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240623 믿음으로(나해 연중12주일)
작성일 : 2024-06-22       클릭 : 79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40623 나해 연중12주일

사무상 17:32-49 / 2고린6:1-13 / 마르 4:35-41

 

믿음으로

 

우리는 흔히 강한 상대와의 싸움을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오늘 들은 제1독서는 바로 이 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독서 앞부분에는 엄청난체구를 지닌 골리앗을 필두로 한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에 쳐들어왔고, 이스라엘군은 이들과 싸우길 매우두려워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이스라엘 진영에 식량을 전하러 왔다가 골리앗의 고함소리를 들은 다윗은사울 왕에게 골리앗에게 맞서겠다고 자원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어린 네가 어떻게 저렇게 강한 자를이길 수 있겠냐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양을 치면서 짐승들로부터 양들을 구해낸 경험을 통해얻은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 계시는 하느님이 함께 하셔서 능히 이길 거라는 강한 믿음과 의지를밝힙니다. 이에 사울 왕은 싸움을 허락하고 그에게 갑옷과 칼을 주자,그는 사양하고 돌 다섯개를 준비해서 돌팔매질로 중무장한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 투구 사이 빈 틈으로 드러난 이마를 정확히 맞춰 쓰러뜨립니다. 적장이 쓰러지자 충격으로 혼란을 빠진 블레셋군과 달리 이스라엘군은 사기가 충천해져서 마침내 블레셋군을 물리쳤습니다.

만일 우리 역사에서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은 전투를 뽑으라면 저는 1597년에 했던 명량해전(鳴梁海戰)이라고말하고 싶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순신장군은 일본해군에 연전연승하여 해상권을 장악함으로써 전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일본군과 명나라군대와의 협상으로 전쟁이 교착상태에 처하자, 일본군은 거짓정보로 조선조정과 이순신 장군 사이를 이간질시켰고, 이들의 농간에 놀아간 선조(宣祖)왕은이순신 장군을 파직하고 원균을 임명하였습니다. 그 결과, 원균은조선조정의 지시로 나가 싸웠으나 160여 척의 배가 파괴됨으로써 조선 수군은 철저히 괴멸되었습니다. 이에 놀란 조정은 이순신을 다시 장군으로 복귀시켜 막아내라고 명했습니다. 남아있던배 12척과 뿔뿔이 흩어진 패잔병들을 모은 이순신장군은 133척을이끌고 남해를 지나 서해로 북상하려는 일본군을 조선에서 가장 물살이 빠르다고 알려진 울돌목에서 상대했습니다. 처음에는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 한 척만 홀로용감하게 맞서 싸우다가 두 척의 전함이 합류하였고, 나중에는 나머지 배들도 가세하면서 일본 전함 31척이 침몰되었고 도망간 배들도 거의 폐함 처리될 정도로 일본수군이 궤멸되었습니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해군이 이 싸움에서 졌다면, 조선수군을격파시킨 일본군은 남해를 지나 서해로 올라와서 금강을 타고 들어가 조선의 첫째가는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을 손쉽게 점령하고, 그 뒤 북상하여 한강을 타고 올라가 한양을 점령하고, 예성강을 타고개경을, 대동강을 타고 평양을, 그리고 압록강을 타고 의주로들어가 온 나라를 완전히 점령했을 것입니다. 실로 명량해전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놓인 조선을 구한 값진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명량해전의 사례를 통해 저는 작은 자 혹은 소수의 사람들이큰 사람 또는 다수의 사람들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측면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가시적으로찾아낼 수 있는 전술적 면입니다. 먼저 다윗과 골리앗을 비교해 보자면,다윗은 자신이 갖고 있던 장점을 잘 알고 있었고, 동시에 이것을 통해 상대방의 어디를 타격하면쓰러뜨릴 수 있는지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기존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장점을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접근하였습니다. 한편 커다란 체구와 갑옷과 투구와 칼과 방패로중무장한 골리앗은 비록 무거운 장비 때문에 행동은 좀 둔했지만, 상대방을 압도하는 비주얼과 무거운 칼로내리치는 엄청난 힘으로 상대를 격파했습니다. 이처럼 기동성과 정확성을 무기로 한 다윗과 엄청난 괴력을지녔으나 왜소하고 아무런 장비로 갖추지 못한 미소년을 가볍게 보고 방심했던 골리앗과의 싸움의 결과, 지피지기(知彼知己)한 다윗이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순신 장군의 조선수군과 일본수군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전함의수로 보면, 누가 보아도 일본수군이 확실한 우위였습니다. 조선은겨우 전함 12척 남아 있었고, 일본은 무려 133척이나 있습니다. 그것도 바로 직전 조선수군을 대패하고 기세등등한상태였습니다. 반대로 조선은 비록 명장 이순신이 복귀했지만, 상당한군사력 손실로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다윗과골리앗 싸움보다도 더 초라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두 가지 유리한 요소가 있었다고봅니다. 하나는 조선의 배입니다. 당시 일본해군은 조총의사거리 안으로 접근해서 상대 배에 사격을 가하고 그런 다음 밀착시켜서 상대방 배에 침투해 들어가 칼로 베는 일종의 백병전을 벌이는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배는 빠른 기동성을 필요로 하는 가볍고 날렵한 형태였습니다. 이에반해, 조선해군은 먼저 먼 거리에서 화포로 적 함선에 타격을 입힙니다.그런데 적 함선에 파괴되지 않고 가까이 접근해 온다면 화살을 쏩니다. 그래서 조선 배는화포에도 파괴되지 않도록 철갑을 두르거나 적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선체가 크고 높게 제작되었습니다. 이런이유로 처음에 이순신 장군이 탄 판옥선 한 척이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가 버텨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조선 전함의 우수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요소는 울독목과 같은 급 물살인 곳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보다도 조선의 지형을 잘 알고 전투에 활용했다는점입니다.  

