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나님 사랑의 최고봉이 드러난 때는 우리를 창조하기로 작정하셨을 때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 많고 사랑스럽지 못할 때였다. 바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6~8). 하나님이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의 비밀을 완전히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더기 인형이라는 사실을 아신다. 선지자 이사야는 수천 년 전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 64:6). 우리는 모두 누더기가 되었다. 죄와 죄책에 의해 너무나 큰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인류를 버리는 일만이 유일하게 남겨진 현명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인류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없으셨다. 그래서 회복 수술을 계획하셨다. 하나님은 더러운 옷을 바꿀 수 있는 곳으로, 사랑의 대상을 사랑스럽지 못한 상태로 남겨 두는 죄와 죄책을 제거할 수 있는 곳으로 인류를 인도하고자 하셨다. 그런 장소가 정말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십자가가 있다. |
존 오트버그 <누더기 하나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