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주님 포도밭의 참된 일꾼들(가해 연중25주일)
작성일 : 2023-09-24       클릭 : 118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30924 가해 연중25주일

출애 16:2-25 / 필립 1:21-30 / 마태 20:1-16

 

 

주님 포도밭의 참된 일꾼들

 

 

공동번역 성서는 오늘 들은 복음의 제목을 포도원 일꾼과 품삯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1절부터 7절은 일꾼들을 고용하는 내용이고, 8절 이하는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는 내용입니다.

먼저, 앞부분을 보자면 포도원 주인이 동틀 무렵 날품팔이 일꾼들과 하루 일당으로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고용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한 데나리온은 예수님 시대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데, 이걸로 납작하고 작은 빵 10~12개를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부농(富農)일 경우에는 보통 노예들이 있어서 일 시키면 되지만, 그럴 경우 만일 노예가 병들어 죽거나 하면 모든 손실을 주인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아마도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포도원 주인은 노예를 거느릴 정도의 부농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래서 포도수확철과 같은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날품팔이를 고용하는 중농(中農)정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밭주인은 오전9, 정오, 오후3시 등 세 시간 간격으로 나가서 일꾼들을 고용할 정도로 일손이 급박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할 시간이 1시간 밖에 남지 않은 오후 5시쯤에도 나가서 일꾼들을 고용합니다. 날품팔이 입장에서 보면, 오후5시까지도 일감을 얻지 못했다면 그들은 필경 병들거나, 나이가 많거나, 사람들이 꺼려하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장해서 아침일찍부터 고용되었건, 아니면 여러 가지 이유로 막바지에 고용되었건 그들 모두는 각각 밭주인과 1데나리온으로 계약을 맺고 일했습니다.

이제 일꾼에게 품삯을 주는 8절 이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일꾼들과 합의한 계약에 따라 품삯을 지불합니다. 그는 먼저 맨 나중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이 모습을 지켜보던 더 일찍 일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오후5시에 와서 1시간밖에 일한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줬으니, 그 보다 몇시간 더 많이 일한 우리들한테는 더 많은 돈을 주겠지라고 내심 기대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 달리 그들에게도 똑같이 1데나리온을 주자, 그들은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마태20:12)”하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포도원 주인은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당신은 나와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마태 20:13-15)”라고 대답하였다. 사실, 저는 예전에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시간과 품삯이 정비례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이자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포도밭 주인이 오후5시에 일한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주려고 한다면, 계약을 변경해서 노동시간별로 일당을 재조정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밭주인은 왜 그렇게 했을까?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하고 고심했습니다. 그 고심의 결과 중 하나가 주의기도에 나오는 대목, ‘오늘 우리에게 필요할 양식을 주시고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포도밭 주인이 일꾼들과 계약한 1데나리온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주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우리가 들은 1독서에 나오는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도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백성들은 광야에서 배고픔에 힘들어 합니다. 그러한 그들의 어려움에 대하여 야훼 하느님께서는 저녁에는 메추라기로, 아침에는 흰 서리와도 같은 만나로 그들의 굶주림을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저마다 먹을만큼만 거두어 들이고 다음날을 위해 남겨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일 남겼다가는 음식이 바로 부패해 버렸습니다.

이처럼 주의기도에 나오는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이란 관점에서 보면, 출애굽기에 나오는 메추라기와 만나 이야기나, 복음에 나오는 시간에 관계없이 고용된 일꾼에게 모두 하루 노동자 품삯을 준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생존권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시고 당신 친히 그것을 우리에게 보이심으로써 우리도 나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생존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말씀은 이러한 사회적 차원보다 더 깊은 영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Rev. Anthony de Mello, SJ)의 책에 나오는 한 이야기에서 오늘 복음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은 아낌없이 큰 마음을 먹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교사가 되어 먼 고장으로 떠나가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고문을 겪고 순교했습니다. 그가 죽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너는 나에게 천 달란트 어치를 섬겼다. 이제 너에게 억 달란트를 상주겠다. 나의 기쁨 속으로 들어오너라.”

한편 아우는 주님의 부르심에 형처럼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부르심에 못 들은 척했고, 그래서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즐겼고, 사업에 성공했으며, 유명해져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렇지만 종종 거지에게 동냥도 했고, 처자식들을 자상하게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간간히 약간의 돈을 먼 나라에 가서 선교하는 형에게 부치며 그곳에 있는 불쌍한 이들을 위해 형님이 하시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동봉해서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 그가 죽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너는 나에게 열 달란트 어치를 섬겼다. 이제 너에게 억 달란트를 상주겠다. 나의 기쁨 속으로 들어오너라.”

아우가 자기보다 적은 달란트 어치 일을 하고도 자기와 똑같은 상을 받는다는 말에 형은 자뭇 놀랐습니다. 그리고 기뻐하며 주님께 이렇게 말했다. “주님, 제가 혹시 다시 태어나 한평생 거듭 살게 된다해도, 저는 주님을 위해 행했던 그대로 똑같이 행하겠나이다.” 종교 박람회에서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에 등장한 일꾼들이 포도밭 주인에게 시간에 관계없이 왜 똑같이 대우했냐고 따진 것에 반해, 안소니 드 맬로 신부님이 들려 준 우화속에 등장한 형은 자기보다 적게 공헌한 아우가 자기와 똑같은 상을 받은 것에 함께 기뻐했습니다. 전자의 모습은 모든 것을 비교하고 그에 따라 차등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면, 후자의 모습은 참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은총을 가득히 받은 주님의 제자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복음과 오늘 들려드린 우화가 가르키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그 나라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가치와는 다릅니다. 그곳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란 차별이 없습니다. 그곳은 능력이 많건, 적건 간에 모두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해 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나라에서 능력이 적다고 업신여김 당하거나, 능력이 많다고 해서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무한하심 앞에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들이기에, 오히려 그 무한한 사랑과 자비의 은총 앞에 감사할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질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사랑합니다. 결국, 첫째와 꼴찌가 하느님 나라에서는 무의미해지며, 다양성 안에서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하느님의 정원, 하느님의 포도밭이 됩니다.

주님의 포도밭으로 불러주시는 하느님에게 감사하며, 우리 모두가 이러한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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