이상과 같이 눈에 보이는 면 외에 또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면,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정신적 요소입니다.마치 사람이 육체와 영혼이 같이 있어야 이 세상을 살아가듯이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다윗과골리앗의 정신상태를 비교해 보면, 뚜렷한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그것을 하느님에 둔 반면, 골리앗은 자신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이유로 다윗은 비록 눈에 보이는 상대가 자신보다 체격이나 싸움경험이 많았음에도 주눅들지 않았고, 하느님께서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실 것을 믿으면서 그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과경험에 도취된 골리앗은 미소년의 모습을 우습게 보며 건성으로 싸움에 임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골리앗의 오만과 다윗의 신실함이 맞붙은 결과 신실함이 이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난중일기에 필사즉생(必死则生) 필생즉사(必生则死)”,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비장한마음으로 임하셨습니다. 반면에 일본군은 원균이 이끈 조선해군을 대파한 승리감과 보유하고 있는 많은 전함수에 도취되어 안이한 정신자세로 싸움에 임했습니다. 결국 간절함과 안이함으로 인해 싸움의 승패가 갈리게되었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넓디넓은 갈릴리 호숫가를 가다가 거센 바람으로 배가 좌초될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던 스승 예수님을 깨우면서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바다를 다시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실로 놀라운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마르4:40)제자들의 눈에는 심한 바람으로 배가 몹시 출렁거리다가 예수님의 명령으로 다시잠잠해진 것이 놀랍고 신기해 보일 뿐이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을 움직이게 하는 눈에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신앙인은 그런 면에서 눈에 보이는 사물, 눈에 보이는 사건과그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고, 그 근원이 진리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그러한 믿음을 가졌기에 불리한 조건 속에서 이길 수 있는 묘수를 찾아냈고, 이순신 장군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신예수님은 위기의 순간에서 풍랑을 잠잠케 하시면서 제자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 모두가 눈에 보이지않는 진리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에서 나옵니다. 이제 우리도 그러한 내적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께겸손히 기도하면서 주님께 참되고 온전한 믿음을 드립시다. 그럴 때 주님은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위기를 기회로, 마침내는 인생의 풍랑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참되고 올바른 믿음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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