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1 다해 대림1주일
예레 33:14-16 / 1데살3:9-13
/ 루가 21:25-36
치유와 구원에 대한 재인식
세계성공회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 약칭: ACC)와 람베스회의(Lambeth
Conference)에서 결정한 ‘성공회 5가지
선교정신(The Five Marks of Mission)’이 있습니다.
이중 5번째 정신이 ‘창조질서를 복원하며, 지구생명의 회복과 유지에 헌신합니다(To strive to safeguard
the integrity of creation and sustain and renew the life of the earth)’입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분들은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것을 가르치는 종교 기관인데, 자연지식에 대한 전문집단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네! 어떤 면에서 그런 분들의 문제제기는 일면
타당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교회, 특별히 성직자들은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이 그 분야 전문가들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교회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노력한 성과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교회는 그리스도교 영적가치라는 측면에서 ‘물리적(physical)’
세계의 가치뿐만 아니라 ‘물리적 세계를 넘어 있는(metaphysical)’
가치까지도 염두에 둔 통합된 정신가치라는 관점에서 관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은 현실세계에선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이 발생할 경우에는 양자(兩者)의 관계가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는 몸과 정신과의 관계입니다. 평소에 신체적으로 건강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신도 건강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만일 몸이 병들거나 혹은 노쇠해서 움직이기가 곤란하게 되면, 우리의 정신도 위축되고 병약해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공황장애나 우울증, 각종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 고통이 심해지면, 우리 몸은 그에 따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습니다. 이런
이유로 건강은 단지 육(肉)뿐만 아니라 영(靈)도 해당되는 통합적 개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라틴어 ‘살루스(salus)’는
‘건강’이라는 뜻 외에도 ‘구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구원을 언급할 때, 거기에는 단지 영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이란 영과 육 모두가 건강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치유를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아픈 내 육체 낫게 해 주세요”라는 차원을 넘어서 “이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내 심령(心靈)도 회복해 주세요”라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또 다른 예는 몇 년 전 온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입니다. 사실, COVID-19는 인류를 괴롭히는 조류독감, 메르스, 사스, 광우병, 에볼라
바이러스 등과 같은 인수(人獸)공통전염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수공통전염병이란 인간과 동물이 너무 가까이 접촉할 때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감염병을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공장식 농장운영으로 지나치게 동물들의 밀도가 높아지거나, 인간이
개발영역이 확장함에 따라 동물들의 서식지가 줄어들어 인간과 접촉빈도가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생태환경을 바꾸는 정신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다들 짐작하다시피, 그것은
인간과 생태계의 건강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고, 더 근원적으로는 우리의 탐욕과 오만이라는
병든 영혼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류는 오래 전부터 이런 행동방식이 심각한 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서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였고, 결국
코로나 팬데믹까지 야기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의학기술을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하느님과 우리 자신, 그리고 지구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회복하는 치유가 필요하며, 교회는 이것을 ‘전인적 선교(holistic mission)’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관점으로 오늘 대림 첫 주일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1독서와 2독서는
다시 오실 분에 대한 기대를 언급합니다. 다만, 차이라면
구약의 예레미아서는 멸망하는 왕국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된 정치를 구현할 진정한 왕이 와서 다시 살려 주실 것을 말했다면, 신약의 데살로니카 교회에 보낸 첫째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다시 만날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 달리 표현하자면 건강한 모습으로 하느님을 보기 위해서 서로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자고 권고하십니다. 이에 비해 루가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차 닥칠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종말이 인간의 역사라는 차원을 뛰어넘는 우주적 사건임을 암시하십니다.
즉, 종말이 다가올 때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나고 지상에서는 사납게 날뛰는 바다 물결(루가 21:25)” 등의 우주적 이변이 일어나며, 이를 온 세상 사람들이 볼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세상사람들은
기절할 정도로 공포에 떨겠지만, 믿는 사람들은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 구원을 맞이하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임재하는 하느님나라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떡해야 하나요?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자연의 징표를 보고, 그 징표
너머에 있는 초자연적인 의미를 느끼라고 하십니다. 그러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선 예수님은 우리에게 “늘 깨어 기도하라(루가 21:36)”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어떤 분들은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루가 21:32)”라는 말씀을 듣고 의문이 드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을 들었던 세대가 이미 죽었으므로, 예수님이 언급하신 사건도 이미 물 건너간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직역하자면, “모든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이 세대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입니다. 여기서
‘이 세대’란 단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세대만이
아니라 직역된 내용의 문맥으로 볼 때, 종말의 전조가 나타나는 시대,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가 재림하기 까지의 기간에 속한 모든 세대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현재 우리도 이 세대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카 교회 신자들에게 한 것과 같이, 루가 복음 역시 장차 일어날 일에서 우리가 건강하지 못한 모습인 공포와 절망적인 반응이 아니라 희망과 기쁨이라는
건강한 모습으로 예수님 앞에 설 수 있게 깨어 기도할 것을 촉구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몇 년 전 우리 교회는 온 세상사람들과 더불어 코로나 팬데믹으로 커다란 고통과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것에 대해 성찰하고, 우리를 재창조하기로 결심하며, 우리를 팬데믹으로 밀어 넣은 우리의 잘못된 태도들과 지금까지 삶의 우선순위로 삼았던 것을 재조정하겠다고 결심한다면, 이것은 역으로 은총의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시련과
고통은 개인적 차원이건, 공동체 차원이건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생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그 의미를 찾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한다면 우리가 그 어려움을 이겨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첫째로 우리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우주적 창조로 형성되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기억과 믿음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거룩함으로 충만한 우주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현세에서
얽매여 있는 짐들의 무게보다도 더 큰 내적 힘을 가져다줍니다. 셋째로 우리가 시련을 겪으면서 치유를
갈구할 때, 우리는 이 싸움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영과 하느님의 말씀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위로와 도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루스(salus)라는
영육 간의 건강과 구원을 향한 투쟁 속에서 외로운 혼자가 아니며, 예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우리가
용기를 내고 건강하고 선한 영을 지닐 수 있도록 격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고통과 시련은 우리를
회개하게 하고 마침내 건강한 상태, 즉 구원을 가져다줍니다.
이제 대림 절기를 맞이하여 성공회 선교정신이 제시하는 전도와 양육,
사랑과 정의실천, 그리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위해 우리가 기도하면서 실천하는 가운데
아기 예수로 오실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길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나눠드린 실천항목들을 보시고 그 중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선택하신 다음,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으로 기도와 실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탄을 기념하는 예배 때 주님 제단
앞에 봉헌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전례예식에서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경축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 기간을 통해 내 몸과 영혼 모두가 치유되고 구원되는 은혜로운 시기가 될 것입니다.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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