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31 나해 성탄1주일
이사 61:10-62:3 / 갈라4:4-7
/ 루가 2:22-40
정결과 속량(贖良) 그리고 쉼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여러가지 교회예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만들어지고 다듬어져 온 것들입니다. 비단 눈에 보이는 예식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고방식들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교회는 출산감사예식을 하는데 이것은 산모가 무사히 출산한 것에 감사하고 아기를 축복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하는
예식입니다. 그런데 이 예식은 구약성경 레위기에 나오는 정결법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레위 12:6-8 참조) 정결법이란
아들을 낳은 산모는 40일, 딸을 낳은 산모는 80일이 지난 다음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일 년생 어린 양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지내야
정결하게 된다는 규정입니다. 만일 집안이 가난한 경우에는 제물로 비둘기 한 쌍만 바쳐도 무방하였습니다. 이런 예식을 하는 이유는 고대인들은 피 흘리는 것을 뭔가 문제가 생겨서, 즉
고대인들이 표현으로 말하자면 뭔가 부정해서 생겨난 것으로 여겼고 그래서 부정을 벗어나기 위해선 일정한 날을 기다리며 회복이 된 후, 공적예식을 통해 사제로부터 정결하다고 인정받아야만 비로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이해하자면, 정결법의 의미는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 산모가 무사히 출산하고 충분한 쉼을 통해 건강을 회복한다는 신체적 이유와 더불어 그 기간 동안 산모와 아기가 무사하고 건강한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이들을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맞아들이는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로도 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들은 복음 중,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 주님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루가 22:22, 24).”라는 구절이 바로 오늘날 교회에서 거행하는 ‘출산감사예식’의 근거입니다.
한편, 오늘 복음은 정결법과 또다른 법이 서로 혼재되어 묘사하고 있습니다. 23절은 보면, “’누구든지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구약의 속량법입니다. 이 법은 출애굽기 13장 2절,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모태를 열고 나온 맏아들은
모두 나에게 바쳐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 라는 말씀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법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는 하느님의 것이요 따라서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일생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기가 태어난 지 한달 안에 다섯 세겔을 성전세로 내야 했습니다. (레위 18:15-16 참조) 왜냐하면, 맏이는 하느님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돈을 내고 하느님으로부터 그 아이를 사서 길러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식이 훗날 교회에도 들어와서 여러 자녀들을 낳았던 예전엔 신부님들이 교우들에게 맏이를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교우들도 자녀들에게 특히, 맏이에게
집안을 대표하여 네가 사제 되었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소(聖召)를 발굴하기 위해 이러한 말씀과 풍습을 활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곡식을 수확하고 추수감사예배를 거행함으로써 이 정신을 구현하고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에서 들은 예수님 가족이 정결법과 속량법에 따라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은 생물학적인 상태로 이 세상에 오신 것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의례를 통해서도 우리 인간의 문화 한 가운데로 오셨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오늘 복음 후반부를 살펴봅시다. 특별히 시므온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우리 기도서에 등장하는 익숙한 기도, ‘시므온 송가’를 한 인물입니다. 성경은
그를 ‘의롭고 경건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당시 율법을 잘 지키는 자로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던 인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식으로
시므온, 그리스식으로 시몬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그 이름에 걸맞게 시므온은 하느님이 들으시도록 평생을 걸쳐 주님의 구원을 열망하고 그 징표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은 그의 간청을 들으셨고, 한 아기를 보여주셨습니다. 루가 복음은 그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관습에 따르면, 부모는 아이를 성전에 있는 나이 많은 랍비에게 데려가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간 나이 많은 랍비 시므온은
주님의 섭리로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와 요셉을 만났고, 거기서 그들은 관례에 따라 시므온 팔에 아기
예수를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이에 시므온은 “Nunc Dimittis, 이제는 떠나가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시므온 송가를 바칩니다. 이 송가는 즈가리야 송가(Benedictus Dominus Deus), 성모
마리아 송가(Magnificat)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교회 전례 때 널리 애용되는 송가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기도서에는 아침기도에는 즈가리야 송가, 저녁기도에
성모 마리아 송가를 하고, 자기 전에 하는 밤기도에는 시므온 송가를 바칩니다. 시므온 송가 첫 문장은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루가 2:29).”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이제야 모든 권한을
지닌 지배자시여,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쉬게 해 주셨습니다”, 혹은 “풀어 주셨습니다”라고 직역하면 그 의미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제야’가 문장 제일 앞에 있는 이유는 그토록 고대하던 구원이 이
아기를 봄으로써 마침내 성취되었다는 시므온의 심정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본 이 구원이 이제 모든 민족들 에게까지 퍼져 나갈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때만이 빛이
되고 영광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예수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될 것이며, 급기야 그들 로부터 배척 받게 될 것이고, 그러한 일이 어머니 마리아로
하여금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줄 거라고 예언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위에서 언급한 정결예식과 속량예식 그리고 시므온 송가에서 우리는 어떠한 영적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요? 먼저, 오늘날 정결예식은 옛날처럼 부정을 씻어냈다는 생물학적 차원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에 주님께서 보호해 주심에 대한 감사이며, 동시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기쁨을 경축하는 자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몸값을 받고 종을 놓아주어 양민이 되게 한다는
‘속량(贖良)’
단어가
이스라엘 종교의식에서는 하느님의 소유인 맏배를 인간이 돈을 내고 사온다는 것이었지만, 그리스도교에선
반대로 죄에 빠져 악한 세력에 넘어간 인간을 하느님이 당신의 전(全) 존재를 다 바쳐서 값을 치러 다시 하느님의 선한 품으로 되찾아
오신다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제 속량은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히 헌신적인 사랑으로 높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와 유혹과 절망에 빠지더라도 하느님의 속량을 믿고 희망할 때, 우리는 다시 주님께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므온처럼
우리 역시 그러한 하느님의 구원을 보고, 그 빛을 갈망하고 맞이하기 때문에 편히 쉴 수 있게 됩니다. 특별히 불확실함과 불안 등으로 불면의 날들로 고통받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시므온 송가는 아기 예수를 통해 시므온이
영혼의 위로와 안식을 얻었듯이, 우리도 주님 안에서 편한 잠과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은총의
기도입니다.
이제 몇 시간 뒤면 2023년 한 해를 마감합니다. 정결례를 통해 한 해의 부정을 씻고, 속량을 통해 주님께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얻고, 시므온 송가를 통해 평온하게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는 은혜를 간구합시다.
우리를 정결하게 해 주기 위하여 대신 속량해 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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