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경건함의 진정한 의미(다해 연중21주일)
작성일 : 2022-08-21       클릭 : 264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821 다해 연중21주일

예레 1:4-10 / 히브 12:18-29 / 루가 13:10-17

 

 

 

경건함의 진정한 의미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책에 있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하느님이 어느 날 천당에 들어가 살펴보시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도나도 천당에 와 있고 지옥에 보내진 영혼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기분이 언짢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의로우신 하느님으로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쓰이지도 않을 지옥은 뭣 하러 만드셨나 하는 생각이 드셨습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를 불러 분부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 옥좌 앞에 불러들여 십계명을 읽어 주어라.” 그래서 모두들 소환되었고, 가브리엘 천사가 첫 계명을 낭독하자 하느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계명을 어겨 죄를 지은 자는 모두 당장 지옥으로 갈지어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슬퍼하며 지옥으로 갔습니다. 둘째 계명이 낭독된 뒤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셋째 계명 그리고 넷째 계명 그리고 다섯째 계명 이쯤 되니 천당인구는 쑥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계명이 낭독되자 모조리 지옥으로 가 버렸습니다. 오직 늙은 대머리 수도자 한 사람만 빼고 말입니다. 하느님이 바라보고 계시다가 가브리엘 천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 사람만 남았단 말이냐?” “, 그러하옵니다.” “글쎄, 그러고 보니 이 천당이라는 데가 도리어 쓸쓸하지 않느냐? 모두들 되돌아오라고 일러라!” 그러자 누구나 다 용서받게 된다는 말을 들은 늙은 대머리 수도자는 화가 치밀어 하느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냅다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런 부당한 처사가 어디 있나이까! 이렇게 될 거라면, 어찌하여 진작 저에게 일러주시지 않았나이까! 너무 억울하옵나이다!”(안소니 드 멜로, 종교 박람회에서)

방금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장면이 오늘 복음에도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있었는데, 거기에 18년 동안 병으로 허리가 굽어져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보시고 측은지심을 느끼셔서 손을 얹어 그녀를 병마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들 놀라고 기뻐했으나, 오직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그 회당을 책임지고 있는 회당장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식으로 보자면 아마도 관할사제이거나 신자회장이겠지요. 여기서 유대교 회당을 잠깐 설명하자면, 영어로 시내고그(synagogue)라고 하는데, 그 뜻은 모임의 집이란 뜻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야훼 하느님께 번제물을 바치는 성전이라면, 유대인 공동체가 있는 곳은 어느 곳이던지 시내고그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유다교의 율법(Torah)을 낭독하고, 이에 대해 연구하고 설교하는 등 예배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에서 구약이라고 부르고 있는 토라는 유다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하느님 말씀이라서 이를 잘 실천하는 사람을 경건한 신자로 존경합니다. 특히, 십계명 중 4번째 계명인 주님의 날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는 유대교의 안식일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우리 그리스도교에선 주일을 지키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날 예배에 참례하는 것을 신자의 의무로 여기듯이, 유다교 역시 안식일에 집회에 참여하러 회당에 가는 것을 매우 중요시 합니다. 더 나아가서 안식일에는 야훼 하느님께서 쉬셨듯이, 사람들도 어떠한 일도 하면 안된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이유로 회당장은 예수님의 행동에 분개하여 일할 날이 일주일에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병을 고쳐 달라 하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루가 13:14)”하고 강력하게 항의했던 겁니다. 그에게 있어서 안식일 준수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신앙의 본질로서 만일 이것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유대교 회당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본 것입니다. 어쩌면 회당장과 같은 그러한 우직한 자세가 있었기에 유다교 회당이 주변의 숱한 어려움에 불구하고 지금까지 유다교를 지탱해 오는 동력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유다교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그 경건함이 과연 유다교 자체에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유다교보다 더 근원적인 존재로부터 나온 것일까요? 당연히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당장과 바라사이파 사람들이 철석같이 고수하고 있는 그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며, 인간이 그 분과 만날 때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요? 오늘 1독서와 2독서는 바로 경건함의 원초적 체험이 어떤 건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1독서에서 예레미아 예언자는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 분의 말씀 앞에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봅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하느님의 현존에 압도되어 다음과 같이 자신을 묘사합니다: ! 야훼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예레 1:6)” 예레미아의 이 말은 모세가 야훼 하느님을 만났을 때 했던 말과 똑 같습니다. 모세 역시 야훼께 주여, 죄송합니다. 저는 도무지 말재간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워낙 입이 둔하고 혀가 굳은 사람입니다.(출애 4:10)” 이처럼 인간이 제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하느님의 완전함과 절대적 거룩함 앞에 인간은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보잘껏 없는지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함을 체험한 인간의 첫 반응입니다. 2독서는 십계명을 받으러 시나이 산에 올라간 모세 그리고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산에서 울려 퍼진 그 장엄한 광경과 음성을 듣고 견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모세까지도 너무나 무서워서 떨린다고 할 지경이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히브 12: 18-21 참조) 종교학에선 이 두려움을 경외감(敬畏感)’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공포를 느끼는 그런 두려움이 아니라,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깊은 존경과 복종의 마음이 생김과 동시에 그런 존재 앞에 서 있는 라는 존재가 얼마나 유한한지를 절감하는 감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과 만남은 일종의 절대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절대체험을 할 때만이 인간은 진정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고, 그로부터 유한한 것에 묶인 노예에서 진정한 자유인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앞서서 우리는 천국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죄인들을 용납할 수 없다고 소리친 수도자와 안식일에 치유행위를 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항변한 회당장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수도자와 회당장은 어떤 면에서 참으로 경건한 신앙을 충실하게 지킨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의 모습에서 답답함과 옹졸함을 느끼는 걸까요? 어쩌면 그들은 서로서로 비교하며 자신의 의로움을 평가받고, 상대방을 평가한 인간세계 속에서만 머물렀던 것은 아닐까요? 그 인간의 세계 속엔 우리의 도덕관념 심지어 종교제도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대적인 인간의 규범, 종교제도를 통해 그들이 그 너머에 있는 근원적인 체험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로까지 나아가지 못했기에 그들은 하느님의 그 대자대비하심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독서에 나온 예레미아, 모세 그리고 복음에 등장한 병든 여인 모두 하느님이 보시기에 유한한 존재들이며, 그러기에 때론 아픔을 겪고 있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무한하시고 절대세계에 계신 하느님이 볼 때, 이들 모두 당신이 창조한 아픈 손가락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런 우리를 부르시고, 때로는 아픔을 치유해 주시고, 나아가 당신의 예언자이자 제자로 불러주십니다. 우리가 이런 하느님을 만날 때, 우리는 나의 옹졸함과 교만이라는 족쇄에서 자유로워져서 하느님과 함께 세상을 치유하는 동역자로 불림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경건함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십팔 년 동안 병마에 시달린 여인을 치유해 주신 예수님의 손길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길 빌며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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