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3 나해 연중31주일
룻기 1:1-18 / 히브
9:11-14 / 마르 12:28-34
한 걸음 더
지난 주간 서울교구 전체 성직자 연례 피정이 있었습니다. 지난 9월 제7대 서울교구장으로 승좌한 새 주교님 주도로 열린 첫 전체
모임이었습니다. 기조강연에서 주교님은 교구 내 매 주일예배 출석신자 상황을 말씀하셨는데, 2023년 9월 기준으로 볼 때,
2019년 코로나 직전보다 매 주일예배 출석신자가 25% 감소했다고 했습니다. 피정 기간 다른 강의에서 외부강사로 오신 목사님도 이 통계비율을 보더니, 다른
교단도 우리와 비슷한 비율로 감소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놓고 볼 때, 이제 성공회를 포함한 한국교회는 더 이상 양적성장 시대가 아닌 오히려 인구감소와 경제성장률 저하라는 이른바
‘New Normal(新常态)’한 시대적
흐름 속에 신앙과 교회운영의 내실을 기하는 질적성숙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피정 마지막 날 교구현안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저는
코로나 이후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 직면한 위기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사실 교회역사를 보면, 교회의 역사는 매번 위기를 헤쳐
나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의 영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몇 가지 역사적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초대교회 때 거의 대부분이
유대인들로만 이루어진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이 설파하신 만민에게 기쁜 소식을 어떻게 전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학식 있고 열정적인 바울(Paul)을 회심으로 이끄시고 그를 통해 선교적 돌파구를 마련해 주셔서
유대인의 종교가 아닌 세상 모든 사람들의 종교로 나아갈 토대를 이룩해 주셨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예수정신을 철저히 살겠다고 나선 은수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잘못된 수행법과 일탈행동으로 신앙생활에 혼선이 일어나자, 하느님은 베네딕트(Benedict)라는 수도자를 통해 함께 기도하고
일하는 수도공동체를 만들어서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 성공회 기도서에 있는 아침기도, 저녁기도 등의 성무일과는 이러한 베네딕트 수도회의 정신을 대중화한 성공회 영성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교회는 이를 통해 중세 1000년 동안 신앙과 일상이 조화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권력에 도취된 교회지도자들의 부패로 인해 교회의 본질이
흔들리자, 하느님은 프란시스(Francis of Assisi)에게
“내 교회를 고쳐 세워라!”라는 계시를 주시어 청빈을 실천하는
프란시스 수도회를 통해 세속권력과 부귀에 물든 교회에 경종을 울리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소홀히 하다가, 마침내 루터(Martin Luther)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의 저항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었습니다. 동시에 유럽사람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문화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럴 때 하느님은 프란시스 사베리오(Francis Xavier)를 비롯한 훌륭한 선교사들을 보내시어 ‘제2의 바울’과 같은 선교임무를 수행케 하셨습니다. 우리 대한성공회가 자랑하는 강화 한옥성당은 그러한 토착화 선교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진 교회는 역사의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시기마다 그 위기를 돌파하였고, 우리는 그러한 하느님의 섭리를 믿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주님의 지혜와 그 지혜를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성인들의 공통점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과 인생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는 매번 위기가 닥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가서 그분을 깊이 알고, 그 분으로부터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읽고 기도하는 성경, 특별히
예수님의 행적을 증언한 복음서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매주 중요한 신앙과 삶의 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신앙인들이 실천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황금률(Golden
Rule)’이라고 부릅니다. 이 토론에 대하여 마르코복음은 마태오, 루가 복음과 달리 그 의도도 다르고, 내용도 더 자세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태오와 루가 복음에선 율법학자가 예수께 핵심 계명에 대해서 물어본 의도가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했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에, 마르코복음에선 율법학자가 그런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신앙과 율법에 대하여 토론하시는 예수님께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고 합니다.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각 복음서 저자들은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그 당시 교회 공동체들에게 원래 사건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편집과정을 거쳐 서술했다고 합니다. 그럼
오늘 복음 이야기를 통해 마르코 복음 저자가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예수님께 계명의 핵심을 물어보고,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동의한 한 율법학자를 보면서 그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젊은 학자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그가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은 과연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마르 12:32-33)”라고 대답한 대목에서 번제물과 희생제물이라는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있는 다른 율법학자들과 다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그는 사제생활을 오래해서 그래서 어느정도 세상과 타협한 사제들 내지 학자들이 아닌, 사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사제이거나 율법학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진’학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슬기로운 대답에 예수께서는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마르 12:34)”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가 여기 이 자리에 임재했다” 또는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징표이자 핵심가치이다”라고 하시지 않고, 왜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혹은 “하느님 나라와 멀지 않다”라고 말씀하셨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여서 흐리멍덩해지지 않고 계명의 핵심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그에게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길 초대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말씀은 머리로 이해한 것을 이제 손과 발을 움직여 그 나라로 들어오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코 복음저자는 오늘 복음 말미에 “사람들은 감히 예수께 질문하지 않았다 (마르 12:34)”라는 말로 토론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것은 이제 더는 토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나온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살다 보면 어떤 중요한 사안이나 당면현안에 대하여 토론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용기 있게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맴도는
말들만 무성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럴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알고는 있어도 괜히 말을 꺼냈다가 책임을
떠안게 되거나 혹은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밉보이기 싫어서 그럴 때도 있습니다. 그 결과,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토론으로 허송세월을 하다가 때를 놓치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론으로는 알지만,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아마 오늘 율법학자에게 “너에게
하느님 나라가 임했다”고 하시지 않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한 걸음 더 하느님 나라로 다가갈 힘을 달라고 기도해 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하여 행동할 것입니다. 교회역사를 통해 자신들의 삶과 교회를 바로 세운 성인(聖人)들처럼 말입니다.
이제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 해를 성찰하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우리 교회에 그리고 우리 각자가 일하는 일터와 가정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현실에 대한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주님께 기도합시다. 주님께 기도할 때,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우리 신앙의 핵심정신에 비추어서 이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 성공회 성직자들이 슬기로운 율법 학자를 넘어서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제자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황금율을 주시고,
이것을 우리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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