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나 대신 죽은 한 친구를 기억하며(나해 부활6주일)
작성일 : 2024-05-02       클릭 : 96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40505 나해 부활6주일

사도 10:44-48 / 1요한5:1-6 / 요한 15:9-17

 

나 대신 죽은 한 친구를 기억하며

 

오늘 독서와 복음은 사랑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15 13, “벗을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말씀은 실로 사랑의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이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중요한 사건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자기네 무지에 갇혀서 그들 가운데 스승을 배반하고, 다른하나는 그분을 부인하게 될지라도 그분의 사랑은 한결같았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씀을 들을 때 마다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말씀은 저의 실존을 뒤흔드는 가장 도전적이고 고통스러운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계기는 1996년 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것은캄보디아에 있는 한 장애인 직업재활학교에서 일어난 참사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여기서 잠시 캄보디아의 현대사를 설명하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 정권이 유태인을 학살한 홀로 코스트,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중 종족학살과 더불어 20세기 3대 대학살 중 하나로 불리는 캄보디아의 대학살은 1985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 영화에 의해 그 진상의일부분이 세계에 알려질 정도로 잔혹하였습니다. 그 원인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식민지에서 해방된 캄보디아, 베트남등이 냉전시대의 영향으로 이념적으로 갈려서 내전을 벌였고, 마침내 권력을 잡은 크메르 루즈 정권이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유사한 방식으로 국민들을강제노동 시켰고, 특별히 지식인들과 예술가 등은 교육받은받은 자라는 이유로 잔혹하게 집단학살 당하였습니다. 이처럼반()지성주의에 입각한 대량학살로 인해 캄보디아 전역이사지(死地), 즉 킬링필드로 변모해 버렸습니다. 또한 이 시기 국토 전역에 무분별하게 뿌린 지뢰는 내전 이후 아직까지 캄보디아의 발전을 막는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 내전이 끝난 후인 1990년 예수회난민 봉사단(Jesuit Refugee Service, 이하 JRS)이결성되어 교육, 보건, 법률상담 등 전쟁으로 인해 위험에처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중 근로력을 잃거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아동들과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반티에이 쁘리업(Banteay Prieb)’이라는직업재활학교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운영 중에 있습니다.

저는 1995년 서강대학교에서 예수회 철학과정을 이수하고, 1996년부터 예수회 중간실습의 일환으로 2년 동안 산동네에서 도시빈민선교활동을했습니다. 그런데 이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한국 예수회 본부에서 캄보디아 반티에이 쁘리업직업재활학교에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가 거기로 가서 미션을 수행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시 청빈과정결, 그리고 순명이라는 3대 서원을 지켜야 하는 수도자인저로서는 그 명령에 순종하고 떠나야 했지만, 저는 이제 막 시작한 사회선교 임무를 저버리고 갈 수 없다고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저의 이런 태도에 한국 예수회는 한국인 수사를 파견하기가 어렵다고 동아시아 지역구본부에 보고했고, 그래서 필리핀 관구 소속 RichieFernando 수사가 저 대신 캄보디아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10월 말 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되었습니다. 지뢰로 불구가 된 장애인들을 위한 직업훈련센터에서 일하던 Richie 수사는 수류탄을 들고 들어온 학생을 말리던 와중에 그가 떨어뜨린 수류탄을 자신의 몸을 방패삼아 그학생과 건물 내 다른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리치 수사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그가 평소에 남긴편지를 읽을 때, 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사실, 그 자리는 원래 제가 있어야 할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몸을 희생해서 그런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나는 순명하겠다고 약속하고서 왜 그 서원을 지키지 않았나? 하느님은 왜 나와 그의 운명을 엇갈리게 하셨나? 등등 숱한 질문과자괴감이 밀려와서 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복음, “벗을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13)라는 말씀을 읽었는데저는 리치의 모습이 떠올라서 기도를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십자가 사건 때 스승을 부인한 베드로와 도망갔던 제자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특별히, “바로그 때에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닭이 두 번째 울기 전에 네가 세번이나 나를 모른다고할 것이다’하신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땅에 쓰러져 슬피 울었다(마르 14:72)라는 성경말씀이 떠올라 그 때 슬피 울었던 베드로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면서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마르 14:31)한 자신의 말이 생각나면서 그러한 현실이 닥쳤을 때 도망쳐버린 자신의 나약함을 통탄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 예수와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나눈 그깊은 우정 등이 서로 교차되면서 자신을 심하게 자책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는 말씀을 듣고, 매 주일 십자가에 희생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예식을 하면서 예수님처럼 자기를 희생하는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겠다고다짐하지만, 베드로와 제자들과 같이 나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인 우리에게 어쩌면 그것은 우리 능력을 뛰어넘는초월적인 존재의 도우심이 없으면 감히 실천하기 어려운 경지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그러한 사랑은 난 할 수 없어!”라고 속단할 순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부활한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 즉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스승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님으로부터 참 평화를 선물로 받고, 마침내 성령의 감화로새롭게 될 때 만이 나약한 인간본성을 뛰어넘어 놀라운 사랑의 실천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되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나약함과 한계로 인해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더 숭고한 희생을 할 수 없을 때, 그리고 자책감으로 위축될 때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그러면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느님은 당신의 협조자,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시어 나의 좁은사랑의 경계를 넓혀 주시고, 나의 옹졸함의 벽을 허물어 주셔서 더 넓은 사랑, 더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럴 때 나는 나의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새 사람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한 예수님이 우리에게주는 선물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그 선물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계상황에 봉착했을 때 주님이 주신 성령의 선물을 꺼내십시오.만일 꺼낼 힘마저 없다면 믿음을 갖고 주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요한의 첫째편지에서 요한사도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다 세상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1요한 5:4)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 숭고한 사랑을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시기를 간청하며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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