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고통,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희망을 믿으며(성주간과 부활단상)-2012년 4월
작성일 : 2013-04-03       클릭 : 734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깍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 자가 어디 있었느냐?”(이사 53:7-8)

 

이곳 천진에 있는 천주교 한인교회는 한국 예수회에서 맡고 있다. 현재 담당사제가 전에 내가 예수회 있을 때 1년 선배여서, 가끔 서로 안부를 묻곤 한다. 지난 월요일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성주간과 부활에 특강과 전례를 위해서 한국서 반가운 손님이 왔단다. 전화를 바꾸어 준다고 해서 목소리를 들으니 수도회 입회동기 사제의 목소리였다. 한국에서 서로 바빠서 거의 만나지 못하다가 이 낯선 땅에서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반가웠다.

우리는 수요일 저녁 만나서 함께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마침, 식구들은 처남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성주간과 부활절을 홀로 지내고 있었던 차에 주님이 미리 반가운 선물을 주신 것 같았다. 우리는 오랫만에 만나서 친구들, 선후배 근황을 묻고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 친구로부터 너무도 뜻밖의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예수회 시절에 함께 지냈던 분인데, 당시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막 귀국하여 서강대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면서 수도회 내 양성책임을 맡으셨던 신부님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이었다. 그분은 내가 철학과정 때 한 집에서 함께 살았던 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내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하소연을 들어주신 털털한 분이셨다. 그 후 내가 수도회를 나오고 성공회로 왔을 때도 당시 한국예수회를 총책임맡은 관구장으로서 바쁜 와중에도 나에게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해 주시고, 여러모로 격려해 주셨던 분이셨다. 그러던 그분이 몇년전 관구장 임기를 마치고 필리핀에서 동아시아 양성책임자로 가셨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작년 가을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투병하시다,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50후반의 나이로 지난 성지주일 때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그분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집에는 강아지 한마리가 하염없이 우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상담심리학을 전공하셨던 그분께서 해 준 말이 기억난다: “카운셀러는 상담이 끝난 뒤, 그 일들을 잊어버려야 해. 안그러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거든.”,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조언해 주셨던 분이셨는데…

사제로 산다는 것, 아니 예수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추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내뱉는 수많은 말들-독설, 몰이해, 비난, 하소연, 후회, 편협함,이기적 욕망-을 묵묵히 듣고, 하느님의 대자대비 안에서 녹여내야 하는데, 우리 역시 불완전하고 연약한 지라 그 무게를 감당할 길이 없어 안으로 안으로 마음의 병이 쌓아만 가는 가 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안고 한발한발 완덕으로 나간다는 것이 그 얼마나 힘든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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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영화 ‘미션’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노예사냥꾼이었던 멘도사가 질투와 증오에 눈이 멀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고, 그 절망의 한 순간에서 한줄기 희망의 길을 찾아 폭포 위를 기어 올라가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에는 아직도 끊지 못하고 질질 끌고 갈 수 밖에 없는 갑옷과 같은 모진 인생의 고통들.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 양을 바라본다. 예수님의 고통이 어느 때보다도 절절히 다가온다. 그분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이 너무나 밉다. 그리고 그런 분을 본받고 따르겠다고 나섰다가 같은 운명을 걸어간 그 신부님이 너무 마음 아프다. 그리고 그 길을 살아가야겠다고 하는 내가 인간적으로 측은하다.

부활절이 다시 돌아왔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다시 오는 것처럼. 예수님은 그 극심한 고통으로부터 온전히 치유되셨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고통 너머에 있는 온전한 치유를 갈망하며 기다리고 있다. 이제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나서 말없는 어린양처럼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야겠다. 오직 그 고통의 길을 걸어 가야만 그 너머에 있는 부활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기에.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묵시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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