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더그 칼훈은 헬스광이어서 지난 12년 동안 꾸준히 헬스클럽에 다녔다. 그 기간 내내 그는 사람들이 우정 어린 마음으로 서로 다가가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었다.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허다했다. 다들 목적은 오로지 한 가지, 경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곳 분위기는 라켓볼을 치든 테니스를 치든 온통 상대방을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차에 더그는 아주 심하게 다쳐서 자주 가던 헬스클럽 대신 신체적인 상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재활센터를 다니게 되었다. 재활센터를 다닌 지 이틀이 되자 모든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알았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뒤질까 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그를 격려해 주었다. 그가 들은 것은 전부 “이봐, 잘했어!” 혹은 “계속해!”와 같은 말들이었다. 더그가 조금씩 작은 성공을 이루고 향상된 점들이 기록될 때마다 사람들은 일일이 갈채를 보내 주었다.
헬스클럽에는 완벽하지 않으면 발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옆 사람은 오로지 경쟁자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었고, 실패나 약점은 경멸당했다. 하지만 재활센터에서는, 몸 어디가 부러져서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그곳에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었고, 그렇게 아픈 건 흉이 아니었다.
그 대신 거기서 강조하는 것은 “제대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걸음걸음을 함께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진전이 있기만 하면, 그건 축하할 만한 일이지요!”였다. 그러고 나서 더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두 장소 중에서 교회는 어디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하나님의 긍휼은 고집스러운 자녀들일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끈질긴 신실함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결함과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온유한 긍휼은 풍성하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완벽하신 하나님이 여전히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긍휼을 베푸실진대, 죄인이요 끊임없는 용서를 필요로 하는 우리가 어찌 자비와 긍휼을 베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