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9 다해 성탄후 1주일
사무상 2:18-20, 26 / 골로 3:12-17 / 루가 2:41-52
대성당 살인사건
오래전, 신학교에 갓 입학한 저는 선배들을 따라 대학로
어느 극장에서 한 『대성당의 살인』이라는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대성당의 살인(Murder in the Cathedral)’은 영국의 유명한 작가
T.S.Eliot이 쓴 시극으로 1170년 영국 왕 헨리2세
때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암살된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베켓(Thomas Becket)에 대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그 당시 저는 단지 연극에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했을 뿐 그 역사적
의미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후, 교회사를 배우면서
토마스 베켓의 순교가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자주 인용되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왕이 무소불위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교회의 일에도 간섭하면서 자신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하였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베켓은 그러한 왕의 부당한 간섭에 대하여 교회의 독립을 지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때 생명의 위협을 느껴 프랑스에 있는 수도원으로 피신하기도 하였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주교좌가 있는 영국 캔터베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왕의 뜻이 아닌 양심과 교회의 법에 따라 치리하였습니다. 엘리엇이 쓴 ‘대성당의 살인’에 나오는 왕의 대사에 의하면, 왕은 “저 말썽장이 성직자를 내게서 없애 줄 이가 없단 말인가?”라고 고함을 쳤다고 합니다. 이에 왕의 심기를 충실히 따르는 신하들은
대성당에 매복해 들어가서 대성당 제단에 있던 베켓 주교를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불길함을 느낀 사람들이 주교에게 성당문을 잠그고 피하라고 했지만, 그는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 기꺼이 행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하고서 순교의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역사적 비극이
일어나고 난 후, 교회는 토마스 베켓을 성인(聖人)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천주교와 성공회 모두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히틀러의 나치즘으로 전
유럽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울 무렵, T.S.엘리엇은 ‘대성당의
살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독재와 전쟁의 광기 속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했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에서 성 토마스 베켓과 그의 순교를 다룬 ‘대성당의
살인’을 소개한 이유는 오늘이 성탄 후 1주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12월29일은
성 토마스 베켓의 기념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례력으로 볼 때, 12월 25일 성탄대축일이고, 다음날인 26일에는 교회의 첫번째 순교자 스테반 부제의 순교를 기념하고, 28일에는
죄 없는 아기들의 순교, 그리고 오늘 29일 토마스 베켓
주교의 순교에 이어서 마지막 날인 31일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신학자인 위클리프 사제의 순교 기념일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성탄의 기쁨 속에 내재된 비극적 사건들을 기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일련의
축일들에 담겨있는 성탄절의 또다른 의미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소년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학자들과 토론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있던 사람들은 소년 예수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 예수를 찾아 헤매다가 성전에서 그를 발견하고 책망한 부모에게 예수는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루가 2:49)”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소년 예수의 이런 모습은 좀 당돌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의 측면에서 보자면, 성전이라는 가시적 공간은 예수가 얼마나
깊이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는지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복음 중에 유일하게 예수의
소년시절 일화를 소개한 루가복음저자는 여러 일화 중 왜 성전 에피소드(episode)를 소개했을까요? 그것은 루가 복음에 나오는 하느님의 집, 즉 성전이 갖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서 여드레째 되는 날,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안고 성전으로 가서 산모의 정결례와 아기의 할례예식을 합니다. 여기서 시므온과 안나는 아기
예수를 보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하느님의 구원이 이 아기를 통해 성취될 거라고 예언합니다. 이와 같이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아기 예수는 소년 예수로 성장하여 이제 스스로 아버지의 집인 성전에서 하느님 말씀에 대해 탐구하고 토론하는 슬기로움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어렸을 적부터 하느님 성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계신 예수님은 성전이 온갖 이권으로
더럽혀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와 있는 환금상들을 쫓아내시며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 2:16)”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시편 69:9)”라는 성경말씀이 떠오를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전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신 예수님이기에 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며 한탄하셨던 것입니다. (루가 19:41-44 참조) 급기야
예수께서는 참다운 성전을 세우기 위해 십자가로 자신의 몸을 봉헌하여 새로운 계약, 새로운 성전을 세우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셨을 때, 성전에 있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는 성서의 증언은 이것을 상징적으로 계시한 사건이었습니다. (마르 15:38 참조)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협조자로
보내줄 때까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시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세상에 하느님의 영적 성전인 교회를 확장시키셨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뜻을 이어받아서 스테반으로부터 토마스 베켓, 위클리프 그리고 오늘날 독일의 본 회퍼 목사,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 그리고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 진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분을 추종한 제자들에 이르기까지
빛을 없애 버리려고 획책하는 어둠의 세력들 간의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성탄절기에
있는 이러한 일련의 축일과 기념일은 우리에게 성탄의 기쁨을 누리는 동시에 그 기쁨을 억누르려는 어둠의 세력들이 있음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요한 1:5)”라는 성서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예부터 지금까지 횡행하는 그러한 어둠의 세력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이에 대하여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사이 교회에 있는 신도들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고,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권고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부한 생명력을 얻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은 성탄의 기쁨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바로 그러한 말씀이 선포되고, 실행되는 생명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러한 교회의 참 모습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러한 모습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때로는 헤로데 왕이 무고한 아기들을 죽이고, 폭군의 무리가 교회에 난입해
들어와 토마스 베켓 주교를 살해하듯이 강압적인 힘으로 교회의 생명력을 없애려고도 하고, 때로는 교회
내부에서 가라지 같은 성직자와 신자들을 심어서 교회의 참된 정신을 흐리게 하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느님 나라가 온전히 실현되는 그 날까지 이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힘은 바로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이 세상의 가치와 대척점을 이루는 ‘대조사회(Contrastgesellschaft)’가
되어야 합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신 말씀이 우리와 똑 같은 육신으로 오신 것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성탄절기에 우리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 그저 우리에게 좋은 말씀만 남기신 분이 아니라, 그 사랑의 말씀을
철저히 살아가시다가 십자가에 달리신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길을 우리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어둠을 이기는 빛의 자녀가 가야 할 길입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몸소 보이기 시작했음을 선포한 날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온전한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 진리와 사랑을 증거해야 합니다. 토마스 베켓 주교처럼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당신 성전으로 불러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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