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정PD의 글이다.
성공회 이정호 신부님을 통해 그저께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공장이 전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 아침 이대성 신부님께 급히 안부를 여쭸는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고 김성수 주교님께서도 괜찮으시다며 안심시켜 주셨다. 어디나 그러하지만 정말이지 그곳은 화마가 덮쳐서는 안될 곳이다. 너무나 안타깝다.
우리마을이 어떤 곳인지, 김성수 주교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해를 돕고자 2년 전에 주교님을 인터뷰하고 <강화 지오그래피>에 썼던 글 일부를 옮긴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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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자들.”
2000년 3월에 문을 연 ‘우리마을’은 김성수 주교가 유산으로 받은 고향 땅 3,000평을 기증해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마을’은 성베드로학교 졸업생 뿐 아니라 성인이 된 후 갈 곳 없는 장애성인들의 자립생활과 일터를 위해 설립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3급 지적장애인들이 일하고 생활하는 직업재활시설이다. 설립 목표는 장애성인들이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마을’을 운영하는 실무원장은 따로 있으며 그는 한 마을의 장이란 의미로 ‘촌장’이라는 직함으로 ‘우리마을’의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시는 큰 울타리가 되어주시고 있다. 노후에 장애인과 함께 살고 싶어했던 꿈을 위해 사위가 ‘우리마을’ 옆에 아담한 집을 지어주었고, 2010년부터 그곳에서 부인과 함께 생활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우리마을’에 출근하고 있다.
‘우리마을’이 자리를 잡는 데에는 각계각층의 따뜻한 마음들이 김주교에게 힘이 되었다. 장애학생들의 부모는 ‘우리 아이가 졸업하면 어디로 가느냐’며 김주교에게 하소연했다. 궁리 끝에 그는 교육부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손학규 당시 복지부 장관(1996.11~1997.8 재임)을 찾아갔다.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가 필요하다. 내 선친이 갖고 있던 강화도 땅을 내놓겠다.’며 도움을 호소했는데 손 장관은 의미있는 일이라며 20억원을 지원해 주었다.
가족도 조력자가 되었다. 선친이 가족들에게 물려준 온수리 땅 중 김주교의 지분인 3천평을 내어놓기로 마음먹고 자식들과 동생 등 가족들과 의논할 때 모두 기쁜 마음으로 지지해 주었다. 그도 가진 땅의 십분의 일을 내어 놓았지만 온수리교회 김용국 신부(간석교회 시무)의 부친인 김갑수(요나) 교우 역시 자신의 땅 십일조를 하느님께 바쳐 뜻을 모았다. 또 무엇보다 일반인들이 꺼려할 법한 시설이 들어서는데도 온수리 마을주민이 반대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내가 장애우들을 위해 땅을 기증했다고 하지만 그 땅은 부모가 물려준 것에 불과하다. 내 옆 동네에 대안학교를 만든 인사는 학교가 자리를 잡자 이사장직을 포함해 모든 권리를 내놓고 떠났다. 그런데 나는 이 마을을 떠나면 늙은 나를 누가 보살펴 줄까 걱정돼 못 떠나고 있다. 하느님을 믿고 떠나야 하는데 용기가 없다. 고개 숙여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여러분 때문에 살아갑니다. 더 못난이가 되겠습니다.’라고 말이다.”(2013.12.15.중앙선데이)
“나를 매일 감동시키는 그들은, 서로를 가슴으로 껴안는 우리는, 정말로 최고다.”
우리마을이 생긴 7년부터 선생들은 자립을 꿈꾸기 시작했다. 국가 지원금은 우리마을보다 못한 곳에 나누고, 건강한 사람들만 자꾸 해줄 게 아니라 장애인들이 자립을 해서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이다. 그래서 콩나물을 시작했다. 콩나물 시작하기 전에 버섯, 제빵, 수경제배⁶도 해봤는데 역시 콩나물이 최고였다.
우리마을의 평균 연령은 35세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쉰이 넘은 분도 있다.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에는 깨끗한 작업복에 모자를 쓴 장애인들이 잘 키운 콩나물을 큰 소쿠리에 담아 생협 판매용 비닐봉투에 담는다. 이렇게 매일 매일 생산되어 출하되는 국산 무공해 콩나물이 하루에 2톤이 훌쩍 넘는다. 대부분이 생협과 풀무원으로 나가고 있다. 참 ‘고마운 고객’이다. 풀무원과는 2011년부터 ‘콩나물 생산 위탁 및 납품’에 관한 MOU를 체결하였다. 현실적인 여건 상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일 수 없던 기업과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일할 수 없던 장애인들이 간접고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모델로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모범사례가 된 것이다.
그는 말한다. “콩나물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콩나물은 짧고 휘어진 것이 맛이 좋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조금 모자라고 어딘가 휘어진, 그러나 마음만은 한없이 순수한 이들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들이라 여겨집니다.”
김주교와 장애인들(친구들)이 함께 외치는 구호가 있다. “우리는 최고다!” 세상에서 위축돼 살지 않게 하려고 할아버지 촌장님 김성수 주교가 생각해낸 것이다. 김주교를 웃고 울린 일화가 있다. 우리마을의 한 친구가 첫 월급으로 25만원을 받아 어머니께 속옷을 선물했는데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오자 그 어머니가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장애인에게 보조금을 주는 대신 일자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생각이다. 또한 2013년에는 장애인 정책을 위해 교육부와 복지부가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장애인 사업은 복지부, 교육부에서 따로 하므로 부처 간의 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과 인간을 대하는 것이 종교라고 말한다. 장애인들 중 특히 정신지체장애인들은 일반인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들도 하나의 인격체로써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지론이다.
“이렇게 행복한데도 나는 자주 눈물이 납니다. 어릴 적 별명이 울보였던 내가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치고 있으니,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참으로 명언입니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던 친구가 어느 날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줄 때, 24시간 내내 우리 친구들을 보살피면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 직원들을 볼 때, 고맙고 행복해서 코끝이 찡합니다.(2012.10월호, 사랑의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