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5 관구설립주일 창세 24:15-20 / 묵시 21:1-6 / 루가 5:36-38 물과 포도주를 담을 그릇 오늘은 대한성공회 설립기념주일입니다. 1889년 11월 1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성당(Westminster Abby)에서 영국해군 군종사제인 찰스 코프(Charls John Corfe, 한국명 고요한)신부님이 조선성공회 주교로 서품 받은 후, 다음 해인 1890년 9월 29일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첫 발을 디딘 9월29일을 설립기념일로 정했습니다. 올해는 이 날이 평일이라서 이 날이 있는 주간의 일요일을 기념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보를 보시면 ‘관구설립주일’이라고 적혀있어서 관구(province)가 무엇인가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전통적으로 교회는 주교를 예수님의 12사도들의 계승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계승자인 주교가 사목하는 지역을 교구(diocese)라고 합니다. 관구는 언어나 민족, 국가 등 행정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서로 교류와 협력이 용이한 교구들이 모여 하나의 큰 단위를 이룬 것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한국이나 일본은 국가가 하나의 관구이고, 미국이나 영국처럼 영토가 크거나, 교인이 많거나, 역사가 오래 된 곳은 관구가 여러 개 있습니다. 성공회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42개의 관구가 있습니다. 관구의 대표를 관구장(primate)이라고 하며, 세계성공회는 1978년부터 관구장회의(primates' meeting)를 통해 상호소통과 협력을 해 오고 있습니다. 대한성공회는 1992년이 되어서야 관구가 됨으로서 비로소 독립된 지역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대한성공회는 이 땅에 복음을 전한지 133년이 되었지만, 자립한 것은 불과 30년밖에 되질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 땅에서 선교를 시작한 지 100년이 넘어서야 제 발로 설 수 있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분들은 왜 이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나 의아해 하실 겁니다. 그래서 오늘 관구설립주일을 맞아 우리가 걸어온 길을 간략하게나마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133년 되는 대한성공회 발자취를 이 자리에서 세세하게 살펴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역사와 연결해서 그 특징을 5시기로 나누어 살펴볼까 합니다. 첫째 시기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전반까지입니다. 서구세력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 시대의 물결 앞에 조선 역시 더 이상 쇄국을 할 수 없어서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결국 나라를 잃게 되었습니다. 조선 땅에 들어온 성공회 선교사들은 다른 교단과 마찬가지로 전도에 힘쓰는 동시에 우리문화에 깊은 관심과 존중을 갖고서 우리 한옥성당을 비롯하여 국내 최초의 로마네스크 교회인 서울주교좌성당을 설립하는 등 오늘날 우리에게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었습니다. 둘째 시기는 일제 강점기 후반부터 해방 그리고 분단과 전쟁까지입니다. 이 시기 우리교회를 이끄셨던 구세실 주교님의 생애는 우리역사와 우리교회가 겪은 고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일제에 의한 추방과 해방 후 귀국하여 교회를 재건하려 했으나, 곧이어 남북으로 분단되어 이북교회를 잃게 되었고, 전쟁기간에 인민군에 붙잡혀 한겨울에 중강진까지 ‘죽음의 행진’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포로교환으로 모스크바와 영국을 거쳐 오뚝이처럼 한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분의 생애가 말해주듯이, 이 시기 우리교회는 우리민족의 고난과 함께 하면서 생존이 제일 중요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셋째 시기는 마지막 선교사 김요한(John Daly)주교님으로부터 최초의 한인주교인 이천환 주교님 때까지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의 힘이 쇠락하면서 영국성공회는 한국성공회가 스스로 자립할 준비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서울교구와 대전교구로 분할하면서 서울교구장으로 이천환 주교를 첫 한인주교로 세웠습니다. 김요한 주교님은 해외선교의 경험을 살려 이 시기 산업화기간 중 제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공장과 탄광 노동자들 그리고 나환우들을 위한 사목에 힘쓰셨습니다. 그리고 이천환 주교님은 당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천주교 개혁운동의 젊은 지도자인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 교회일치 운동에 앞장섰고, 그 결과 세계 그리스도교 역사에 기념이 될 <공동번역성서> 발간에 산파역을 담당하셨습니다. 넷째 시기는 8,9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 시기입니다. 부지런한 우리국민들의 노력으로 경제는 나날이 성장하였고, 이에 비례하여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도 높아갔습니다. 이 시기 우리교회는 성공회대학교를 성직자 양성기관에서 종합대학으로 성장시키고, 나눔의 집과 푸드뱅크 등의 사회선교로 한국 사회에 ‘열림, 나눔, 섬김’의 정신을 전파하였습니다. 다섯째 시기는 21세기 오늘날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던 한국은 어느덧 자신들이 선진국이 되어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한류’라는 우리의 영향력은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고령화와 인구감소, 4차 산업 혁명으로 고용시장의 변동과 저성장, 정보통신기술(ICT)과 모바일의 보급으로 사회환경이 변화하는 등 기존의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기 힘든 한계점에 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가 그동안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성공회대학교와 사회복지기관들의 위기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교회사목도 코로나로 인해 크나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다섯 시기 중 관구설립 이후 시기는 넷째시기 뒷부분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다섯째에 해당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처럼 외국선교사들에게 의지할 순 없습니다. 오히려 외국의 많은 교회들은 우리나라의 세계적 위상에 걸맞게 한국성공회도 세계 성공회에 기여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말씀에서 들었듯이, 우리는 이제 샘터에서 물을 길어 항아리에 채워 사람들과 가축들에게 주어야 하고,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새 술을 헌 가죽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릴 것이니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는 못쓰게 된다.(루가 5:37)”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 중 마시는 포도주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의 귀한 피입니다. 그것은 2000년 교회역사를 이어져 온 변하지 않는 주님의 포도주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세상의 포도주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어떻게 마시고,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숙성시켜야 할지 매 시기마다 고민하고, 연구하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부과된 ‘시대적 선교과제’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주와 부대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시대의 징표를 읽고, 그에 맞는 선교방법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대한성공회의 한 지체인 우리 강화읍교회 역시 130년 동안 우리민족과 대한성공회 전체 공동체와 동고동락해왔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대한성공회가 고민하는 선교적 과제는 동시에 우리 강화읍교회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교회는 초기 선교시기 선교사들과 신앙의 선조들의 신앙과 지혜 그리고 헌신과 노고 덕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한옥성당이라는 역사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값진 달란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들려주신 ‘달란트의 비유(마태 25:14-30 참조)’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한 달란트를 받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되어선 안되겠습니다.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한 사람들처럼 우리에게 주신 강화도 최초의 교회라는 유구한 역사와 가장 한국적 성당인 이 한옥성당이라는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께서 기뻐하실 선교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교회일꾼들이 뽑혔습니다. 사제인 저를 비롯하여 우리교회 모든 교우들이 서로 합심하여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마련하기 위해 기도와 노력을 해 갑시다. 우리에게 당신의 보혈과 그 보혈을 담을 귀한 그릇을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