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240728 절제라는 미덕(나해 연중17주일)
작성일 : 2024-07-27       클릭 : 38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40728 나해 연중17주일

사무하 11:1-15/ 에페 3:14-21 / 요한 6:-21

 

절제라는 미덕

 

1923년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자신의 유명한 정신 분석이론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인격이 이드(id)-자아(ego)-초자아(superego) 이렇게 세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id는 원시적 생명 본능이며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충동으로, 일체의 도덕과 규범의 제한을 받지 않고 끊임없이 본능적 욕망을 추구합니다. 반면, ego는 현실의 자아의식으로, 이드와 초자아 사이의 조절밸브로서 둘의 관계를 조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superego는 외부 사회규범과 도덕이 사람의 마음속에 내화 된 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행위에 소극적 제한을 가하는 역할을 합니다. 프로이트는 위에 언급한 삼자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심리적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이론에 비추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심리적 질병의 원인을 분석해 본다면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현대인들의 생리적 욕망이 너무 강해서 이드가 초자아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나치게 많은 도덕규범과 현실 조건의 제한을 가하는, 다시 말해 초자아가 지나치게 강해서 이드가 장기간 억압받고 있는 상태에 처해 있다고 보는 해석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권력의 최정점인 왕이라는 직위에 있는 다윗이 자기 부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하여 결국에는 우리야를 사지로 몰아넣어 죽게 만든 이야기입니다. 왕의 말이 곧 법인 고대 절대왕정 체제에서 왕에게 있어서 이런 일탈행위는 오늘날에 비해서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그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종교적 윤리가 가르쳐 준 내면의 양심이거나 백성들의 평판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왕이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죄를 저질러도 현실적으로 제재를 가할 법이나 제도적 장치가 없다시피 했습니다. 가히 고대 시대 왕은 神 다음가는, 아니 현실 세계에선 절대권력자인 것입니다. 그래도 다윗왕은 자신의 욕망으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서 최소한 남들의 이목은 신경 쓰였는지, 충성스러운 장군 우리야에게 선심 쓰는 척하면서 죄를 덮으려 했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우리야 장군은 국가를 위해 개인의 욕망을 자제하면서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이지만, 죄를 저지른 다윗은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 봐 노심초사하고 급기야 전투가 심한 곳에 우리야를 앞세워 내보내서 그를 죽게 하라고 밀지를 보냅니다. 다윗왕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의 죄를 어떻게든지 은폐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의 본능으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한 그는 급기야 하느님께서 주신 권력을 함부로 남용하여 충직한 신하의 생명을 없애는 살인죄까지 저지른 것입니다. 

이에 반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행동은 정반대 의미에서의 피함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과 치유를 얻기 위해 따라다닌 사람들의 굶주림을 해소해 주시기 위해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하십니다.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요한 6:14)”라고 말하면서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낌새를 알아채시고 다시 홀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이 기적을 행한 자를 보고 놀라면서 그를 왕으로 모시려고 하면, 아마도 그는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나름의 정치세력을 규합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동은 이와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당신 자신의 명예나 권력이 아니라, 성부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배고파할 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들의 허기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식욕이라는 자신들의 본능적 욕망을 채워줄 대상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할 때, 그분은 자신을 감추시고 그들이 그 욕망을 초월해 더 깊은 의미를 찾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중심이 아닌, 성부 하느님을 중심을 두었으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사람들의 진정한 행복과 구원을 위해 행동하셨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권능을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시고, 그 권능이 왜곡되어서 남용될 위험과 유혹에 처하자, 자신을 감추시는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건강한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내면세계와 외부에 있는 규범, 인성과 도덕 원칙 사이에 조화와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설교 서두에서 언급한 프로이트의 심리 학설만로는 우리 안에 내재된 본성과 외부에 있는 현실 규범 사이에는 마치 영원한 대립처럼 되어 있어서 바람직한 목표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오늘날 달을 왕복하는 등 우주공간을 정복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의 마음속은 정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매일 외부 세계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느라 정력과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나머지 정작 우리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진지하고 꼼꼼하게 반성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마음의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심리적 장애, 마음의 문제에 있어서 설령 환자가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환자 본인의 자각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생활에 번뇌가 많은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마음에 문제가 너무 많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운명이 우리를 암흑으로 내던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에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울은 에페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넘쳐흐르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힘을 돋우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에페 3:16).” 여기서 ‘내적 인간’이란 외적인 행동이나 겉모습보다는 사람의 내면과 영적 상태를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이와 같이 내적인간으로 변화될 때 나는 성령의 힘을 통해 나의 내면이 강건해지며, 나의 ego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삶의 중심이 되시고, 이를 통해 체험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타인과 세상을 향해 증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 훈련은 이처럼 사도 바울의 내적 인간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기독교의 유명한 사상가인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신자들에게 “무슨 일이든 하느님 앞에서 하는 것처럼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내적 인간이 일상생활을 어떠한 마음가짐과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참회와 수신(修身)은 이러한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진행되고, 그 대화의 전제는 바로 하느님 앞에 기만(欺瞞)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데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제1독서에서 들은 다윗왕 이야기는 자신의 욕정에 눈에 멀어 사람들을 기만했지만, 모든 것을 보시는 하느님의 눈을 기만할 수 없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성부 하느님과 하나가 되셔서 활동하신 예수님은 사람들의 욕망과 유혹에 휘둘리지 않으시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가히, 겸손과 절제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설교를 마치며 우리의 무절제한 욕망을 하느님의 은혜로 변화시키게 해달라는 성 어거스틴의 기도로써 마무리하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우리에게 외쳐 주시고, 우리를 훈육하여 주시고, 우리를 보살펴 주시며, 우리의 언 마음을 풀어주시고,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시고, 우리가 불타는 심정으로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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