것입니다.
○ 서울주교좌교회는 이후 명실상부하게 ‘주교좌(主敎座)’교회로서의 역할을 요청받게 되었습니다. 제46차(2010년) 교구의회에서 이경호 주임사제가 다른 교무구와 나란히 주교좌교회의 사목 보고를 따로 하였고, 제47차 교구의회(2011년)에서는 “주교좌교회의 독립(교무구화)에 따른 사목적 역할 모색”이라는 과제를 보고하고 이를 교구의회가 접수하였습니다. 제47차 교구 의회에서 승인한 2012년 교구사업 계획에는 “현재 교구는 주교좌성당 및 5개 교무구로 조직되어 있지만...” 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 이런 사목방향의 변화에 따라 2010년 6월 1일 관구헌장을 개정하여 그동안 본교회와 선교 교회의 구분만 있던 것을 제88조에 교회를 주교좌교회, 본교회, 선교교회로 구분하고, “주교좌 교회는 교구 사목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교회이다”라고 명문화합니다. 참고로, 이때까지 서울교구 법규에는 교무구 신설이 교구상임위원회의 의결사항이었고, 2013년 11월 23일에 개정된 서울교구 법규 제46조 ②항이 관구헌장 제83조 ②항과 맞추기 위해서 “교무구 신설이 교구의회의 의결사항”이라는 내용으로 변경됩니다.
○ 2013년에 개정된 현 서울교구 법규의 제46조 조항을 근거로 하여, 2010년 이래 교구의회를 통해서 보고와 실행이 이어져 온 서울교구와 주교좌교회의 사목방향과 활동을 “불법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축자적 해석의 오해이고 지나친 주장임을 성찰해주시기 바랍니다. 역사와 현실을 고루고루 살펴보아 주십시오. 법규에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며 다시 중앙교무구 소속 교회로 주교좌교회의 위상을 되돌려야 한다는 견해는, 법규 개정 경과를 오해한 탓도 있지만, 과연 무엇을 위해서 그리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 주교좌교회는 교구 전체 사목에 이바지할 책무가 있고 권한이 부여되어야 하는 교회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교무구가 아님에도, ‘교무구’로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주교좌교무구”라는 표현은 물론 적절하지 않습니다. 법규상 교무구는 5개 이상의 본교회로 설치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지적한 것은 적절합니다. 향후 주교좌성당의 지위와 역할이 더욱 명확하도록 법규에 명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결론적으로, 교구 사목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주교좌교회에 관하여는 이미 역사적, 신학적, 법률적 근거가 있고, 우리 교구는 더욱 더 주교좌교회의 역할을 성숙시켜야 합니다. 주교좌 교회의 대표들이 다른 교무구 대표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교구와 세상을 위해서 더욱 넓고 깊은 봉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역할을 위해서 주임사제가 총사제회의와 상임위원회에 참석하여 교구 사목 전반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일은 꼭 필요합니다. 서울주교좌교회는 신자공동체를 돌보는 사목과 아울러, 다른 본교회 및 선교교회 그리고 교무구와 교구 전체의 사목을 위해 나누고 섬기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주교좌교회의 사회적인 영향력도 더욱 확장되어야 합니다.
○ 주교좌교회와 지역교회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공동 사목의 관계입니다. 지역교회는 주교좌 성당을 선교 목적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교좌교회는 지역교회의 선교를 위해서 지역교회가 하기 어려운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교좌교회를 통해서 성공회를 알게 된 교우들이 지역교회로 파송되어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례가 더욱 더 많아져야 합니다. 각 교무구에도 서울주교좌교회에 버금가는 교회가 여럿 있습니다. 크고 안정된 지역교회로서 만족하고 안주하기보다는, 교무구의 중심교회로서 역할을 다하도록 총사제 신부님과 교무구 위원회, 관할사제와 교회위원회가 더욱 기도와 정성과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5. [친교상통, 커뮤니언의 교회]
2021년도 선표 표어를 “친교의 신앙으로 선교하는 제자공동체!”로 정했습니다. 상황은 어렵고 어렵지만 복음의 길, 교회의 길은 하나입니다. 성공회에 맡기시는 주님의 기대와 사명을 최선의 노력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성공회는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약속을 신뢰하는 새 계약의 공동체입니다. 서울교구의 교우들, 교회위원, 봉사자와 수도자, 성직자와 함께 주님이 약속하신 지상최선의 교회, 커뮤니언의 교회를 이루어감을 감사드립니다. 구름처럼 많은 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우리 성공회, 친교상통의 커뮤 니언에 참여하리라 믿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11월 21일(토)에 기쁨으로 반가이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19-20)
2020년 11월 17일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이경호 베드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