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241006 교회: 형제요 자매인 대조사회(나해 연중27주일)
작성일 : 2024-10-06       클릭 : 21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41006 나해 연중27주일

욥기 1:1, 2:1-10 / 히브 1:1-4, 2:5-12 / 마르 10:2-16

 

교회: 형제요 자매인 대사회

 

사제들은 이름과 직분을 영어로 표현할 때, 이름 앞에 보통 Rev 혹은 The Revd 라고 표기합니다. 이것은 존경하올이란 뜻인 Reverend를 줄인 말입니다. 즉, 존경하올 OOO란 표시는 보통 사제와 목사를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 또한 고교회 경향이 강하신 일부 성공회 신부님이나 천주교 신부님들은 이름 앞에 보통 Fr이란 약어를 쓰는데, 이것은 신부를 의미하는 Father의 줄임말입니다

저는 젊었을 때 예수회라는 수도회에서 수사로 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제 이름 앞에 Br이란 약어를 썼습니다. 형제를 의미하는 Brother의 줄임말입니다. 참고로 수녀는 Sr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매를 뜻하는 Sister의 약자입니다. 물론, 남자수도승을 Monk, 여자 수도자를 Nun이라고 하지만, 이름과 함께 쓸 때는 보통 Br. OOOSr. OOO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OOO수사보다는 OOO형제가, OOO수녀보다는 OOO자매 라는 표현이 원래 의미에 더 부합합니다. 그래서 외부사람들이 수사님, 수녀님으로 부르지만 적어도 수도회 내부에서는 서로를 형제, 자매로 부르기도 합니다. 

제가 이렇게 교회 안에 있는 대표적 두 집단인 성직자 집단과 수도자 집단에서 사용하는 호칭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 집단이 추구하는 정신과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역사를 보면, 초기에 약 300년가량 박해를 받다가 로마제국의 주류 그리고 나중에는 전 유럽의 지배종교가 된 기독교는 자신의 교리와 조직을 지속적이고 그리고 효율적으로 치리하기 위해서 교회조직을 조금씩 체계화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회는 당시 사회와 국가조직체계로부터 영향을 받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위계질서 형태를 취하였고, 이러한 것이 호칭에서도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직자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Reverend라고 하다가, 점차 사제와 주교 간의 서열을 구분하기 위해서 Reverend 앞에 Right(약자: Rt) 혹은 Most라는 말을 첨가해서 주교에게는 지극히 존경하올이란 수식어가 더 붙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점차 수직적으로 위계화 되는 것에 반발하여 수도자들은 예수님이 주창하신 평등한 교회 공동체라는 본래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뜻이 수도자들의 호칭에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역사를 통하여 주교-사제- 부제-평신도로 이어지는 교회체계가 복음의 정신에서 벗어날 때마다 수도자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의 참된 정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주님이 각 수도회들에게 주신 은사(charisma)와 실천으로 증거했던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죄에 빠진 우리 인간을 구해 내신 후, 재건하신 공동체의 모습이 어떤 건지 시편 22편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당신을 찬미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당신의 형제라고 부르시는 이유는 십자가와 부활로 영광스럽게 되시고, 그 영광을 단지 당신만의 소유물로 움켜쥐지 않으시고, 우리도 그 영광에 참여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를 원죄의 뿌리에서 나온 후손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거룩함의 근원인 하느님에서 나오도록 바꿔 놓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선물을 주셨기에 구원받은 우리는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고 교회가 드리는 예배는 이러한 구원을 경축합니다. 이것은 단지 공적인 예배에서 찬미 드리는 것에서 멈추질 않고, 우리 삶의 전 영역으로까지 변화됩니다. 교회는 이것을 회심(metanoia)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회개한 삶이란 어떤 건지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알려주십니다. 하나는 혼인에 대한 예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이에 대한 예입니다. 먼저 혼인에 대한 사례를 살펴봅시다. 여기서 힘의 관계는 분명합니다. 강자는 남성이고, 약자는 여성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관계가 아닌 남성의 재산과 같은 취급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고대사회가 현대사회처럼 모든 사람이 법적으로 안전을 보장받을 정도로 의식이 발전하지 못했고, 여성이 따로 소득을 올릴만한 경제적 여건도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현실이 반영된 율법마저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이 허용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율법학자들은 율법의 권위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제압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태초에 하느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것은 여성이 남성의 부속물이 아니라 하느님이 남성을 만드신 것처럼 여성도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사람이라는 점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율법을 들먹이는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은 그것은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마르 10:5)라고 하시며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인간의 이기심과 편협함이라는 현실 때문에 부득이하게 제정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율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단호히 거부하시고, 하느님이 원래 만드신 원(原) 질서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다음으로 어린이를 받아들이라는 부분을 봅시다. 여기서도 힘의 관계가 나타납니다. 즉, 강자는 어른이고 약자는 어린이입니다. 특별히, 고대사회는 목축 아니면 농경사회였습니다. 이 사회에서는 힘을 쓸 수 있는 노동력이 중요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어린이는 제 구실을 못하였고, 그러기에 발언권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늘 어른들의 모임에 낄 수 없는 천덕꾸러기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 어린이들을 예수님은 안아 주시고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 10:13)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독일의 신약성서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G. Lohfink)는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라는 책에서 교회를 ‘대조사회(Kontragesellschaft)’라고 정의했습니다. 여기서 대조사회란 세상과 단절된 자신들만의 고립된 집단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빛을 비추고, 세상 부패되지 않도록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하는 사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과 구별되는, 더 나아가 인간이 걸어야 할 참된 대안을 제시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께서는 ‘성인남성-성인여성-어린이’로 서열화된 사회와 대조를 이루는 모두가 ‘형제와 자매’로 불려지는 하느님 가족 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역사는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견지하기 위해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싸워온 투쟁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왕-영주-기사-농노’라는 계급제도를 모방해서 ‘주교-사제-부제-평신도’라는 수직적 관계로 기울어질 때마다 수도회는 형제와 자매라는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역사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예수님의 근본정신을 지키고자 노력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 ……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요한 15:15, 17)

오늘 우리 교회는 새로운 교회위원들을 임명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를 위해서 봉사해 주실 분들입니다. 대조사회인 교회에서 이 직무를 맡는다는 것은 주님처럼 더 사랑하고, 더 헌신하는 겸손의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더 실천하기 위해서 이 직무를 수락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주님이 가르쳐 주신 아름다운 형제자매의 공동체가 되길 다 함께 기도하며 노력합시다.

우리를 당신의 벗으로 불러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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