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씨 뿌리는 사람과 밭(가해 연중15주일)
작성일 : 2023-07-16       클릭 : 143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30716 가해 연중15주일

 창세 25:19-34/로마 8:1-11/마태13:1-9, 18-23

 

 

씨 뿌리는 사람과 밭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여러분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지 않으셨나요? 씨 뿌리는 사람 비유이야기 중에서 길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는 것은 우리나라 파종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씨를 뿌리기에 앞서 밭을 가는데 비해, 1세기 예수님이 사셨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정해진 방식없이 씨를 뿌리기 전후에 밭을 갈았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밭을 갈기 전에 씨를 뿌리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이처럼 몰아서 씨를 뿌리고 나중에 밭을 갈게 되면 길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가 말라버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농사법은 우리가 보기에 이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이 건조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농부들은 비가 적게 내리는 여름철에도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밭을 갈기 전에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척박한 환경에서도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후환경과 그에 따르는 농사방법을 이해했으니, 이제 오늘 복음 말씀을 좀 더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앞부분은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고, 뒷부분은 비유에 대한 해설입니다.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앞부분이 예수님의 원래 말씀이라면, 뒷부분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에 대한 마태오 교회 공동체의 해설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부분과 뒷부분의 강조점은 조금 다릅니다. 앞부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의 본래 의도는 보다도 씨 뿌리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헛되게 말라 버리는 씨도 있겠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 씨도 있으리라는 농부의 희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시는 동안 유대교 지도자들로부터 이런저런 위협과 방해를 받아서 복음성과를 내기가 참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찬 결실을 거두리라는 희망을 갖고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선포를 계속해 나가시겠다는 다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뒷부분에서 초대교회는 복음선포를 받은 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인지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약성경과 그리스어로 쓰여진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Jerome)성인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다양한 토양은 믿는 이들의 영혼이 가지가지임을 나타낸다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오 복음에선 씨가 뿌려지는 곳을 마음(마태 13:19, 21)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마태 13:19, 20, 22, 23)이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님이 뿌리신 많은 씨앗들이 구체적인 개인의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적용됨은 물론이거나와, 이러한 하느님나라의 복음에 대한 응답과 그 책임도 집단에 묻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결단과 받아들임에 따라 다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쁜 땅으로 묘사된 인간의 부정적 마음상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오늘 이야기는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속이라는 비유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길바닥과 같은 마음상태란 씨가 뿌리내릴 아무런 조건도 없는 상태입니다.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마치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이라고 상상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오직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태도로 경직되어 있어서 타인과도, 세상과도, 심지어 하느님과도 소통이 안되는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돌밭과 같은 마음상태란 내 안에 약간의 선함과 개방성이 있어서 진리의 말씀을 듣고 감동받지만, 여전히 내 마음 안에 있는 돌과 같은 경직된 사고와 태도로 인해 제대로 숙성시키지 못하고 어려움이 오면 다시 소통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는 걸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우선 내 마음 안에 부드러움과 딱딱함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마음 안에 있는 딱딱한 돌을 걷어내는 작업, 달리 표현하면 자신을 갈고 닦는 수기(修己), 마음을 깨끗이 씻는 세심(洗心), 그리고 악함을 몰아내는 거악(去惡)을 꾸준히 실천해야만 선하고 참된 말씀을 받아들여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행을 지속하는데 있어 우리는 여러 방해요소에 부딪힙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상태를 가시덤불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걱정과 재물의 유혹입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적지 않은 교회와 신앙인들이 손가락질 받는 것은 바로 복음의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세상일과 재물의 유혹에 한눈팔다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적인 교회와 신앙인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런 상태로 아무리 전도를 한다고 해도, 추수의 결실을 맺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가 좋은 땅, 즉 복음의 씨를 잘 품고 자랄 수 있는 좋은 마음상태라면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마태 13:23) 이것은 당시 현실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엄청난 수확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농부들은 좋은 작황을 보이는 씨는 전체의 1/4에 해당한다고 계산하였습니다. 그럴 경우, 전체 밭의 작황은 평년작일 경우 7.5, 풍작일 경우 15, 그리고 대풍(大豊)일 경우 25배가 최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백배, 육십 배 혹은 삼십 배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실로 엄청난 수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잘 받아들이고 자라게 하면, 하느님은 나를 통해 실로 엄청난 기적 같은 일을 드러내실 거라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기쁜 소식이자, 구원의 모습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은 이처럼 우리를 통해 놀라운 당신의 일을 계획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 마음에 그 씨를 뿌리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음이 아스팔트 길바닥처럼 딱딱하거나, 여전히 돌덩어리처럼 완고함이 남아 있다 거나, 혹은 말씀보다는 여러가지 세상 유혹에 시달리는 마음일 경우, 하느님의 그 놀라운 기적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세례대에 새겨진 수기(修己), 세심(洗心), 거악(去惡), 작선(作善) 8글자를 늘 명심하고 꾸준히 내 마음의 밭을 경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반대와 백성들의 연약함에도 좌절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씨를 뿌리신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서도 놀라운 씨를 뿌리십니다.

이제 그러한 주님이 뿌리시는 말씀의 씨를 잘 받으셔서 풍성한 열매가 맺으시 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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