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다해 연중9주일 설교 - 한 말씀
작성일 : 2016-05-30       클릭 : 273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연중 9주일

(열왕상 18:20-39 / 갈라 1:1-12 / 루가 7:1-10)

한 말씀

감사성찬례에서 하느님 어린양이후에 사제가 빵을 뗀 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여기 계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그러면 회중은 주여,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에 감당치 못하오니,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다라고 응답합니다. 영성체 직전 주님의 성체 앞에 온 회중이 고백하는 이 구절의 성서적 근거는 바로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백부장이 예수님께 드린 말씀, “감히 주님을 나가 뵐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낫겠습니다”(루가7,7)입니다. 우리가 감사성찬례에서 종종 습관적으로 응답한 이 구절이 실은 우리 믿음의 가장 훌륭한 모델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훌륭한 믿음을 드러낸 이가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 사람 로마군인 백부장입니다. 라틴어 centurio라고 하는 백부장(百夫長)은 약 100명 남짓으로 군인을 통솔하는 지휘관입니다. 그는 로마인이었고, 그래서 야훼 하느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방인 군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복음에서 유대 원로들이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 말한 대목에서 그에 대한 몇 가지 성품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백인대장은 도와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까지 지어주었습니다."(루가 7:4-5) 다시 말해 백인대장은 식민지 백성 유다인들을 무시하거나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고, 유다인들을 존중한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군인으로서 갖춰야 할 명령과 규율에 충실한 진정한 군인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주님께 드린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저도 남의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에도 부하들이 있어서 제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또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루가 7:8)

이와 같이 훌륭한 성품과 올바른 군인정신을 가진 백부장이지만 그는 야훼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에 불과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착하고 성실한 직장인이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이방인 백부장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칭찬하셨다는 것입니다: "잘 들어두어라. 나는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본 일이 없다."(루가 7:9) 예수께서 말씀하신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이방인 백부대장은 비록 유대인에게 호의적이기는 했지만 야훼신앙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칭찬하신 그 믿음이란 단지 인간적인 신뢰차원의 믿음인가요?

그리스도교 철학과 전통신학 이론에는 다음과 유명한 명제가 있습니다: “Gratia supponit naturam. (은총은 자연을 전제(보충)한다)” 이것이 은총과 본성, 은총과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입장입니다. 그 뜻은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오기 위해서는 그 은총을 받을 우리의 본성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럴 때만이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의 인간본성을 풍요롭게 하고 완성시켜 준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백부장의 믿음은 하느님 은총을 온전히 받아들일 충분한 토양을 갖춘 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그의 훌륭한 본성 위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으로 참으로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의 종이 예수님의 한 말씀으로 온전히 치유된 것입니다.

백부장 이야기는 우리에게 믿음의 인간적 차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많은 유다인들이 매 주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토론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는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본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이방인 백부장의 인품을 칭찬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의 성품에 문제가 있다면 오늘 우리가 들은 백부장의 종과 같은 믿음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빗물처럼 내려오는 하느님의 은총도 우리본성이라는 그릇이 망가져 있다면 담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최근 아동살해, 여성살해와 같은 증오범죄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망가진 인격, 삐뚤어진 인격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서 힘없고 무고한 사람들이 연일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자신의 딸을 살해한 목사부부, 강남의 어느 화장실에서 생면부지 여성을 살해한 신학교 중퇴생을 보면서 신앙이란 뭔가”, “믿음이란 뭔가라는 질문을 해 봅니다. 흔히들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는다고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 믿고 더 나아가 목회자가 되겠다고 또는 목회자가 된 그 사람들이 저지른 반 인륜적인 악행은 뭔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하느님의 구원을 말하기에 앞서 자신의 성품과 인격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이 더 우선되고 중요한 것이 아닌가 질문해 봅니다.

이방인 사람 백부장의 믿음은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 당시 야훼 하느님을 믿었던 유다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주님은 오늘날도 지금 이 예배에 참석하고 우리의 믿음보다도 비록 주님에 대한 신앙지식이 부족하거나 모르는 사람 중에서 선량한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 더 훌륭한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하고 계시진 않을까요?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오늘도 감사성찬례에서 “주여,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에 감당치 못하오니,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다라고 응답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한 말씀’! 그 옛날 백부장의 종을 낫게 하신 그 한 말씀’,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의 영혼을 낫게 해 줄 예수님의 그 한 말씀을 정말 간절히 간구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내 영혼의 상태가 어떤지, 내 성품, 내 마음자리가 어떤지 먼저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성품이 백부장과 같다면 주님의 한 말씀은 당장에 이루어 질 것이지만, 우리의 성품이 유다인들과 같다면 그 한 말씀은 그저 공기 중에 울리는 소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종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주님께 간절히 간구한 백부장의 심정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영혼의 치유를 위해서 주님께 간구합시다. 다시는 힘없고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는 일이 없는 안전한 사회가 이루어지도록 간구합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황폐화된 사람들이 치유되고, 그들의 비뚤어진 마음이 바로 잡혀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 힘을 모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를 치유해 주시는 주님의 한 말씀을 간절히 바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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