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이 오기 시작하면 북경과 천진을 비롯한 화북지방의 공기는 매캐한 유황냄새가 섞인 짙은 안개로 목이 아프고 앞에 있는 건물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기만 하다. 그러나 요사이 날씨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회의 기간 중국정부의 강력한 차량, 난방, 공장규제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선명한 가을하늘을 만끽하고 있다.
11월5일부터 11일까지 북경에서 2014년 APEC 정상회의가 열렸고, 8일부터 10일까지 APEC 최고경영자회의가 열렸다. APEC 정상회의 주간에 개최되는 APEC 최고경영자회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상공업계 행사로서 이번 회의는 '아시아-태평양 신 로드맵: 혁신, 상호소통, 융합, 번영'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특히, 11월 9일 APEC 최고경영자회의 개막식에서 시진핑 주석은 '지속적인 발전을 모색하여 아시아-태평양의 꿈을 함께 만들자'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이 기조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은 '아태몽'이란 비전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중국몽'이란 비전으로 중국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면, '아태몽'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대가정과 공동운명체의식을 가지고 이 지역에 지속적으로 공통번영과 진보를 인도해 나가자"는 내용을 골자로 중국몽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태몽'을 좀 더 구체화한 정책이 '일대일로(一帶一路)'이다. 다시 말해서 일대일로란 '신 실크로드'건설이며 육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시작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하고, 해상으로는 태평양에서 시작하여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로 연결되는 경제 네트워크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시설을 구축하기 위하여 중국은 2015년 말 출범을 목표로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을 준비하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역내 관련 국가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 구축을 통해서 역내지역이 경제적으로 보다 긴밀하고 굳건하게 결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러기 위해 중국은 이번 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협정(FTAAP)'을 제시했다. 그리고 폐막식에서 APEC정상들은 이른바 '베이징 로드맵'이라고도 불리는 FTAAP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채택했다. 이 로드맵에 의하면 2016년까지 FTAAP 실현을 위한 공동전략연구를 해서 그 결과물을 도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2년 동안 FTAAP 구성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 등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회의 기간인 지난 10일에 체결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아직 협정체결 전문이 모두 공개되진 않았지만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년 내에 18,000여 개 품목을 관세철폐하고, 한국은 쌀이나 쇠고기 등 일부 농산품을, 중국은 자동차, LCD 등 공산품을 자유화 대상에 제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협정에서 중국은 법률, 건축, 문화 등의 서비스 시장을 최초로 개방하기로 했고,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기로 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부에선 한중FTA가 한미 혹은 한EU FTA에 비해서 개방 정도가 낮아서 정치적인 선언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한중간의 지리적 인접성과 어마어마한 무역규모, 그리고 상호 중복되고 경쟁관계인 산업구조로 볼 때, 오히려 낮은 수준의 협상타결을 통해 한중 양국에게 좀 더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 것이 잘한 것 같다. 또한 미국이나 EU에 비해서 경제, 법률, 제도가 아직 완비되어 있지 못한 중국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번에 일괄 타결하는 방법보다는 이른바 '만만디'라는 점진적인 협의과정을 통해 한중FTA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는 것이 쌍방 모두에게 효과적인 듯 하다.
한중FTA체결은 '아태몽'을 제창한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그 꿈을 실현하는 첫 번째 구체적인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 또한 미국과 유럽연합과 이미 FTA를 맺고 있는 한국을 통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됐다. 반면 그 동안 국가의 보호장벽 덕에 비교적 순탄하게 성장한 중국제품과 서비스업은 국가의 보호막이 제거됨으로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한국의 제품과 서비스업종과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는 위험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우리입장에서 볼 때, 한중FTA는 현재 정체상태에 놓인 '기업 대 기업(B2B)' 무역 패러다임에서 중국 내수시장과 중국 소비자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업 대 소비자(B2C)'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기회이며 이를 통해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우리기업이 현지기업들에게 부품을 수출 혹은 현지공급해 왔다면 앞으로는 고속성장에서 중고속성장으로, 세계의 생산공장에서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전환되고 있는 중국의 내수시장과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제2의 성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까지 정부와 대기업 주도의 산업, 무역정책에서 ICT와 결합된 미래산업, 문화, 식품가공, 고급소비재 등 창의적인 역량을 지닌 중소기업을 좀 더 중점으로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중국 소비자와 내수시장에 보다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인재육성과 활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모쪼록 이번 APEC회의와 한중FTA체결로 한중 양국이 모처럼 맑은 이곳의 하늘처럼 앞으로 쾌청한 경제성장을 이어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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