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30 다해 사순4주일 여호 5:9-12 / 2고린
5:16-21 / 루가 15:1-3, 11-32 아버지와 두 아들 전통적으로 교회는 대림3주일과 사순4주일을 ‘장미주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제는 분홍색 영대와 제의를 착용합니다. 보통
대림절과 사순절에 보라색 영대와 제의를 입음으로써 속죄와 회개의 시간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지만, 오늘처럼
대림과 사순 중간에 분홍색 제의를 입음으로써 기쁨의 시간이 곧 도래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대림
장미주일은 필립비서에 나오는 4장4절의 말씀,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Gaudate in Domino semper)”에 근거하여 '기뻐하라 주일(Gaudate
Sunday)'로 부르고, 사순4주일은 이사야서 66장 10절 말씀, “예루살렘아, 즐거워하라”에 근거하여 '즐거워하라 주일(Laetare Sunday)'로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아마도 신약성경에 나오는 비유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루가 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었다가 다시 찾은
이야기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그 시리즈란 루가 복음 15장 1절부터 7절에 있는 잃었던 양 한 마리의 비유, 8절부터 10절에 있는 잃었던 은전의 비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들은 잃었던 아들의 비유입니다. 이 세가지 비유의 주제는 모두 ‘잃었다가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말씀은
장미주일에 딱 어울리는 복음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세 명의 중요인물이 나옵니다. 전반부에는
작은 아들이 등장하고, 후반부에는 큰 아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전반부에도 언급되지만, 후반부에 더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이 이야기는 두 아들이 있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집안에 하인도 거느릴 정도로 보아 아마도 그는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재산’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헬라어 성경 원문에는 ‘우시아(οὐσία)’입니다. 우시아란 말은 재산, 부라는
뜻도 있지만, 철학에선 ‘본질(essence)’이란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아버지에게 재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한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본질이자 가문의 기초가 되는 핵심을
달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의 상속법에 따르자면,
생전에 유산을 분배해 소유권이 아들에게 넘어갔더라도 처분은 아버지가 죽은 이후나 가능했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작은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받자 마자 아버지가 손을 쓸 수 없는 먼 곳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약삭빠른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곳에서 재산을
흥청망청 탕진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지방에 심한 기근이 들어서 그는 극심한 곤궁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고장에 사는 사람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돼지치는 일을 하였고,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돼지가 먹는 것이라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에게 있어서 돼지는 불결한 짐승이었기에 돼지를 치고, 돼지가 먹는 것을 먹었다는 것은 그가 절망의
나락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를 떠난 작은 아들이 이방인에게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성경은 작은 아들이 그제야 제 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제 정신이 들다’를 직역하면 ‘자신에게로 돌아오다’입니다. 그러므로
제 정신이 들었다는 것은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회개한 그의 첫 반응은 아버지와 화해를 구하는 그의 첫번째
독백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는 삶을 살다가 뒤늦게 아버지가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세계가 주는
소중함을 깨닫고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더 이상 아들로서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죄 때문에 아들이 되지 못하고 품팔이꾼의 지위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품팔이꾼을 해서라도 아버지의 ‘우시아’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렸을지 모릅니다. 이처럼 몸은 멀리 있어서도 아버지의 시선은 항상 아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피골이 상접한 거지같은 몰골로 나타난 아들이 전에 남의 집 종살이 때 했던 그 독백을 아버지한테
고백하기도 전에 달려와서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사실,
아버지는 이미 아들의 죄를 용서하고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는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십니다. 품팔이가 아니라 아들의 신분과 권리를 다시 찾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의 잔치를 벌입니다. 이제 비유의 후반부를 보겠습니다.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이
돌아와 아버지가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을 때 밭에 나가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아버지의
명을 따라 열심히 일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데 집에서 음악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가 들리자 어떻게 된 건지 하인들에게 알아보게 하고 그에게서 그 일의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그리고
큰 아들은 불같이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큰 아들의 ‘화’는 아버지의 ‘기쁨’과
집안의 ‘즐거움’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큰 아들의 화를 달래러 옵니다. 기뻐하는 아버지에게
큰 아들은 항변합니다. 그는 망나니 같은 동생을 아버지가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너무 대대적으로, 너무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형은 그런 동생을 더 이상 자신의 아우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의 감정이 아버지에게 내뱉은 말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린 동생이 돌아오니까(루가 15: 30)”라고 되어있지만, 정확하게는 “재산을 다 날린 ‘아버지의
저 아들’이 돌아오니까”입니다. 이 말은 돌아온 작은 아들이 설령 아버지의 아들일
수는 있어도, 내 아우는 될 수 없다는 감정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큰 아들에 대해서 아버지는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왔으니(루가 15:32)”라고 하시며 너희는 누가 뭐라해도 형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내 것이 모두 네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큰 아들이 결코 종이 아니라 아들, 그것도
당당히 상속권을 가진 맏아들임을 밝히십니다. 이는 작은 아들이 돌아왔지만 큰 아들의 권리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 표현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비유 이야기는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느끼고 깨닫게 해 주는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특별히 이 이야기는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생각과 주장이 갈려서 서로가 반목하는
작금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는데 있어서 소중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버지의 재산을 위해
성실히 일하고 있는 큰 아들이고, 상대방은 아버지의 재산을 축내는 존재 그래서 보기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
오는 사람들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큰 아들처럼 “넌
내 동생도 아니야!”라고 성난 소리로 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한 형제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약삭빠르고 주색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탕자 같은 작은 아들이나, 겉으로 보기엔 열심이지만 속으로는 불만으로 가득차고 그래서 점점 마음이 닫혀져 버린 큰 아들이나 어쩌면 모두
품에 안아야 할 사랑하는 아버지의 아들들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때론 애타는 심정으로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때론 화가 난 아들에게 ‘내 것이 모두
네 것이다’라고 하시며 자신을 전부 내 주십니다. 우리가
그러한 하느님 아버지의 한량없는 사랑과 자비를 깊이 느끼고 닮으려고 노력한다면, 오늘날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는 증오와 배척의 감정들을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러한 인자하신 하느님을 믿고, 우리가
비록 서로 다르고 그래서 때론 밉더라도 “너희는 한 형제자매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회개와 용서로서 하느님나라의 기쁨을 되찾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구원의 잔치로 초대해 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