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기억, 기록, 그리고 사랑과 희망의 종교(추석 감사성찬례)
작성일 : 2023-09-29       클릭 : 157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30929 추석 감사성찬례

요엘 2:21-24, 26 / 1요한 3:17-18 / 마태 25:34-40

 

 

기억, 기록, 그리고 사랑과 희망의 종교

 

 

음력으로 815일 추석명절은 올해 양력달력으로 929일입니다. 929일은 교회전례력으로는 미카엘과 모든 천사의 축일이고, 동시에 대한성공회가 설립된 날이기도 합니다. 1889111일 모든 성인의 날 축일에 영국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Westminster Abby)에서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성품받은 존 코프(Charles John Cofe)주교는 조선선교를 위한 동역자와 선교를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영국 각지를 순회하였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미국을 거쳐 1890929일 마침내 제물포 항구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코프주교는 조선선교를 후원하는 분들에게 보낸 선교잡지 <모닝캄(The Morning Calm)>에서 이 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929일 이른 새벽에 제물포 항구에 닻을 내렸습니다. 제 긴 여정이 마침내 끝맺었습니다. 지난 34년 동안 저에게 점점 더 큰 축복이 된 성 미카엘과 모든 천사의 축일이 이렇듯 하느님의 선하신 섭리 안에서 조선에서의 제 새로운 삶의 생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곧 뭍에 올랐고 곧바로 이 나라에서 태어난 최초의 영국인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날짜뿐만 아니라 이름도 너무도 맞춤합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입니다.” 제물포에 관한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면서 긴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곳은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 처음에는 내륙이 어디서부터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한강은 수도에서 3마일 못미처 있으며, 그 하구가 이곳에 있습니다만, 수심이 너무 얕고 항해가 어려워 돛단배를 제외하고는 왕래가 거의 없습니다. 고려(高麗)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높은 산의 나라입니다. 제물포 너머로도 산 그리고 또 산이 이어 펼쳐집니다. 야트막한 산(hill)들이지 험준한 산맥(mountain)은 아닙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매우 아름답습니다. 제물포 조선인 마을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뭍에 올라서면 왼쪽편으로 언덕 위에 영국 영사관이 서 있습니다. 아래 오른쪽으로는 중국인 마을이 조성되어 있고, 해안을 따라 더 오른쪽으로 가면 일본인 마을이 있습니다. 이 두 곳 뒤 훨씬 더 높은 지대에 일반 외국인 정착지가 있지만 아직 사람이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 이 편지가 여러분에게 당도했을 때쯤에는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을 테지요. 여정의 끝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힘입어 저희에게도 새해 행복한 시간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참 행복의 근원이시며 마지막이신 그분 안에서 이미 시작되어 계속 나아가고 있는우리의 이 사업안에서 행복합니다.언제나 저를 믿어주십시오,

여러분의 다정한 벗,

C. J. 코프. - <모닝캄 7>에서, 18911월 발행 -

 

오늘 추석명절에 제가 133년 전 조선의 제물포항에 도착한 이 날 한 영국인의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름다운 한옥성당에 모여 우리의 조상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의 영혼의 평안과 살아있는 우리들의 삶에 대하여 주님께 예배드릴 수 있게 된 역사적 시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과연 성경말씀처럼 코프주교 한 사람이 혈혈단신 시작한 조선의 선교가 시작한 지 3년이 지난 18937월 또 하나의 밀알로 강화도 갑곶에 뿌려졌습니다. 이리하여 130년 전, 강화도 최초의 기독교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910일 우리교회를 비롯하여 강화교무구 모든 교회와 기관들이 여기에 모여 강화선교 130주년 기념 연합감사성찬례를 드렸습니다. 또한 우리교회는 108일 강화교산교회랑 강화기독교역사상 매우 드물었던 교환예배를 드립니다. 강화교산교회는 우리와 같은 해인 1893년 강화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최초의 감리교회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강화섬에 못들어와서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 배를 타고 나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강화섬에는 우리 성공회를 비롯하여 감리교, 성결교, 장로교, 천주교 등 그리스도교의 여러 형제자매 교회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강화읍만 해도 동문에는 성공회가, 서문에는 장로교가, 남문에는 감리교가, 북문에는 천주교가 마치 주님의 4천사처럼 이 강화읍을 영적으로 지켜주는 것만 같습니다. 이처럼 구한말에 뿌려진 주님의 복음의 씨앗이 일제시기와 해방과 전쟁,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로 매우 빠르게 변화한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 풍성한 선교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복음은 비단 영적인 차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교회는 두 분의 의료선교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분은 알마(Alma) 수녀님이고, 다른 한분은 로다(Rhoda)선교사입니다. 이 분들은 고향을 떠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역만리 타향에 와서 복음을 증언한 분들입니다. 오늘 복음인 너희는 병들어 있을 때 돌보아 주었고(마태 25:36)”라는 말씀을 실천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풍토병에 걸려서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참 불쌍한 삶을 살다간 분들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살았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모닝캄 표지에 있는 사랑의 심볼을 둘러싸고 있는 성경말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고린 5:14)” 그 사랑에 감동받은 우리 조상들은 성당마당에 비석을 세우고 그 사랑을 기억하고 기록하였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추석이나 설 등의 명절은 평소 자신의 일로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각자가 함께 모여 조상들을 기억하며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특별히 신앙인들은 혈육의 조상이자 믿음의 조상들을 기억하고 그 분들의 믿음과 삶을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 대한성공회는 선교 133년을 맞이하는 올해 3월 전국상임위원회에서 대한성공회 역사자료를 보존하고 발굴하며 연구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역사자료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동안 당면한 문제해결에만 신경쓰느라 우리 선조들의 기록과 행적을 기억하는 것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매주일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과 피를 영하는 것도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오늘날 우리 각자의 삶에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삶을 본받으려 노력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기억하는 명절예배는 다시금 기억을 살리고 그분들의 사랑과 희망을 우리의 사랑과 희망으로 이어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기억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때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기록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때나 혼자 있을 때 성경을 읽고 들으면서 주님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사랑과 희망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으로 치유되고, 그 사랑을 증거합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의 희망으로 고난을 이겨냅니다.

이제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주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을 얻고, 이 사랑을 전해 준 믿음의 조상들을 기억하고 그 분들에게 감사하면서 우리도 그러한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그리고 유서깊은 이곳 한옥성당과 130년을 맞은 강화의 첫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땅에 기쁜소식을 전해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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