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7 다해 부활2주일
사도 5:27-32 / 묵시
1:4-8 / 요한 20:19-31
도마, 토마스 모어 그리고 도봉교회
전통적으로 교회는 자신의 수호성인 이름을 교회이름으로 삼고 있습니다.
예컨대, 서울주교좌 성당은 성 메리와 성 니콜라 서울 성공회 주교좌성당(Seoul Anglican Cathedral of St. Mary & St. Nicholas)이고, 강화성당은 성 베드로와 성 바우로 성공회성당(The Anglican
Church of St. Peter & St. Paul)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름을
통하여 그 교회공동체가 세워질 때 꿈꿨던 비전과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년 여름 도봉교회에 부임한 저는 몇몇 분으로부터 우리 교회 수호성인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도마(Thomas)가 아니라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주보에는 성 도마(St.
Thomas)로 되어있고, 대부분 교인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이에 대하여 궁금해하던 차에, 『도봉교회 창립 20주년 기념집』과 『도봉교회 창립 40주년 기념집』을 읽으면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40주년 기념집』에 이대용 주교님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김진만 교수님 댁을 찾아간 저희들이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우리 교회가 ‘도마’를
기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까? 우리 교회에 소위 ‘지성인들’이 많이 모이길 바라셔서 의심 많던 사도 도마의 이름을 택하셨습니까?” 김
교수님은 이 질문에 대단히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답하셨습니다. “물론 사도 도마가 훌륭한 분이시지요. 하지만 도마라는 이름을 택한 것은 사도 도마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니라, ‘토마스
모어’의 신앙의 본을 따르자고 한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설립 초창기에 우리 교회 영문명이 ‘성 토마스
모어 교회(St. Thomas More Church)’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토마스 모어는 어떤 분인가요? 아시다시피, 영국 왕 헨리8세(Henry Ⅷ)가
교황청에 결혼 무효소송을 제기할 무렵, 그는 친구인 토마스 모어를 대법관에 임명하였습니다. 헨리8세는 당시 유럽의 강대국인 스페인과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하여
교황의 관면을 받고, 형의 미망인인 캐서린(Catherine)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위를 이을 후계자 아들이 없어서 초초해하던 헨리는 왕비의 시녀 앤 볼린(Anne Boleyn)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형수 캐서린과의 혼인을
무효화하기 위해 법적다툼을 벌였습니다. 당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 등으로 인해 교황청이 헨리의 요청을
거부하자, 헨리는 영국에 있는 교회의 치리권을 국왕에게 귀속시킬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대법관 토마스 모어는 ‘세속인이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는 자신의 신념에 근거하여 헨리8세의 수장령(Acts of Supremacy)을 거부하였고, 결국 단두대에 올라
“나는 왕의 충실한 신하이지만, 하느님의 신하가 먼저였기에
죽는다(I die the King’s good servant, but God’s first)”라는 말을
남기고 처형당했습니다. 천주교는 2000년에 토마스 모어를
정치인과 공직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고, 성공회 역시 7월 6일에 그를 순교자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 교회 수호성인으로 알고 있던 사도 도마는 어떤 분인가요? 예수님의 12 사도 중 한 분인 도마는 요한복음에 주로 나옵니다. ‘쌍둥이라고 불리던 도마’(요한
11:16, 20:24 참조)는 오늘 복음에서 의심 많은 사람의 대명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20:25)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시어 그에게
십자가 상처를 보여 주시자 그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20:28)이라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처럼 도마는 단지 의심하고
주저하는 인물이 아니라, 한번 믿게 되자 끝까지 믿음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전승에 의하면, 도마는 복음을 전하러 인도까지 갔고 거기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의 무덤은 현재 인도 첸나이(Chennai) 지방
마일라푸르(Mylapore)에 있는 성 토마스 성당(Basilica
of St. Thomas)에 있습니다. 이 성당은 베드로 사도가 묻혀 있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야고보 사도가 묻혀 있는 스페인 산티아고의 성 야고보 성당과 더불어 현존하는 3곳의 사도무덤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한번 신앙을 갖게 되자 끝까지
