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6 가해 사순1주일 창세 2:15-17, 3:1-7 / 로마 5:12-19 / 마태 4:1-11 유혹에 대하여 영국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이 쓴 <실낙원(Paradise Lost)>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단테(Dante, 1265-1327)의 <신곡(神曲)>과 함께 대표적인 그리스도교 문학작품으로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을 잃는 과정을 서사시 형식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제1독서와 관련되어 이 작품에선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장면 중, 이브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지 다음과 같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켜세웁니다: 신들 중의 여신인 그대를 수없는 천사들이 숭배하며 매일 그대에게 시중들리라. 밀턴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말대로 만일 이브가 이런 찬사를 들었다면, 그녀는 필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황홀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유혹(temptation)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고 달콤하게 다가옵니다. 사순 첫째 주일, 우리는 두 개의 유혹이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는 첫 인류인 아담과 이브가 받은 유혹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받은 유혹입니다. 먼저, 창세기에 나오는 유혹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느님은 흙으로 인간을 만드신 다음, 에덴동산으로 데리고 와서 이 곳을 맡기십니다. 거기에는 각종 식물과 동물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성서저자는 두 그루의 나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생명나무가 있다는 말은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살다가 죽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이 나무를 먹는 것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야만 계속해서 살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나무 옆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는데, 하느님은 이 나무열매만큼은 먹어선 안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나무열매를 먹으면 인간은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저자가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동시에 나열한 것은 인간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흙으로 상징되는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유한한 인간에게 하느님은 생명나무와 각종 나무에서 나오는 열매를 먹게 하시면서 생명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만큼은 먹지 말라고 하시며 인간이 피조물로서 주어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물이 무생물로 되고 무생물이 생물로 될 수 없듯이, 인간이라는 피조물도 신(神)이라는 창조주로 변하는 것이 존재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이자 하느님으로 위탁받은 낙원을 가꾸며 행복하게 살아가던 사람에게 어느 날 뱀으로 상징되는 유혹자가 다가옵니다. 그는 창세기 2장 16절에 “이 동산에 있는 나무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살짝 비틀어서 다음과 같이 말을 겁니다: “ 하느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열매는 하나도 따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정말이냐?(창세 3:1)” 유혹자는 이 말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전적인 허용을 전적인 금지로 슬쩍 바꿔치기 합니다. 더 나아가 여자로 하여금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보다는 그 말씀에 시시비비를 따지도록 유도합니다. 참으로 능글맞은 말솜씨입니다. 이처럼 유혹자는 사실을 교묘히 왜곡시킴으로써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끌어들입니다. 이러한 어법은 순진한 사람을 자신의 말상대로 끌어들이는 아주 교묘한 방법입니다. 여자는 이제 하느님이 하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입니다. 창세기 3장 3절을 보면, 그녀는 “그 열매를 따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만지지도 말라’는 자기생각을 하느님말씀인양 말합니다. 이렇게 여자는 유혹자의 유혹에 점점 말려들어갑니다. 급기야 “반드시 죽는다(창세2:17)”는 말씀을 “절대로 죽지 않는다(창세3:4)”로 완전히 부정한 유혹자의 말에 동의하게 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키는데 성공한 유혹자는 이제 더 이상 신의 피조물로 있지 말고, 네가 신이 되라고 충동질합니다. 그는 마치 하느님이 사람이 똑똑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듯이 나쁘게 표현합니다. 유혹자의 말에 완전히 넘어간 여자는 “과연 먹음직스럽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은(창세 3:6)”그 열매를 따 먹고, 남자에게도 줍니다. 유혹당하는 자가 이제 유혹자로 변했습니다. 하느님 말씀 대신에 뱀의 말을 선택한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하느님을 경외하고 즐기는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잔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결국, 하느님처럼 지혜롭게 되길 원했던 그들이 알게 된 것은 ‘벌거벗었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밀턴의 책 제목처럼 그들은 낙원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이처럼 맥없이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과 달리, 예수님은 유혹자의 집요한 유혹을 참으로 지혜롭게 넘기십니다. 악마는 처음에는 평지인 광야에서, 그리고 성전꼭대기에서, 최후에는 세상이 다 내려다보이는 아주 높은 산으로 옮겨가며 점점 유혹의 강도를 높입니다. 이 유혹자는 인류의 조상에게 했던 것처럼 하느님 말씀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이용하면서 성부와 성자간의 친밀한 관계를 이간질시킵니다. 이처럼 악마는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유혹함으로써 예수님이 유혹을 물리치시는 근거로 삼는 성경의 기반을 뒤흔들려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자신의 목적을 제시합니다. 처음과 두 번째 유혹은 ‘빵이 되리고 해 보시오',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라고 직접 요구했다면, 마지막 유혹에선 ‘내 앞에 절하면’이란 조건을 제시하고, 그 보답으로 모든 것을 주겠다고 '딜(deal)'을 겁니다. 악마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세상을 구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와 같은 힘든 길을 가지 말고, 내 앞에 엎드려 한번이라도 절만 하면, 그 목적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유혹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겨라(마태 4:10)”라고 말씀하시며 마침내 유혹자를 물리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목적이 단지 그저 인간의 상황을 개선하는 현세적 차원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하시려는 것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초에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난 존재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잃고 사는 고아가 된 우리를 다시 하느님께 데려가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오직 십자가의 길 외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들은 두 개의 유혹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우리 역시 살면서 적지 않은 유혹을 받고 삽니다. 유혹의 속성이 그러하듯이, 여러분은 유혹이 올 때 이것이 유혹인지도 모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얼핏 보고 듣기에 너무도 그럴듯하고, 그 제안이 너무도 매혹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이 일러주는 진리 말고 또 다른 길이 있다고 여기는 순간, 그 열린 틈새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온갖 것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옵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실낙원을 자신들만의 힘으로 낙원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발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살고 있다고 우리가 느낄지 모르지만, 사실 존재의 근거인 하느님과의 단절로부터 오는 근원적인 상실감, 그리고 하느님이 창조하고 맡겨주신 창조세계를 훼손함으로 인해 맞고 있는 각종 자연재해와 생태위기 등으로 이제 우리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판단도 제대로 못하는 지경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뱀이 인간을 유혹해서 넘어뜨렸듯이, 이제 인간들끼리도 서로 유혹하고 함정에 빠뜨리는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첫 번째 주일에 교회는 우리에게 ‘유혹’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권합니다. 그리고 이 유혹을 극복하는 길은 예수님처럼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오직 하느님과 하나 되어 살아갈 때만이 우리는 하느님과 나를 갈라놓으려는 유혹, 나와 너를 이간질하는 유혹, 나의 삐뚤어진 욕망을 자극하는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주님의 말씀과 일치하여 나와 우리에게 오는 온갖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