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사랑의 상통(설 명절)
작성일 : 2024-02-10       클릭 : 131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40210 설 명절

민수 6:22-27 / 야고 4:13-17 / 마태 6:19-21, 25-34

 

사랑의 상통

 

동아시아의 전통명절인 설날입니다. 양력으론 이미 2024년이 되었지만, 음력으로 첫날인 오늘에서야 비로소 계묘(癸卯)년이 가고, 갑진(甲辰)년이 시작되었습니다.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이 도입되기 전, 우리 선조들은 음력으로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이 계산법은 하늘을 뜻하는 10개의 천간(天干)과 땅을 뜻하는 12개의 지지(地支)를 조합하는데, 올해는 푸른 색 목(木)기운을 상징하는 천간인 갑(甲)과 용을 뜻하는 지지인 진(辰)이 결합된 이른바 ‘푸른 용’해입니다. 용은 12간지 중에서 유일하게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그렇지만 용은 비와 바람을 조정하는 능력을 지녔기에 농경사회에선 매우 중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황제권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용의 특성이 10개 천간 중 첫번째인 갑(甲)과 연결되어 사람들은 올해를 ‘갑진개화(甲辰開花)’의 해라고 해서 새로운 시작과 발전을 기대하는 해로 여기기도 합니다. 모쪼록 새해에 세운 계획과 목표가 주님의 은혜 안에서 좋은 결실을 맺으시길 바랍니다. 

얼마전 저는 산타페 연구소(Sante Fe Institute)에서 만든 영상과 글들을 읽었습니다. 산타페 연구소는 미국 남서부에 있는 뉴 멕시코 주 산타페라는 도시에 있습니다. 산타페는 스페인어로 ‘거룩한 믿음’이란 뜻입니다. 도시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이곳은 스페인 식민지였는데 19세기 미국과 멕시코 간 전쟁 결과, 1848년 미국 영토가 되었습니다. 산타페 연구소는 과학, 기술, 사회, 경제 등 인간사회와 자연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목적으로 1984년에 설립한 비영리 연구기관입니다. 특별히 이 연구소는 다양한 학문분야를 서로 넘나들면서 통합적으로 인간과 세상, 자연을 연구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에는 단지 과학자들이나 학자들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심지어 신학자와 영성가들까지도 와서 각자의 생각과 영감을 나누는 곳으로서 세계적으로 아주 독특하고 창의적인 연구소로 주목받는 곳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의 눈길을 끌고 영감을 자극한 것은 바로 이 연구소가 위치한 곳입니다. 밀러 캠퍼스(Miller Campus)라고 부르는 이 곳은 산타페 시 외곽 샌디아 산맥 기슭에 자라잡고 있는데, 저는 마치 세속과 떨어져 있는 봉쇄수도원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교 수도원 역사를 보면, 수도원은 세상과 일정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서 겉으로 보기엔 세상 일에 전혀 무관심한 곳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신과 소통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종교적 장소임과 동시에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가장 잘 보존하고 연구하고 계승하는 문화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흔히 중세유럽을 ‘암흑시대’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기도하고 연구한 노력 덕분에 유럽의 정신문화가 보존되고 계승되어 마침내 근세 유럽문명을 탄생시킨 산실이 되었다는 것이 오늘날 역사가들의 평가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산 속에 외따로 있던 산타페 연구소로 전 세계 각지로부터 온 사람들이 진지하게 탐구하는 모습에서 과거 중세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과거와 현대의 수도원이 연결되어 있어서 이를 통해 인생과 우주의 의미를 탐구하는 인간정신의 연속성을 느낍니다.

제가 설날에 머나 먼 미국 그것도 종교적 기관도 아닌 세속의 연구소를 언급한 이유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우리는 시간과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삶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설과 추석 그리고 제사와 같은 전통절기, 그리고 신앙인들은 매 주일 교회에 와서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는 종교예절, 그리고 생명이 태어나거나 혹은 죽음으로 사별하는 삶의 중요한 순간에 바쁜 일상을 멈추고 인생의 의미와 궁극적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설날 아침 각자의 삶의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고 언덕 위에 있는 어떤 면에서 세상의 부산스러움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인 주님의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우리가 진정 어디에서 왔으며, 궁극적으로는 어디로 가는지에 대하여 다시금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어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재물에 대하여 또 먹고 입고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십니다. 모두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살면서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의 많은 시간을 들여 애쓰는 영역들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부족해지면 당장 삶이 불편해지고 심지어 생존에 크나큰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이점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영원하고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현재에서 발생하는 번뇌 때문에 우리의 미래까지 묶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과거가 현재를 발목잡고 있고, 발목잡힌 현재 때문에 미래를 불안해합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 많은 이들의 현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회개를 통해 과거에 발목잡며 힘들어 하는 현재를 끊으라고 하십니다. 그런 다음 다가올 진정한 미래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면서 현재를 활기차고 충실하게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가 일상에서 못보고, 못느끼고 있던 것들에 대하여 새로운 차원, 신선하고 영원한 연결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의(義)는 우리를 영원한 현재이신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우리를 풍요롭게 만드십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간 조상들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오늘 아침 이렇게 별세한 조상들을 기억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이점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비록 우리가 선조들이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지만, 하느님의 품 안에 우리는 차원을 초월하여 하나의 커다란 가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되새깁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시각으로 볼 때, 이곳에 있는 우리와 저곳에 있는 조상들은 모두 우주보다 더 심오한 하느님 왕국의 시민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무한한 은총이며 우리는 이 은총을 신앙의 신비 안에서 감지하기에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런데 만일 살아있는 우리 안에서 뭔가 불편한 것이 있다면, 또는 앞서 가신 부모님과 조상들과의 관계에서 뭔가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다면 이 예배를 통하여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으며 그 상처난 관계를 치유하는 은총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 관계는 더 이상 아픔과 슬픔의 관계를 벗어나 복된 관계로 변화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산타페 연구소의 노(老)과학자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연구의 특징은 복잡계 이론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세상과 우주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복잡한 것을 굳이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저는 그것을 사랑과 연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이 마치 과학자의 말이 아니라 신학자의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그는 어떤 신학적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성을 최대한 활용해서 궁극적 의미를 연구하였고, 그 종착점에서 우리 신앙이 강조하는 지점과 마침내 연결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이 예배에서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하느님 안에서 상통(Communion)을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자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 안에서 사랑으로 상통하기 위함입니다. 이럴 때 오늘 제1독서 민수기에서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에서 복을 내려주신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복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산 이와 죽은 이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히 내리시길 바라며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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