충성한 도마의 성격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직전, 예수님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도마는
“우리도 함께 가서 그와 생사를 같이합시다”(요한11:16)라고 말할 정도로 충성심과 결단력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 예복실에는 1973년 1월 14일 당시 서울교구장 이천환(李天煥, 1922-2010) 주교님이 발행한 <예전실험허가>증서가 걸려있습니다. 이 증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교구 교리학원 부속 성도마성당에서는 교리학원장의 책임아래 예전에 관한
일반적인 실험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
매 주일 전례를 집전하기 위해 예복을 입고 기다리는 동안, 저는
이 증서를 봅니다. 그때마다 우리 교회 역사가 시작된 그 시대를 회고해 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두 분을 회상해 봅니다. 한 분은 오늘날 서울교구
선교교육국의 前身인 서울교구 교리학원 원장이신 김진만(金鎭萬,
1926-2013) 교수님이고, 다른 한 분은 예전실험허가 증서를 주신 이천환 주교님입니다. 신학대학원 시절 김진만 교수님으로부터 <성공회신학>강의를 들었던 저는 이 분이 젊었을 때,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비판적인 분이었다는 말씀을 듣고 도마 같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김진만 교수님은 영국유학시절
알게 된 이천환 주교님으로부터 1968년 세례를 받은 후,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반목하던 교단 간 갈등을 종식하고 대화와
상호이해의 분위기가 고조되던 세계 기독교 흐름에 발맞춰서 한국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고, 수동적인
평신도들을 적극적인 주님의 제자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교리학원을 세웠습니다. 참으로 사도 도마의 충성과
결단력 그리고 토마스 모어와 같은 지성과 원칙에 충실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신도가 아무리 진취적으로
행동하려고 해도, 교도권의 중심인 주교의 호응이 없으면 일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우리 교회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대한성공회 자립준비를 위해 선발되어 영국에서 유학하셨던 이천환 주교님은 급변하는
세계교회의 흐름을 알고 계셨고, 당시 제2차바티칸 공의회(1962년~1965년)정신을
한국천주교에 도입하려고 했던 김수환 추기경님과도 뜻이 맞아서 한국교회 역사상 최초의 교회일치운동의 첫 열매인 『공동번역』성서를 발행하는데 산파역할을
하셨습니다. 이천환 주교님의 이러한 일에 김진만 교수께서는 공동번역위원회에 참여하면서 함께 했고, 동시에 한자어가 많은 오래된 우리 예전문을 현대감각에 맞게 수정하고, 그것을
실험할 학교와 교회를 염두에 두고 교리학원과 우리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런 시대적 맥락과 김진만 교수님의
생애로 볼 때, 천주교와 성공회가 모두 기념하는 교회일치의 상징인 토마스 모어를 우리 교회 수호성인으로
삼은 것은 의미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복음에 등장한
사도 도마의 특징을 김진만 교수의 회심과 연결시켜 본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의심을 버리고 신앙을
고백하고 끝까지 충성한 사도 도마처럼 김진만 교수의 신앙과 삶도 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전례 때 낭독하는 <공동번역> 성서, 그리고 우리가 공동으로 기도할 때 사용하는 현대어로
개정된 <성공회기도서>를 비롯하여 교파를 불문하고
신앙과 인문학 강의를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동시에 성령세미나를 통해 신앙의 열정을 추구하는 등
실로 우리 도봉교회는 시대의 흐름과 신앙의 본질, 그리고 지성과 열정 간에 균형 있는 신앙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상과 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신앙을 고백한 사도 도마와 신앙의 원칙에 충실했던 토마스
모어를 모범으로 삼고 살아온 우리 교회가 품었던 비전과 발자취를 회고해 보았습니다.
교회설립 52주년인 올해 부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는 과거를
회고하고 미래를 전망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올해 우리 교회는 6월말부터
알파코스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알파코스를 통해 함께 먹고, 신앙의
경험과 증언을 보고, 듣고, 나누면서 성령의 인도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신앙의 증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변화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에
충만한 기쁨과 희망으로 변화되길 희망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도봉교회가 세워질 때 가졌던 그 비전과
열정이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 재도약하길 소망해 봅니다.
십자가의 상처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한 차원 깊게 인도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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