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4 나해 대림4주일 사무하 7:1-11, 16 / 로마 16:25-27 / 루가 1:26-38 천사가 왔을
때 한국사람들 그리고 한국문화에선 아이가 태어날 때 표징이 되는 꿈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태몽(胎夢)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뭔가 기이한 내용을 가진 전형적인 길몽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약 이것이 길몽이 아니라 흉몽이라면 어느 부모가 이걸 마음에 담아두고 이야기하겠습니까! 그런데
태몽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별로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현상은 동아시아를
벗어나 인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의 태몽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녀는 상아가 여섯 개 달린 흰 코끼리가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아들 고다마 싯다르타(Gotama
Siddhartha)-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이름-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와 인도는 꿈을 통해서 새 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데 반하여
성경, 특히 루가 복음에선 천사가 직접 나타나 탄생 메시지를 전합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탄생 예고가 바로 그렇습니다. 두 사건 모두 천사가 나타나자 이것을
보고 놀라고, 천사가 새 생명이 태어날 거라고 알리자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물어보고, 이에 천사가 표징을 언급하는 순서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가
펼쳐지는 동안 받아들이는 두 사람, 즈가리야와 마리아의 반응은 서로 다릅니다. 저는 오늘 설교에서 천사가 와서 하느님의 놀라운 소식을 전했을 때, 즈가리야
사제와 시골 처녀 마리아가 보인 반응을 비교하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번째 단계는 천사의 출현과 그 메시지입니다. 우선, 즈가리야 사제에게 나타나신 천사를 봅시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제사를 지내러 하느님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이 지성소는 오직 그날 제사를 지내는 사제만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 중에서도 거룩한 곳입니다. 그 당시 즈가리야 사제의 마음상태는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하느님의
사제라는 고귀한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못 낳는 것은 일종의 저주 내지 하느님의 벌로 여기고 있던 그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 그로 인한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늘 주눅든 상태였을 거고, 그래서 아내 엘리사벳과 함께 하느님께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이 들어 늙어버린 노부부는 자포자기한 상태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런데, 지성소에 들어간 즈가리야 사제는 천사가
분향제단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 그에게 천사는 다음과
같이 메시지를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즈가리야, 하느님께서 네 간구를 들어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터이니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루가 1:13)”다음으로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와 그 메시지를 봅시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인 예루살렘 혹은 예루살렘 근방에 살았던 나이 많은 즈가리야와 엘리사벳과
달린 마리아는 이스라엘 변두리인 갈릴래야 지방에서도 보잘껏 없는 무명의 고을 나사렛에 사는 앳된 처녀였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남녀가 열두살이 넘으면 약혼을 한 후 일년 남짓 각자의 집에서 지냈는데 이것을 ‘정혼(定婚)’이라는 하고, 정혼을
하고 일 년쯤 지난 뒤 신랑이 정혼한 신부를 자기 집에 데려와 정식으로 혼인을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성서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혼상태를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마리아는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처럼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간절히 매달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와서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가 1:30-31)”라고 말합니다. 즈가리야와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와 그 메시지를 비교했을 때, 전자가 오랫동안 기도한 것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라면, 후자는 하느님이 먼저 간택하시고 인간의 응답을 바라시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계시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것은 하느님에게 불가능함이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이 세상 구원을 위해 필요하시다면 자연의 법칙을 뛰어넘어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종종 ‘기적(奇籍)’이라고 합니다. 천사는 이렇게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놀라운 기쁨, 엄청난 기적을 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두번째 단계인 두 사람의 반응과 천사의 대답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즈가리야 사제의 반응을 보겠습니다. 즈가리야는 “저는 늙은이입니다.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런 일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루가 1:18)”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한편, 마리아는 처음엔 즈가리야처럼
깜짝 놀랐지만, 곧이어 그 말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천사에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루가 2:34)” 얼핏 보면, 즈가리아와
마리아 모두 천사에게 의아해하며 반문합니다. 그러나 그 질문의 동기는 서로 다릅니다. 인생경험이 많은 즈가리야 사제에게 천사의 말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막상 바라던 바가 왔을 때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그에
비해 이제 갓 어른이 된 마리아에게 있어서 인간적으로 뭔 지 모르겠지만, 천사를 통한 하느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 어떤 섭리가 있을 거라고 여기면서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엽니다. 이러한 그들의 상반된 반응에 천사 역시 상반된 징표를 줍니다. 즈가리야에게는 그 놀라운 일이 일어날 때까지 그는 벙어리가 될 거라고 하고,
마리아에게는 친척 엘리사벳에게 일어난 경이로운 일을 언급하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되는 것이 없다(루가 2:37)”는 말씀을 주십니다. 이에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2:38)”라고
대답함으로써 마침내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는 위대한 역사(役事)가
시작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제1독서를 보면, 주님의 보호하심과 도움으로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왕국의 기초를 다진 다윗왕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느님 성전을
짓고자 합니다. 이에 하느님은 “네 왕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사무하 7:16)”고 하시면서 그에게 크나큰 축복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구약에선 이 축복이 다윗왕실에게 내려졌다면, 신약에 와선
마리아의 순명으로 인해 마리아는 물론 이스라엘을 너머서 온 인류에까지 축복의 지평이 확장됩니다. 사실,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볼 때, 권력의 최정상인 다윗왕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무하는 사제 즈가리야에 비해 변방 시골마을에 사는 10대 소녀 마리아를 비교한다는 것이 말이
되질 않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축복의 정도가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사회적 지위를
보고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순명의 순수함을 보시고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순수한 마음과 그 마음에서 우러나온 “예!”라는 응답이 있었기에 하느님이 인간의 몸이 되시는 기적 그리고 온 인류를 향한 크나큰 축복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우리는 아기 예수의 성탄을 경축할 것입니다. 이 축일을 기뻐하면서 주님께 우리도 마리아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마리아가 그랬듯이 일상생활 속에서 천사처럼 오시는 주님의 소식을 잘 듣고 기꺼이 대답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마리아처럼 우리 역시 주님이 주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간구합시다.
천사를 통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