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2 가해 재의 수요일 이사 58:1-12 / 1고린 5:20-6:10 / 마태 6:1-6, 16-21 재(ash) 그리고 그 너머 오늘은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이 날에 우리는 이마에 재를 바르며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 예식을 준비하면서 매년 저는 교우 분들이 가져다 준 성지가지를 모아 태웁니다. 그리고 남은 재를 쓸어서 작은 함에 담습니다. 올해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타고 남은 재를 함에 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2년 전 겨울, 우리가족 곁을 떠난 강아지 코코가 생각났습니다. 그날 새벽 딸아이가 놀라서 우는 소리에 깬 우리부부는 의식을 잃은 강아지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강아지는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식구들은 모두 슬퍼하며 어쩔 줄 몰라 했고, 그 와중에 저는 강아지 화장하는 곳을 찾아 연락을 취해서 차에 실고 한밤중에 동물 화장장을 찾아 갔습니다. 일산 외곽에 있는 어느 조그만 곳인데 그곳 직원으로부터 관련설명을 듣고 화장절차를 밟았습니다. 화롯불에 들어가는 코코를 보며 울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나서 직원이 코코의 재라고 보여준 것을 보자, 그 허무함에 맥이 탁 풀려버리는 듯 했습니다. 직원은 강아지의 재를 자그마한 돌 모양 기념품처럼 만들어 주었습니다. 화장장을 나서자 밤은 지나 저 멀리 해가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우리와 10년 가까이 지낸 반려견이 한줌의 재로 변해버린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반려견이 우리 곁을 떠나 한 줌의 재로 변했을 때 그 충격을 잊을 수 없는데,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나의 친한 친구들, 심지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이 한 줌 재로 내 눈앞에 보여 질 때 받는 애통한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재(灰)는 이처럼 그동안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존재를 허무로 삼켜버리는 감정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우울과 허망과 깊은 상실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자들의 재는 비록 우리에게 슬픈 충격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이제 사랑하는 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함께 함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기억’입니다. 앞서서 저의 가족이 사랑하는 강아지 코코를 기억하고 회상하고 때론 그로부터 위안과 잔잔한 감동을 받듯이, ‘재’라는 회색물질이 가져다 준 충격 이후, 우리는 그 거기에서 벗어나 서서히 보이지 않는 새로운 차원에서 관계를 맺는 법을 찾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기도와 자선과 단식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눈에 보이는 차원들을 넘어서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거나 자선을 베풀거나 단식을 할 때 남에게 인정받는 것과 같은 눈에 보이는 차원을 의식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시는 하느님과 연결된 방식으로 전환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현세를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참 어려운 요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인정받길 원하며, 그러기 위해선 심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자신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재물은 이러한 우리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물을 쌓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재물이 땅에 있으면 좀 먹거나 녹이 슬거나 도둑이 훔쳐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하늘에 재물을 쌓으면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땅과 하늘이라는 서로 상반된 상징을 통해 유한함과 무한함을 대비시키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재물을 모으는 것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 유한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이마에 받을 ‘재’입니다. 재는 이처럼 마치 영원히 갈 것 같은 우리의 관계, 물질, 명성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그러한 잿가루을 넘어서 보이진 않지만 새롭게 열리는 관계, 정신, 가치의 세계로 넘어갈 것을 초대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느님나라를 갈망하는 우리는 재를 받으며 나의 현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는 동시에 그 유한함 너머에 있는 영원함을 소망하길 바랍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재의 수요일은 우리에게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 심지어 나라는 존재도 언젠가는 재처럼 사그라진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인간적으로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재라는 허무함을 넘어 영원한 정신을 알려준다는 측면에선 우리를 한 단계 더 성숙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젠가는 모든 것이 끝나서 한줌의 재로 된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말고, 영원의 관점에서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현재를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은총의 시간인 것입니다. 제2독서는 이와 같이 재가 주는 역설의 진리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또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죽지 않으며,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1고린 6:8-10)” 이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우리는 40일 간의 사순시기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사순의 끝에는 존재가 완전히 변하는 부활의 신비를 맞이합니다. 이처럼 사순시기는 현재에 안주하는 나, 낡은 것에 집착하는 우리로부터 미래를 영접하는 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하고 실천하는 시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바로 이것을 만들기 위해 산고를 치르신 것입니다. 우리도 새 생명을 낳는 산모처럼 희망을 가지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재를 통해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