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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소개 및 예배 안내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입니다.

성공회 대소원교회는 1924년 설립되어 90여년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지역을 섬겨 온 교회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고, 지역이 어려울 때는 울타리를 열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으나 당시 아름다운 한옥을 구입하여 성당으로 삼았으며, 1980년대까지 한옥성당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선교 초기에는 관할사제가 상주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평신도들에 의해 교회가 지켜져 내려왔습니다. 첫 사제도 평신도 대표가 신학교육을 받고 자급사제가 되었습니다.
 
전례와 찬양이 있는 교회입니다.

성공회 대소원교회는 아름다운 전례가 있고, 더불어 찬양이 있는 교회입니다. 주일마다 감사성찬례(성만찬) 예배가 드려지며, 아름다운 전례예식문에 따른 정갈하고 정제된 예배가 드려집니다. 또한 매일 드려지는 성무일과는 삶과 신앙을 이어줍니다.
동시에 복음성가를 즐겨 부르는 교회이고, 악기사용에 있어서도 열려있는 교회입니다. 경건과 열정과 즐거움은 신앙생활의 선물입니다.
 
교제와 치유가 있는 교회입니다.

구역모임, 성경공부모임, 중보기도모임을 통해서 신자들의 교제를 나누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별세자 추모성찬례, 병자 심방 등 아픔이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예배(감사성찬례) 안내
집회 일시 장소 비고
주일 감사성찬례
주일오전 10:30
본당  
아침 기도 평일 새벽 5시 본당  
찬양 저녁 기도 수요일 저녁 7시 본당  
중보 기도 모임 화요일 오후 1시(교육관) 본당  
구역장 / 인도자 교육 화요일 오전 10시 -  
구역 기도 구역별 -  
• 예배 시작 전에 미리 입장하시어 기도와 묵상으로 경건하게 예배를 준비하여 주십시오



9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공회 대소원 교회 약사

대한성공회 대소원 교회는 1924년 성 베드로 교회로 문을 열었다. 영국성공회로부터 파송 받은 고요한(Charles John Corfe 1843-1921) 주교가 1890년 9월 인천과 강화도에서 조선 선교를 시작한지 약 30년 후다. 성공회는 강화도에서 시작, 40리 간격으로 교회를 짓는 방식으로 포교했다. 그러한 선교 물결이 청주와 음성을 거쳐 대소원까지 온 것이다. 대소원교회는 초창기에는 음성 교회의 선교 교회였다. 그 후 충주 교회의 선교 교회로 있다가 1988년 본 교회로 승격했다.

대한성공회 대소원교회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1985년 이류면 대소리 166번지 그 자리에 현재의 성당을 새로 건축하고 축성을 받았다. 그 후 1988년까지 3동의 건물이 들어섰다. 전체적으로 대지 560평에 성당, 사제관, 교육관이 있다.

역대 부임한 주요 성직자는 다음과 같다. 이의상(요셉) 신부, 이영숙(클라라) 전도사, 정세영(베드로) 신부, 홍성만(익나시오) 신부, 김인배(요한) 신부, 권희연(미카엘) 신부, 김규식(루가) 신부, 강덕창(어거스틴) 신부, 조용환(미카엘) 신부, 신은정(카타리나) 신부. 현재 대소원교회는 국충국(아모스) 신부가 시무하고 있다.

대한성공회 대소원교회는 1924년 청주한씨 고택의 대청마루 등을 인수해 목회 장소로 사용했다. 그리고 1930년 2월 7일 대소원보통학교 학생과 성공회 대소원교회 문화소년단원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들 젊은 청소년들은 성공회 대소원교회 사택에 모여 습자지로 태극기를 만들어 대소원 장터에서 저항운동을 벌였다.

이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석한 젊은이는 이상열, 유신득, 김상쾌와 황준길(黃俊吉・17), 성낙일(成樂一・19), 조태국(趙泰國・16), 임병학(林炳學・21), 김병수(金秉壽・18), 오준학(吳俊學・19), 정만형(鄭萬亨・17), 도선봉(都先鳳・17), 박운양(朴雲陽・14), 박기현(朴基鉉・14) 등이다. 이들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수탈, 민족차별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그 결과 약 80명의 학생들이 지서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고, 15명의 학생은 충주경찰서에 구속되어 큰 고초를 겪었다. 현재 대소원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비석이 대소원초등학교 앞에 세워져 있다.


1939년에는 이 미카엘 전도사와 교민들이 이류면사무소로 사용되었던 기와가옥을 매입했다. 그리고 10월22일 휠레트(George Hewlett; 유신덕) 신부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휠레트 신부는 당시 성공회 음성교회의 신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후 담당 사제가 없었기 때문에 김동식(콜롬바) 신자회장이 주일 조도와 수요일 만도를 인도하며 교회를 관리했다. 당시 교회를 둘러싸고 5가구가 있어, 이들이 교회의 신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60년대 70년대 대소원 교회 신자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노정빈(Josephine Roberts 1921-1998) 선교사를 기억한다. 노정빈 여사는 1959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성공회 어머니연합회 간사, 사회사업가로 봉사를 했다. 대소원 교회에서도 의료봉사, 식생활 개선, 구호물자 지원 등을 통해 선교활동과 함께 봉사활동을 했다.

대한성공회 대소원교회는 1972년 남한강 홍수 피해 시 대피소와 피난소로 큰 역할을 했다. 8월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간 서울경기, 충청, 강원 지방에 450mm 내외의 집중 호우가 쏟아졌고, 남한강 수계의 시군읍면이 대홍수를 겪게 되었다. 당시 요도천변에 있던 대소원에도 물이 넘쳐, 마을 사람들이 성공회 대소원 교회로 피신했고, 이곳에서 며칠 동안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 받았다.

1980년대 들어 탁아소와 어린이집을 설립하도록 권유를 받았으나 인원과 자금 부족으로 일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2002년에 교육관을 지을 수 있었고, 이곳에서는 복지, 나눔과 봉사, 장학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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