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2 주님의 세례 축일 이사 43:1-7 / 사도8:12-17 / 루가 3:15-17, 21-22 중생(重生)과사명(使命)으로서의 세례 성공회 강화성당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 성당입니다. 대한성공회의유일한 국가등록문화재인 강화성당은 우리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 전체로 봤을 때도 매우 중요한 기독교 문화재입니다. 이 성당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긴 성물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강화도 지역에 있는 화강암으로 제작된 세례대입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당시 기독교 복음이 갓 전래된 강화도에는 신자들이 기독교 성물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조선에 있는 중국인석공들을 고용해서 세례대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중국에서 교회건축과 성물을 만든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대 앞면에는 ‘중생지천(重生之泉)’, 즉 ‘다시태어나는 샘’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세례대가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 건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뒷면에는 ‘수기세심거악작선(修己洗心去惡作善)’이란 8글자가있는데, 그것은 ‘자기를 수양하고, 마음을 닦고, 악을 멀리하며, 선을행하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세례를 받고 다시 태어난 자가 살아가야 할 윤리적 지침이라고 하겠습니다. 강화성당관할사제로 있을 때 저는 125년전 제작된 돌 세례대를 보고 방문한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신앙의선조들이 세례를 어떻게 이해했으며, 세례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된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몇개의 한자(漢字)로 명쾌하게 설명한 것에 감탄했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세례 축일입니다. 전례력으로 보면, 성탄절기가 끝나고 오늘부터 재의 수요일까지 교회는 짧은 연중주간을 보냅니다.지난 주일 공현 축일이 동방박사로 상징되는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이 이 아기를 온 세상의 구세주라고 보여주셨다면, 오늘 세례 축일은 이 아기가 장성해서 이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말과 행동으로 계시하기 위한 첫 관문인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루가 복음서를 따라 예수님의 행적을 듣는 다(C)해라서 마태오, 마르코복음이 보는 관점과는 좀 다른 루가 복음저자만의예수님 세례 이해를 접합니다. 그 첫번째 특징은 루가는 예수님이 누구에게서 세례받은지를 중요하게 여기지않았다는 점입니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루가는 오늘 복음 전반부에서는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푼 사실은 언급하고 있지만, 오늘 복음 중간에 생략한 부분에는 그가 헤로데왕에게 붙잡혀 옥에 갇혔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오늘 들은 복음 후반부에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는 사람들 틈에 끼어 세례를 받았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루가 복음의 논리에 따르자면,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 아니라당시 세례운동을 전개하던 어떤 사람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뉘앙스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특징은마태오와 마르코 복음 모두 예수님이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내려왔다고 전한데 반해, 루가복음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기도하시자 성령이 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차이점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이렇게 질문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사실(facts)인가요? 만일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이 사실이라면 루가 복음은 허구인가요?” 이러한현대인들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2000년 전 이스라엘 변방에서 일어난 이사건에 대하여 오늘날처럼 신문기자가 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옆에서 취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 있은 후, 빠르면 20년 늦게는 100년에 이르기까지 신약성서 자료가 수집되고 집필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각 복음저자들은 예수 사건이란 큰 틀은 일치하지만, 그세세한 내용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교회공동체의 상황에 맞게 강조점이 조금씩 달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루가가 속한 교회공동체는 예수님의 세례라는 사건에서어떠한 면을 강조했던 걸까요? 루가는 예수님이 누구로부터 세례를 받았는지, 그리고 세례 받을 때 온 몸을 완전히 침수했는지 아니면 머리에만 물을 부었는지 하는 그런 방식에 관심이 있는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세례 받고 ‘기도’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세례라는 외형적 의식(ceremony)보다는 기도로 상징되는 내적태도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이런면에서 볼 때, 마태오와 마르코가 예수께서 물에서 나오시는 세례예식에서 성령이 임하고 성부 하느님의음성이 들렸다고 증언했다면, 루가는 예수께서 세례예식을 마치고 기도하실 때 비로소 성령이 임하고 하느님의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기도를 강조하는 것은 루가 복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루가 복음 저자가 속한 공동체가 기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루가가 쓴 또다른 책인 사도행전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예컨대, 제자들이 성령강림이 있기 전에 한 곳에 모여 기도했다는 점, 그리고제자들이 배신한 가롯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뽑을 때, 그리고 부제들을 뽑을 때, 또한 바울과 바르나바를 파송할 때 기도했다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루가는 초대교회가 이렇게 기도했던 것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스승이신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기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이제 세례 받고 기도하신 예수님께 하느님은 어떻게 하셨는지를 봅시다. 우선 ‘홀연히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다’고 시각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청각적으로 증언합니다. 이것은4 복음서 모두 아주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예수님세례의 정점이자, 아버지와 아들 간의 일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특별히루가복음의 경우, 이러한 선언이 있고 나서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마태오 복음의 족보와 다른 점은 예수님을 단지 이스라엘 혈통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첫 인류인아담으로부터 내려온 분으로서 온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예수께서 세례받으셨을 때,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루가는 단지 예수님이 그러한 분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거기에는또한 예수님의 사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사명이란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란 말씀안에 들어있습니다. 사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란 말은 이사야서 42장 1절,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란 표현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관점으로 이해하자면 사명, 특별히 십자가의 사명을 예언한 책으로 읽히는 이사야서의 이 표현은 단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하느님이일정한 사명을 주시려고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는 성부 하느님과 하나되어 성부의사명을 완수할 자임을 선언한 거룩한 의식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설교 서두에서 저는 강화성당 세례대에 있는 글자들을 소개했습니다. 그글자는 신앙의 선조들이 세례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세례를 중생, 다시 태어남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신자는 이전의낡은 삶의 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살아가기 위해서 ‘수기세심거악작선(修己洗心去惡作善)’이라는 그리스도교 영성훈련이자 윤리실천을 하겠다고다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루가복음저자는 예수님의 세례를 전하면서 이 분이 단지 세례라는 의식에 참여하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성부 하느님과 일치되어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으셨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이러한 모범을 따라 세례를 줄 때, 사도들을파송할 때, 그리고 교회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마다 기도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의 세례 축일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주님과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온 전통으로부터, 특별히 대한성공회 초기 신앙선조들이 이해하고 고백한 이러한 믿음과 기도와 삶의 자세로부터 세례의 참된 정신을다시한번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주님의 사명을 더 선명히 깨달아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내 사랑하는아들과 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과 딸”이란 말씀을 받을것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선언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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