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그 나라가 임하옵시며(성령강림대축일)
작성일 : 2024-05-18       클릭 : 78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40519 성령강림대축일

에제37:1-14 / 사도 2:1-21 / 요한15:2-27, 16:4-15

 

그 나라가 임하옵시며(ThyKingdom come)

 

성공회에서는 해마다 승천대축일부터 성령강림대축일까지 ‘ThyKingdom come(TKC)’이란 기도운동을 전개합니다. 주의기도에 있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란 구절에 해당하는 영어기도문이 ‘Thy Kingdom come’입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그 나라가 오시기를이라 하겠습니다.이 기도운동은 2016년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와 요구 대주교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는데, 현재 전 세계 85개 교파에 걸쳐 약 100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동참하는 초 교파적 기도운동으로 성장하였습니다.이 기간 신앙인들은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시어 제자들을 하느님 나라의 열정으로 변화시켰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오시길 기도하면서 주변에 있는 적어도 5명의 사람들에게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이처럼 TKC는 기도와 전도를함께 하는 신앙 운동입니다.

서울교구 선교교육국에 재직했을 때, 저는 TKC운동을 접하고 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한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하고, 영국에있는 TKC 홈페이지에 있는 매일 기도영상과 관련자료를 전달하였습니다.그러나 언어의 장벽 때문에 아무래도 호응도가 그리 높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안에번역할 수 있는 역량이 좀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습니다.

저는 승천대축일부터 오늘 성령강림대축일까지 매일매일 TKC가이메일로 보내온 영상 및 문자 기도자료 등을 읽고, 듣고 그리고 오늘 주일설교를 준비하면서 예수님의승천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됨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기다린다는 것이무엇이고, 성령을 통해 그 약속을 받게 된 후 우리의 변화됨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그 의미를 하나씩 여러분과 나눠볼까 합니다.

먼저, 떠남과 하느님의 부재(不在)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지난주 설교에서 예수님의 승천은 사람의 아들 예수가 실은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셨던 분이라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우리와 똑같이 희로애락의 감정을갖고, 우리처럼 먹고, 마시고, 쉬고, 일하시던 인간 예수가 떠났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의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그분의 몸을 더 이상만질 수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당신이 체포되는 순간에도 “내가 그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를 찾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 두어라(요한 18:8)라고 할 정도로 온 몸으로 제자들을지켜내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참 목자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제1독서에서 “뼈는 마르고, 희망을사라져 끝장이 났다(에제37:11)라는 넋두리는 어쩌면 제자들의 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제키엘예언서가 묘사한 마른 뼈의 은유는 하느님의 부재 속에 놓여있는 인간들의 감정, 즉 슬픔과 절망을 상징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육신의 시력을 상실한 사람이 특별한 계기로 영적인 직관과 감각이 살아나듯이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의 떠남은 인간을 더 이상 육체적이고 물질적 차원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영적인 차원으로 변화하는 전환점입니다.

다음으로, 기다림입니다.루가 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 루가는 예수 승천 후,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하였다고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특별히, 기도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입니다. 기도할 때우리의 의지와 노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 기도의또 다른 파트너인 하느님의 뜻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우리가 기도할 때 당신의 은총을 내려 주시고, 당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우리는 이러한 은총과 하느님의 계시를 맞이하기위하여 나를 내려놓고 겸손하고 인내로이 기다려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뭔 지 알기 위하여 탐구하고, 그것을 위해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 마음과 영혼에 그것을 불어넣어 주실 때, 비로소 생기를 띠게 됩니다. 오늘 제2독서 사도행전에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 베드로는 요엘 예언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도 2:17)      

마지막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은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던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가지 외국어로 말을하기 시작하였다. (사도 2:2-4)그러자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심약한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각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감동적인설교를 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행동에 대하여 몇몇 사람들은 그가 술 취했다고 빈정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것은 확실히 성령의 활동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또한요한 복음을 보면, 예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죄와 정의와 심판에 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요한16:8)이며,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16: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이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마른 뼈가 다시 살이 붙는 것처럼 생명을 얻는 것이요, 그것은 절망과 슬픔, 그리고 무기력에 빠진 우리를 다시 꿈과 희망으로활기차게 만듭니다. 또한 이것은 단지 우리를 영적흥분상태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식별할 수 있는 영적 지혜를 갖게 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현대인들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 찬 세상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과거엔 공, 인형 게임 한 두 개와 친구 몇 명이면 재미있게 놀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화려한 그래픽 게임을 비롯해 온갖 엔터테인먼트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는것 같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옛 사람보다도 더 외로움을 느끼고 있고, 더 지루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더 재미있지 않으면오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신앙인들은 옛 신앙인들보다도 영적으로,정신적으로 더 공허하고 불안해합니다. 왜 그럴까요? 새로운것이 나왔다가 곧 소모되어 잊혀 버리는 소비문화에 익숙해진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영혼도 그렇게 금방 소모되고 잊혀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있는 것은 아닐까요? 동시에 너무도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태초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삶에 대한 열정, 선함, 웃음, 기쁨을상실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생명, 자연을제대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감각을 잃어버린 마른 뼈 같은 영혼 그리고 기계적인 관계 속에 무관심과 소외의 굴레 안에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이하여 생명이 부재하고 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단절되어 하느님의 부재속에 살고 있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이지루하고 소외되고 무기력한 삶에 잔잔한 성령의 단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 단비를 맞고다시 생명을 되찾아서 기쁘고 충만하게 삶을 살아갑시다.

성령으로 숨을 불어넣어 주시고 다시 살리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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