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짝퉁(산자이)을 위한 변명
작성일 : 2013-05-02       클릭 : 855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모조품을 한국에선 ‘짝퉁’이라고 부릅니다. ‘짝퉁’이란 말 속엔 원조(元祖)가 아닌 아류에 불과하다는 일종의 얕잡아 보는 의미가 강하게 풍기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만큼 ‘원조’, ‘오리지널’을 병적으로 집착하는 곳도 드문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식당간판을 보면 ‘원조000’, ‘정통원조000’, ‘오리지널 원조000’ 등. 서로가 자신이 진짜요, 정통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일찍이 단채 신채호 선생은 『낭객의 신년만필』에서 “우리 조선사람은 매양 이해(利害)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여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라고 한탄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오리지널’이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다는 깊은 ‘열등감’이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에선 모조품을 ‘짝퉁’이라고 부른다면 중국에선 ‘산자이(山寨)’라고 부릅니다. 우리 발음으로 하면 ‘산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의 유래가 참 재미있습니다. ‘산채’라는 말은 무협지나 고전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말입니다. 예컨대 ‘홍길동전’에 나오는 활빈당이 머무르는 산채, 무림의 고수들과 그 추종자들이 있는 산채 등등.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수호지(水滸誌)’에 108명의 영웅호걸의 소굴, ‘양산박(梁山泊)’이라고 하겠습니다. 송나라 시대 부패한 관료들에 항거한 민초들의 활동을 바탕으로 한 ‘수호지’는 지금의 산동성에 있는 양산박을 배경으로 한 중국의 대표적인 고대소설입니다. 기존 지배집단에서 보자면 ‘산자이’란 ‘산적들의 소굴’을 뜻하지만, 그곳의 도둑은 못된 악당보다는 양산박의 의협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산적이란 중국인에게 있어서 남이 아닌 바로 자신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농민들은 폭정을 참지 못하고 도망간 곳이 산채(산자이)이며, 그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인물이 나왔습니다.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 그리고 장개석의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모택동까지 모두 그 출신은 비천한 산적무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 산자이(산채)는 부정보다 긍정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모조품에 산자이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에서 그들의 관대한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산적들이 특허권, 저작권 등을 지키는 일은 드물 것입니다. 이들이 만든 것은 자연히 모조품이 되며 우리는 이를 ‘짝퉁’이라고 하지요. 그러면 산자이가 세력을 떨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은 뭔가요?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릴 정도로 괄목성장했지만, 극심한 부의 편차는 대중의 소비능력을 하락시킵니다. 국가가 부유하다고 모두가 부유한 것은 아닙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서 트렌드를 느끼지만 트렌드를 쫓아갈 여유가 없는 이들이 다수입니다. 산자이에 대한 수요가 꿈틀거리는 셈입니다. 여기에 애국심이라는 감정이 살짝 덧칠되면 산자이 구입에 대한 감정적 합법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비슷한 공정을 거친 제품은 비슷한 가격에 팔리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여깁니다. 제품의 브랜드는 그들에게 아직까진 그저 그림과 기호에 불과한 건데 그것이 중국산 제품 원가의 다수를 점하는 현실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한편 제조업자는 외국 기술과 브랜드를 하청 받아서 적은 마진을 남기느니, 저렴한 산자이 제품을 만들어 더 많은 마진을 남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방정부는 그것이 정품이든 모조품이든 세수를 확대하고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눈은 감습니다. 오히려 취업문제 해결과 국부유출을 막는다는 명분도 있으니까요. 단지 가끔씩 하는 모조품에 대한 단속은 소비자 보호보다는 통상마찰 회피때문입니다. 사실 지적재산권 소송에 다국적 기업이 승소한 사례는 별로 없습니다. 산자이는 이처럼 불법과 합법 그리고 회색지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시장을 발굴하고 육성시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전기자동차입니다. 사실 세계 최초의 상용 전기자동차는 미국이 만들었지만, 미국의 석유업체들과 자동차업체들의 압력으로 폐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대자동차가 공개한 국산1호 고속전기차 블루온은 대당 가격이 최소 50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선 변변치 않은 생산공장에서 500만원짜리 전기자동차를 뚝딱 만들어 매 해 몇십만 대를 시장에 풀고 있습니다. 물론 기능적으로 뚜렷한 격차가 있겠지만, 단순가격만 놓고보면 10배 가량 차이가 납니다.

최근에 중국정부가 발표한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 향후 7대 신흥전략산업을 발표했습니다. 그 중 ‘신에너지 자동차’사업이 속해 있습니다. 세계최초로 전기택시를 상용화한 ‘비야디(BYD)자동차’회사는 비즈니스 워크가 선정한 ‘2009년 세계최고 업적을 기록한 100대 과학기술 기업’에서 애플을 제치고 중국기업으로 사상 처음으로 1위를 달성했습니다. 이 회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2008년 이 회사의 지분 10%를 매입한 곳이며, 워런 버핏은 2010년 9월 비야디 본사를 방문하여 비야디 지분을 늘리는 방안을 회사 관계자와 논의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는 자신들의 전기자동차를 버렸지만, 머지않아 미국은 중국에서 자신들이 버린 ‘산채’를 수입해서 타야 할 날이 올 지 모릅니다.

투자위험이 높은 영역에 산자이(산채)로 대변되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뛰어들어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격을 메워 주면서 중국을 기술대국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부족한 기술은 모방과 경험으로 매웁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보물들을 건져 올리고 있습니다. 그 최전선에 우리가 그렇게 경멸하는 짝퉁, 산채(산자이)들이 있습니다.

중국 천진의 한 산자이(산채)에서

 

 

부언: 몇 년 전 저희 교단의 한 신부님이 우연히 성공회 대성당 마당을 지나가다가 방문객들의 대화를 듣고 화가 나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방문객들이 성공회를 ‘천주교 짝퉁’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분들의 교회사와 신학에 대한 무지의 소치를 탓하기 전에, 저는 한국인의 의식 안에 내재되어 있는 ‘오리지널 콤플렉스’를 반성해 보았습니다. 중국에 와서 모조품을 ‘산자이(산채)’라고 부르는 중국인들의 의식구조를 생각해 보면서 어쩌면 이 산자이 정신이 갖고 있는 긍정성을 배우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도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과도 같은 갈릴리에서 108명의 산적들처럼 당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하느님 나라 최전선에 계셨던 것은 아닐까요?

성공회가 천주교의 산자이(짝퉁)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한국전통문화가 중국문화의 산자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한국현대대중문화가 서구대중문화의 산자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산자이(짝퉁)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게 어떨가요? 왜냐하면 산자이는 단지 짝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온갖 것을 한데 섞고 비벼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원조를 능가할 수도, 아니 홍길동전의 율도국(硉島國)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산자이의 위대함이 아닌가요?

모택동과_주덕

산시성 연안 ‘산채(山寨)’에서 초기 공산당 지도자 모택동과 주덕

htm_2012111621752401040111

최근 선출된 중국 공산당 새 지도부 모습


덧글쓰기  

광고성 글이나, 허위사실 유포, 비방글은 사전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이전글 베드로 13-06-01 1128
다음글 베드로 13-04-03 734


묵상 영성 전례 옮긴글들
이경래 신부 칼럼 김영호 박사 칼럼

홀리로드 커뮤니티

댓글 열전

안녕하세요?선교사님!
정읍시북부노인복지관 멸치 판매..
원주 나눔의집 설명절 선물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