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1 창조주일
레위25:8-19 / 1디모 2:1-17
/ 루가 17:11-19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 그리고 형제 늑대
추석을 기점으로 가을이 왔음을 느낍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고 밤에는 창문을 닫게 됩니다. 이처럼 자연은
춘하추동 4계절을 순환하며 우리에게 자연의 열매와 시간의 감각을 줍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4계절의
변화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폭설과 폭우, 가뭄과
홍수 등 극단적인 기후로 인해 한 해 한 해 자연환경이 악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이상기후 현상에
대하여 급기야 올해 UN에서는 지구 온난화 시대를 넘어 지구 열대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UN사무총장은 “역대
가장 더운 여름인 현재 기후상황은 공포스러운 상황이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며 “지구온도 상승폭을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목표를 전세계가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이러한 기후와 환경위기에 대하여 기독교계에서도 하느님이 지으신 창조세계
보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실천하기 위하여 9월1일부터
10월 4일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 축일까지 ‘창조절기’로 정하고, 전 세계 22억
기독교인들이 생태적 인식과 책임을 증진하는 다양한 활동과 예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한성공회 또한
올해부터 이 운동에 동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역교회에서는 창조절기 중 한 주일을 창조주일로 정해서
지키기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9월에 여러가지 행사가 있었던 우리 교회는 성 프란시스 축일이 있는 이번
주를 창조주일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왜
10월 4일 아씨시의 프란시스 기념일까지 창조절기로 했을까? 프란시스 성인과 창조절기 간에 무슨 관계가 있나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창조주일을 맞이하여 프란시스 성인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181년 이탈리아 아씨시 부유한 비단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프란시스는 당시
비단길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비단을 수입해서 유럽에 판매하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탈리아 상인 집안 자녀 답게 풍족한 삶을 누리며 자랐습니다. 1202년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그는 포로로 잡혀 1년 동안 고생하다가
질병에 걸려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전쟁을 통해 그는 아마도 풍요와 비참이라는 극단적 현실체험에 내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귀향 후, 그는 이전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향 아씨시 외곽에 버려진 시골
성 다미아노 성당에 우연히 들러 기도하다가 “프란시스야, 쓰러져가는
내 교회를 수리하여라!”라는 주님의 소리를 듣고 회심하여 아버지 가게에 가서 천을 팔았습니다. 이에 분개한 아버지와 갈등이 커져갔고, 마침내 법적소송까지 가게
되어 아버지와 재산을 포기하고 아씨시 뒤편 산에서 거지처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그에게 순례자의
망토, 허리띠, 지팡이를 주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프란시스
수도원 수도복이 되었습니다.
은수자가 된 프란시스는 자연 속에서 기도하고 구걸로 연명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는 기도와 나병환자를 간호하면서 참회와 영적훈련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간간히 근방을 돌며 시골사람들에게 참회와 형제애, 그리고 평화를 권고했습니다. 그의 이런 삶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형제회’가 생기게 되었고, 마침내 1210년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정식 수도회로 승인하였습니다.
프란시스는 1226년 10월 4일 선종했는데, 말년인
1224년 9월 13일
경 그는 산에서 기도하던 중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몸에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했던 그의 열망이 마침내 그의 몸에 오상흔적으로 새겨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몸을
만지고 치유되었습니다.
프란시스는 ‘평화의 기도’, ‘태양의 찬가’ 등 오늘날 우리에게 아름다운 기도를 남겨 주셨는데, 특별히 하느님이 창조하신 태양과 달과 별과 바람 그리고 모든 생물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영적 통찰력은 오늘날
환경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인류에게 커다란 교훈을 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그를 ‘생태학의 수호성인(The patron saint of ecology)’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 <성
프란시스코의 잔 꽃송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대략 1327년경 씌어진 책으로서 동물을 사랑하고 자연의 신비가로서의 성인의 모습을 대중적인 언어로
소개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성인과 자연에 대한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담겨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 인상에 남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에피소드의 소제목은 ‘구비오의 늑대’입니다:
구비오라는 마을에는 매우 사나운 늑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포악한 놈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무서워서 성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습니다. 어느 날, 프란시스
성인과 제자들이 이 마을에 왔는데 사람들은 늑대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성문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성문 밖에 나가 길을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나운 늑대를 만났습니다. 늑대는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왔습니다. 성인은 성호를 긋고 늑대에게
“늑대 형제여,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에게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고 명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나운
늑대는 턱을 다물고 도망가지 않고, 양처럼 순해지면서 성인의 발 아래 앉았습니다. 그리고 성인을 따라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성인은 늑대와 구비오 마을사람들 간에 평화를 맺어주었습니다. 늑대는
더 이상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꼬리를 흔들며 동의했고, 성인은 마을사람들에게 늑대가 굶주려서 사나와졌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늑대가 죽을 때까지 먹여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이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늑대는 자신의 오른발을 들어올려 성인의 손 안에 놓음으로써 협정이 체결되었고,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 후 늑대가 죽기까지 2년 간 구비오 마을사람들과 늑대는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날 인류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자연을 파헤쳐서 동물들의
생존권이 나날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코로나 사태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환경파괴로 인해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로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마치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인류의 첫 조상에게 마련해 주실 때, 다른 것은 다 괜찮지만 선악과 열매만큼은 따먹지 말라고 했던 것을 어긴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창조주일을 맞이하여 성 프란시스와 구비오의 늑대 이야기를 들려드린
것은 오늘날 환경을 훼손하여 그 재앙을 점점 크게 받고 있는 인류가 어떻게 자연과 다시 화해하고 평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환경과 생태의 수호성인인 아씨시의 프란시스의 정신을 본받아서 우리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자연질서를 보호하고 이 속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시는 신앙인이 되길 바랍니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과 형제자매인 동식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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