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십자가와 소명(성 금요일)
작성일 : 2023-04-07       클릭 : 193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30407 가해 성금요일

이사 52:13-53:12 / 히브 4:14-16, 5:7-10 / 요한 19:16-37

 

십자가와 소명

 

 

가상칠언(架上七言)’이란 단어를 들어 보셨나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말씀이란 뜻입니다. 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일곱 말씀에 대하여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금요일에 그 말씀을 읽고 기도합니다.

올해 성금요일 수난예식에서 우리는 요한이 전해 준 예수님의 수난복음을 들었습니다. 여기엔 가상칠언 중 3개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상칠언 중 오늘 우리가 들은 이 세가지 말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와 요한 제자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925절부터 27절까지를 보면,예수께서는 십자가 밑에 서 계신 성모님께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시고, 제자 요한에게는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한옥성당 제단(祭壇)을 둘러싼 제단 문(chancel gate) 위에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다른 한쪽에는 사도요한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이 구절을 대하여 성 어거스틴을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극진한 효성이 드러난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수님을 본받아 신자들은 성모님에 대한 공경과 우리의 부모님께 효도를 다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전통적인 해석과 가르침에 대하여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좀 더 다른 차원에서 보자면 이 대목은 예수님께서 단지 당신이 돌아가시고 남겨진 어머니의 안위가 걱정되어 제자에게 부탁하신 것보다 더 넓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혈연에 기반한 가족공동체를 좀 더 고차원의 공동체로 묶어 주신 거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선 생전에 어머니와 친척들이 당신을 만나러 왔다는 전갈을 받고,“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냐?고 하시며, 하느님 말씀에 따라 제자공동체를 이룬 이들이야말로 내 어머니요, 내 형제자매들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르 3:32-34 참조) 이런 맥락에서 예수께서는 평소에 말씀하셨고 지향하셨던 영적 공동체이자 새로운 가족을 이루라고 십자가 상에서 유언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교회는 혈연, 인종, 계급, 심지어 신앙의 차이를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 자매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둘째,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서는 “목마르다(요한 19:28)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육체적으로 극도의 갈증에 시달림 속에 하신 말씀이기도 하며, 동시에 영적 상징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지난 사순3주일에 우리가 들었던 복음,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4:14)라고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 생명수를 공급하는 예수께서 목마르다고 하십니다. 저는 이 대목을 명상하며 창세기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수를 베어버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첫 인간들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나무가 아닌 자신들이 신이 되어보겠다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생명수이신 예수님을 못박아 죽게 함으로써 늘 갈증에 시달리게 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 인간들의 이기적인 탐욕으로 어머니인 지구도 예수님처럼 목마르다!”고 신음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셋째, 예수께서는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 19:30)하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십니다. 영어성경은 이 말씀을 끝났다(It is finished)”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저는 오히려 우리말 성경이 더 정확한 번역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끝났다라고 하면 무엇을 끝낸 건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활동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에 대한 의미가 제대로 담겨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생전에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요한 4:34)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사명의식이 투철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숨을 거두시기 직전 예수께서는 그 사명을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명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 인간을 포함한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질병, , 심지어 죽음으로부터 탈피해주는 만능 치료제가 아닙니다. 만약 그런 만능 치료제가 있다면 이처럼 예수님 당신이 십자가 상에서 죽지 않으셨을 겁니다. 사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유한한 인간이 숙명적으로 갖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순 첫 주일에 들었던 광야에서 악마가 예수께 시도했던 유혹들, 그리고 라자로의 죽음을 접하고 눈물을 흘리시고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셨던 것도 죽음의 공포 그리고 그것을 회피하려는 궁극적인 유혹을 떨쳐버리시고 그 근원적인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하신 것입니다. 태초에 첫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온 세상이 숙명적으로 짊어진 죽음이란 멍에를 이제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겨낼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그 사명을 다 이루셨고,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다시 생명이신 하느님 안에서 연결될 수 있는 희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성 금요일 수난예식을 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에 슬퍼했던 어머니와 여인들 그리고 제자들과 같은 마음이 되어 무거운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이 남겨 주신 말씀의 의미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다짐합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주님 안에 영적인 부모와 자식, 그리고 영적인 형제자매 공동체가 되라고 당부합니다. 교회역사에 무수히 많은 수도회 공동체는 바로 그러한 정신을 철저히 실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지 수도자들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들은 출가(出家)한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러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출가한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사명을 이어갈 제자들이 되며, 우리 역시 죽음을 돌파한 주님을 따라 궁극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명을 완수하신 승리자 그리스도(Christus Victor)’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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